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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May 07. 2024

다음 소희, 내 아들의 이야기?

특성화고와 특성화대, 그리고 그 이후



친구 중에 엄마의 열심과 아들의 노력이 적당히 결실을 맺어 H대 특성화 대학에 합격한 집이 있다. H대로 말할 것 같으면 특성화 대학 중에서도 산학협력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학교. 학생들은 2-3학년 때부터 잡매칭이라 하여 입사할 기업과 근로계약을 맺고 주간 근무와 야간 및 주말 수업을 병행하며 일찌감치 실무를 익힌다. 정부와 기업이 학비를 대신 내기 때문에 학비가 무료인 데다, 취직율도 높아 친구의 아들이 들어갈 때만 해도 선생님이 추천하는 똑똑하고 성실한 학생들이 많이 입학을 했다. 내 친구는 아들이 우리 방식처럼 재수라도 해서 일반 대학 들어가 제대로 공부하고 좀 더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스펙을 쌓길 바랐지만 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4년제 대학을 나와도 다시 기약 없이 몇 년간 취업준비를 하는 것보다는 보장된 곳에서 빨리 취직해서 자리 잡고 싶다는 것. 친구는 아들을 좀 더 설득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셋인 친구 입장에서도 큰아들의 미래를 언제까지 밀어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 학창 시절부터 성실하고 듬직했던 아들은 대기업과 연계된 한 연구소에 취직을 했고, 최근까지도 스스로 월세와 생활비를 해결하며 커리어를 잘 쌓으며 지낸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카톡에서 만난 친구의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다. 2년 가까이 인턴십으로 일하던 아들이 이번에 회사로부터 퇴사 권유를 받았다고 했다. 싫으면 영업직으로 가라고 통보했으니 나가란 말과 다름없었다고 친구는 분통을 터뜨렸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올초만 해도 조금 들떠 있었다고 했다. 직원들이 임금협상 한다고 하고, 자신도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어쩌면 이번에 정식으로 정직원 계약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지난해 국회에서 삭감한 R&D 예산 수정안의 여파 때문이었다. 전년 대비 14.7% 삭감된 R&D 예산 26조 5000억 원은 고스란히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아들 회사에 영향을 미쳤고, 지원금이 삭감된 회사는 가장 힘없고 어린 말단 직원인 친구의 아들에게 직격탄으로 날아왔다. 더 고약한 것은 친구의 아들에게는 아직 의무 근무기간이 1년 가까이 남아 있었다는 점. 그 계약 조건 때문에 아들이 영업직으로 가지 않으면 친구는 그동안 무상으로 지원받은 1300만 원도 도로 토해 내야 하는 상황. 결국은 젊은 아들 데려다가 가르치고 써먹다가 어려워지니 뱉어내는 형국이라고, 희망 고문이 따로 없다며 친구는 울분을 토했다.


정말 그랬다. 올 초. 내가 구독하는 과학 채널과 과학 유튜버들은 R&D 연구비 삭감으로 인한 여파와 우려에 한 목소리로 항의했다. 그 어렵다던 코로나 기간 동안에도 삭감되지 않던 연구비였다. 덕분에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으면서도 과학자들은 연구를 향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고, 그것이 최근 몇 년간 누리호와 다누리라는 쾌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올해 정부의 R&D 연구비 삭감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과학자들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지원서를 내야 했고, 오랫동안 공들여 진행되던 연구소들도 문을 닫기 시작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참여하기 어렵다는 다국적 우주개발 프로젝트에, 정작 제안을 받아도 예산이 없어 거절할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되었다. 무식한 한 나라의 지도자가 내린 결정 때문에 이번에도 가장 어리고 약한 이들이 고스란히 타격을 입었다. 현 정부가 젊은이와 미래에 대해 얼마나 생각이 없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즈음. 영화 <다음 소희>를 보게 되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추천을 받았지만 선뜻 내키지 않아 계속 마음으로 미루던 영화. 전주 어느 콜센터에서 실제로 있었던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다.


춤을 좋아하던 씩씩한 열여덟 고등학생 소녀 '소희'는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한 통신사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다. 콜센터 업무라는 게 하루종일 성난 고객들을 얼르고 달래야 하는 고달픈 일이지만, 하청업체이긴 해도 대기업에 취직했다며 좋아라 출근을 한다. 선생님이 자신을 이곳에 취직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에, 선배인 자신이 좋은 선례를 남겨야 후배들의 앞길에도 도움이 될 거란 생각으로 고객들의 온갖 역정과 성희롱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틴다. 하지만 상담업무라는 것은 곧 매출과 직결되어 있는 곳. 고객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하나라도 더 가입을 시키고 가입을 유지시켜야 한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달 자신에게 할당된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동료와 회사에 고스란히 폐를 끼치게 되고, 독주하면 자신의 실적 때문에 동료들이 닦달당하게 되는 끔찍한 경쟁 구도라는 것. 결국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일했건만 실습생이란 이유로 자신의 실적에 대해 제대로 평가도, 보상도 받지 못한다.


그동안 계속 영화를 미룬 이유는 이거였다. 나는 내 중산층 삶의 조건만으로도 충분히 다크 해서, 나보다 더 열악한 삶의 조건을 가진 이의 삶까지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는,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이 있었다. 근데 영화를 보고 나 알다. 소희와 내 아들의 삶의 간극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 나와 다른 삶의 조건이라 생각했던 소희의 삶이 어느 덧 그대로 내 아들과 내 친구의 아들과 겹쳐졌다.


나와 남편이 결혼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중산층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둘 모두 직업이 있고, 전세지만 서울에 작은 집 한 채를 가지고 시작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우리가 중하층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지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한때 중산층이었던 우리는 점점 종모양의 정규분포 곡선 아랫도리로 떠밀려 내려가고 있다. 남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지만 우리 또래 여자들의 절반처럼 나는 아이들 양육을 위해 중간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내가 명품을 휘두르고 살지 않고 남편이 딴생각 않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중산층 이상의 삶은 보장받을 거라 생각하며 살았다. 부동산과 주식 따위 뻥튀기를 하지 않아도 나이 오십 쯤이면 대출 낀 작은 집 한 채쯤 가지고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노동자본만으로는 겨우겨우 먹고살아질 뿐이란 걸 이제 깨닫는다.


경기도 일대에서 은행에 어느 정도의 대출을 끼고 전세에, 외벌이 남편 혹은 알바 아내의 벌이로 아이들 영수 학원 정도 보내고 그럭저럭 먹고사는 내 또래 여자들의 인식도 비슷하다. 시작할 때는 분명 자신의 친구들과 비슷하게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딸에게 악기를 시키고 아들을 유학 보내는 친구들과 비교해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중산층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고. 남편들이 버는 것은 비슷한데, 그들에게는 서울에 아파트와 상가를 가진 조부모들의 재력이 있더라고. 그게 아니라면 남편이 대기업이거나 스타트업에서 상장이 되면서 대박이 나서 돈방석에 앉게 되었거나.


그리고 부동산과 주식이 가져다준 삶의 갭은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라서 영원히 그 집 아들과 우리 집 아들의 격차를 점점 더 벌려 놓을 거라는 게 더욱 확실해지면서 우리는 자주 무기력해진. 그걸 나도 내 아들도 너무나 잘 알기에 아들이 우리처럼 살까 봐, 우리처럼 무기력해질까 봐 두렵다고. 


요즘 우리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유령은 이런 오랜 사회경제적 구조가 야기한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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