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Sep 09. 2024

조금 더 기다려 봐도 괜찮아

국비무료지원 AI데이터 분석 과정을 마치며

국비무료지원 AI데이터 분석 과정을 마치며



지난달. 드디어 아들의 국비무료교육([인공지능] ALoT를 이용한 빅데이터 분석 산업솔루션 개발 취업연계 부트캠프)이 끝이 났다. 장장 7개월. 그새  두계절이 훌쩍 지나갔다.


아들이 훈련과정을 마쳐갈 즈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나는 마음으로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다. 나름 의욕적으로 시작한 과정이었지만, 우리 눈에는 이번에도 아들이 그다지 큰 흥미나 열심을 보이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어디서 들었는지, 중장비 자격증 같은 걸 따면 호주 워킹홀리데이 가는 데 도움이 된다며 자기랑 같이 중장비 자격증이나 따러 다니잔다. 나는 이제 서빙은 베테랑처럼 잘하니 영어공부를 좀 하다가 사촌이 유학 중인 캐나다 쪽으로 건너가 여행 겸 외국생활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떠보았다. 하지만 아들은 이번에도 우리의 어떤 제안에도 열렬히 반응하지 않은 채,  그저 취업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희망만을 붙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학원에서 수업 몇 개월 연장하라고 하는데 할까, 말까? 가을 되면 구인 문의도 많아지니 몇 개월 더 하면서 모자란 거 보충도 하면 좋겠다고 연장을 하라네? 정부 지원 더 받으려고 구라 치는 거 같기도 한데, 나도 딱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아들은 훈련과정 마지막 달에 애초 안내받았던 것처럼 그간 결과물을 가지고 업체 관계자 앞에서 ppt 발표를 했다. 원래는 지하철 혼잡도 분석을 통해 차량 및 좌석 밀집 해소를 주제로 준비하고 있다고 했었는데, 막상 발표 때가 되자 주제가 바뀌었다. 무인 독서실 관리를 위한 AI 눈(EYE) 인식 시스템. 바뀐 이유를 자세히 묻진 못했지만, 아들이 보여준 ppt는 꽤 그럴듯해 보였고 본인 말로도 발표를 잘해서 박수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맨날 자고 온다는 둥 부정적인 말만 하길래 나는 진짜 매일 도장만 찍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아들이 또 나를 닮아 실제보다 더 최악으로 말하는 버릇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수업 연장을 하게 될 줄도, 해야 되는지도 판단이 서지 않았던 나는 학원에 전화를 걸어 오랜만에 상담을 했다. 내 전화를 받고는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담당자가 내게 물었다. 

"어머니, OO이가 특성화고를 나왔던가요?"

"아니요. 저희는 일반고 나왔어요. 왜요?"

"아, 마침 한 업체에서 특성화고 나온 친구를 하나 찾고 있어서요. OO가 해당이 되는지 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 담당자가 그때 내게 했던 말이 진심이었는지. 만약 내 아들이 그때 업체에서 원했던 특성화고를 나왔다면 지금쯤 정말 면접을 하고 취업이 되었을까? 아님, 우리를 붙잡기 위한 형식적인 제스처였을까?


"선생님, 학원에서 몇 달 수업 연장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솔직히 저희가 보기엔 우리 애가 이번 수업을 그 정도로 열심히 듣거나 의욕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어서요. 직접 보셔서 더 잘 아시겠지만 마지막 몇 달은 수업도 겨우 가고 그랬잖아요. 상식적으로 수업의 70-80%는 습득을 해야 어디 면접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제 생각엔 겨우 20-30% 밖에 못한 것 같은데, 이 정도로 취업이 가능하다는 말씀이 잘 믿기지가 않아요." 

"에이, 어머니. 애들이 여기서 배운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잘하지 못해요. 어차피 들어가서 다시 다 배워야 되니까요. 여기선 그냥 어떤 건지 맛만 보고 가는 거죠." 

그러면서, 자기 조카가 이 과정을 듣고 어떤 식으로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커리어를 쌓았고, 다시 꽤 알려진 업체로 이직을 했는지 줄줄이 설명했다. 내 아들이 그동안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는 그 이야기를. 말인즉슨, 요즘은 업체에서도 그렇게 완벽하게 준비된 취업생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MZ 세대들은 입사하고도 금세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서, 예전처럼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늘 그렇지만, 호구가 된다는 건 내 쪽에서도 어느 정도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AI 데이터 분석 수업을 열심히 듣었다면, 지금쯤 좀 더 적극적으로 학원 쪽에 제안하고 요구했을 것이다. 설혹 그게 아니었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그다음 길이 보였거나 스스로 다른 길을 찾아 나섰겠지. 하지만 우리 쪽에서 당당하지 못하니, 더 이상 무엇을 물어볼 수가 없었다. 우리에겐 딱히 다른 계획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 달을 연장했다. 


하지만 한 달 연장한 수업은 아들처럼  AI의 A도 모르고 신청한 2기 훈련생의 첫 달 수업을 같이 듣는 것이었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예상했다시피 연장한 수업이 끝나갈 무렵 학원은 다시 몇 달 더 연장을 이야기했다. 그때쯤에는 우리가 호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구인 문의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9월을 몇 주 앞둔 어느 날. 학원에 함께 가서 8개월간 쌓였던 짐을 챙겨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들 말마따나 업체 앞에서 한 발표는 훈련생들의 아이디어나 갈취하려는 형식적인 수순이고, 가을에 취업이 가능하다는 학원 담당자의 말은 정부지원금을 더 받기 위한 입발린 소리였을 수도 있다. 처음 학원에서 언급한 91%의 취업률? 훈련이 끝나갈 때쯤이면 처음 시작했던 훈련생 중 절반 정도는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구조라 하니, 그들이 말한 취업률은 남은 훈련생들의 91%일지도 모르지. 아님 이 학원과 정식 계약을 맺고 거쳐가는 수많은 특성화고 학생들의 것이었거나. 아니면 그저 나의 아들은 나머지 9%에 해당한 불성실하고 무능한 훈련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지금 아는 몇 가지는 7월 즈음이 되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과 굴지의 IT 업계에서 전액 정부지원을 받는 똑같은 내용의 부트캠프들이 여기저기 광고를 하면서 훈련생을 모집하고 있더라는 사실이다. 규모나 내용면에서 더 신뢰가 가는 그런 훈련과정들이 -좀 과장하자면- 널려 있었다. 만약 내 아들이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딱히 뭔가를 할 생각이 없어 보여서, 이러다 방안에 처박혀 히키코모리가 될까 봐 불안에 요동치는 어머니들이 계시다면... 경험자로서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다. 무언가 열심히 알아보시는 것은 좋으나, 나처럼 성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으실 것 같다고. 취업문도 그렇다. 우리가 남들이 다 원하는 넓고 편안한 길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생각보다 많은 교육과 취업의 길이 열려 있는 것 같다. 


우리 아들들이 그 일을 하고자만 한다면 말이다. 



이전 20화 이게 최고의 모습이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