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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May 14. 2024

이게 최고의 모습이라도

하긴, 나는 부모에게 언제 한번 최고의 모습이었나



아들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지나며 나는 두 가지를 잃었다.   

기분 내는 법. 그리고 해피 엔딩.


젊었을 때는 딱히 기분을 내야 하지 않아도 대체로 좋았다. 나는 무난했고 늘 어딘가로 불려 다녔다. 일도 인간관계도 그럭저럭 잘 해냈다. 크고 작은 시련이 왜 없었겠냐만 큰 굴곡도 없었다. '죽고 싶다'거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따위 해본 적 없으니. 그럴 겨를 없이 바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성취는 없었지만 운과 능력 또한 평균 이상으로 따라준 것 같다.


내 선택에 대해 크게 후회해 본 적도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고 한탄하지만, 우리 시대엔 대체로 그렇게 살았다. (유전자의 농간이다)  남편과 아들도 내게 딱 적당하다. 멋모르고 평생을 약속한 남편이 결혼하고 보니 마마보이나 의처증 환자에 중독자인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아들들은 감사하게도 장애 없이 태어났고 어렸을 때 감기 한번 안 걸릴 정도로 건강했다. 그러니 이 세상 모든 행운을 N분의 일로 나눠 각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다면, 나는 이미 평균치 행운을 내 생애 전반부에 다 써버렸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전반부. 주어진 대로만 살았지만 그럭저럭 행복했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의 나머지 삶도 이렇게 살아질 줄 알았다. 아들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맞이하기 전까지는.


인정해야 한다. 이제는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기분이 좋아질 일보다 가라앉을 일이 더 많다는 걸. 애쓰던 일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도 않는다는 걸. 특별한 일 없어도 즐겁던 시절은 끝났다는 걸. 어느 정도 예상했던 중년의 모습도 기대에 훨씬 못 미치지만 받아들인다. 남편은 늘 내게 왜 기대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내가 후반부에 맞이한 삶의 조건들이 그다지 해피하지 않은 걸 어쩌겠나. 해피엔딩을 꿈꾸지 않는 건 나의 편도체가 나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다크해도 어쩔 수 없다. 적어도 "다 잘 될 거야" 같은 회칠한 전망 보단 뼈아픈 진실이 낫다.


아들의 직업훈련수업은 이제 하반기로 접어들었다. 아들은 한 달 전쯤부터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그래서 학원에 빠지는 날이 더 많아졌다. 가봐야 수업 시간 내내 배우는 게 없다고 했다. 아들은 개인 프로젝트 주제로 '지하철 혼잡도 분석을 통한 객차 내 빈자리 알림 서비스'를 제안했는데, 주제가 좋다며 바로 통과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자료 조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만 몇 주째 계속하고 있다.


나는 나대로 4개월 남짓 아들을 지켜보 나름의 정리와 반성을 하는 중이다.


직업훈련 풀스택 과정을 선택할 때 좀 더 아들의 취향을 반영할 걸 그랬다. 그때 아들은 뭘 해도 상관없다며 '무조건 취직이 제일 잘되는 것'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주제는 아이디얼 하게 잘 선정했지만 정작 하루 8시간 내내 아들은 자기가 어디에서 어떤 자료를 어떻게 수집하고 구성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고 있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 분석 과정은 이전 직업과 경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노하우를 적극 반영할 수 있는 30-50대 중장년층에게 더 적당한 수업 같다. 아들은 경력과 노하우라고 해봐야 여태 게임뿐이다 보니, 좀 쌩뚱하다. 그때 게임 기획 관련 수업을 선택했더라면 아들이 수업시간에 이렇게 넋을 놓을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이 취업 운운 했더라도 어른이 내가 좀더 설득했어야 하는데. 여전히 부족한 어른이다. 물론 그때의 우리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내가 아들에게 이런 후회를 내비쳤을 때 아들이 다행히 이렇게 말하긴 했다.  

"괜찮아, 엄마. 이거라도 신청 안 했으면 나 여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을 거야. 그래도 코딩이 뭔지 기본은 배웠으니까. 나 이 과정 끝나면 다른 자격증 따러 다닐까 싶어."

"무슨 자격증?"

"이거 마치고 바로 취직 안되면, 관련 회사들이 어떤 자격증 필요로 하는지 알아봐서 따러 다니려고."

남편은 여전히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아들이 못마땅해서 이 과정이 끝나자마자 바로 군대나 보내버리자,는 생각이지만. 아들은 이번에도 저 홀로 해맑다. 로 구한 알바집에서 얼마 전 직원급 제안을 받았다고 으쓱했다. 몇 달간 몸만들기에 폭 빠져 있더니 엊그제는 드디어 어깨 아래 광배근이 생겼다며 만져보란다.


아들은 여전히 우리와는 다른 방향을 향해 올인하고 있고, 내 편도체도 가끔 상태가 안 좋을 여전히 불안으로 깜빡인다. 그럴 때마다 불안에 잠하는 대신 나 자신에게 속삭여 준다. 아들이 방을 나왔다고 기뻐한 지 고작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잖아. 그런 아들이 코딩 관련 다른 자격증까지 따보겠다고 하니 이것 또한 나름의 진전이 아니겠어? 충분하진 않지만 불안 중추를 다독이는 덴 조금 도움이 된다.


그레타 거윅 감독이 쓰고 만든 모든 영화를 사랑하는데, 그중에서도 <레이디 버드>의 아래 장면을 특히 좋아한다.


미국 서부의 조용한 시골마을 '새크라멘토'에 사는 크리스틴. 그녀는 하루 바삐 지루한 이곳을 벗어나 화려한 동부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어한다. 주체적인 삶을 꿈꾸며 자신을 '레이디 버드'로 불러 달랜다. 하지만 엄마는 성적도 안되는 주제에 좌충우돌 늘 허황된 꿈만 꾸는 딸이 못 미덥다.


졸업파티를 앞두고 엄마와 함께 입고 갈 드레스를 고르러 옷가게에 간 크리스틴. 맘에 든 옷을 골라 입고 탈의실에서 나오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이번에도 영 맘에 차지 않는 눈치. 너무 핑크 아니냐잔소리를 하는 엄마를 향해 크리스틴이 퉁거린다.


"그냥 예쁘다고 해주면 안 돼?"

"그럼 거짓말이라도 할까?"

"엄마가 날 좋아해 주면 좋겠어."

"널 사랑하는 거 알잖아."

"근데... 좋아하냐고."


뜻밖의 질문에 드러난 엄마의 속마음.

"난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라."

이에 대꾸하는 크리스틴.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다.

"지금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늘 못 미더운 존재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때까지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지금 모습이 최고의 모습인 줄도 모르고.


인간은 자기가 어떻게 절망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알면 그 절망 속에 살아갈 수 있다.

철학자 벤야민의 말이라고 한다. 아들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지나며 나는 두 가지를 포기했다. 기분 내는 법과 해피 엔딩. 대신, 나의 절망이 어디로부터 시작하여 이곳에 도달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긴, 나는 부모에게 언제 한번 최고의 자식이었나. 아들의 지금 모습이 최선임을 받아들인다. 기분 내는 법과 해피엔딩 따위 없어도 괜찮다. 그것 없이도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다시 시작이다.    



벤야민의 말 : "인간은 자기가 어떻게 절망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알면 그 절망 속에 살아갈 수 있다."

                    - <올드걸의 시집> (은유 저,서해문집) 18P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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