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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May 07. 2024

놀면서 돈 버는 세상에 대해 우리가 알까?

쉬는 날 아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연휴가 걸쳐진 주말, 모처럼 연이어 월요일까지 쉬게 된 아들이 뭘 할지 고민하더니 서울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섰다.


"엄마 이거 어때?"

점심시간이 지난 2시경. 집으로 내려오는 중이라며 아들의 카톡이 울렸다. 아들은 인스타그램에서 눈팅만 하던 신사동의 한 빈티지숍에 다녀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방금 득템 한 아이템이라며 찍어 올린 얇은 니트로 짠 도토리색 계열의 간절기 블루종. 어른인 내 눈에도 별나지 않은 무난한 디자인. 이 정도면 봐줄 만했다. 예쁘네~ 추임새를 넣었더니 아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가격까지 알려준다. "엄마 이거 15만 원이나 줬다~"


헐... 중고가 15만 원? 그럼 대체 가가 얼마길래. 어깨에 덧댄 얇은 가죽 위에 로고 보이길래 확대해서 보니 새 비슷한 게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시조새? 호기심이 동해서 찍어서 네이버에 검색해 보았더니 '아스테릭스'라는 아웃도어 브랜드. 시조새의 학명 아키옵터릭스 리토그래피카(Archaeopteryx Lithographica)에서 가져온 네이밍이라고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하늘로 향한 생명체처럼, 끊임없는 진화와 혁신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의식 있고 패기만만한 기업가 정신이 느껴지는, 젊은 명품 브랜드인가 보다.     


쉬는 날 아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고작' 중고 명품샵이었다니. 명품에 패션. 나의 목록에는 평생 없을 조합이다. 대체 어떤 곳인가 싶어 다시 검색창을 쳐본다. "빈티지 입는 힙한 목사님... 슴슴한 아메리칸 캐주얼의 정석"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걸려 나왔다. 사장님이 목사님이라고? 한국의 패션 시장도 환경에 대한 관심과 함께 중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였는데, 그중에서도 이곳이 가장 트렌디하고 핫한 빈티지숍이라고 했다. 주로 1990년대 아메리칸 캐주얼을 메인으로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해석한 옷들이 큐레이팅되어 있다는데, 패션 센스 좋기로 유명한 연예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미디어도 좀 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대표의 이력이 특이했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인생에 특별한 계획이 없던 그는 군대에 들어가서야 패션을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다 '인간관계의 중심에 패션'이 있다는 생각에 '패션 목회'를 지향하게 되었고, 신학을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고. 평일엔 손님들로 북적이는 이곳 매장이 주말엔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된 이유다. 와우. 패션 목회라니. 그가 지향하는 패션만큼이나 트렌디하지 않은가!  




아들의 직업훈련과정은 이제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잘 따라가고 있냐는 질문에 아들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로 일관 중이고, 지각과 결석도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반복되고 있다. 몰입도 포기도 아닌, 어정쩡한 유지. 우리에겐 어느덧 익숙해진 서사. 저녁에 수업을 보충하거나 주말에 복기하는 열정이 없으니 남편 말처럼 이대로라면 또 실패할 것이 불 보듯 뻔한 날들이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쉬는 날이니 부모인 우리는 당연히 아들이 다음 날 수업과 미래의 자신을 위해 집에서 보충 공부라도 해주었으면 싶다. 어렵게 시작한 공부를 아들이 잘 마치고, 원래 전망대로 작은 중소기업에라도 어떻게든 들어가 경력을 쌓고 병역특례업체에라도 들어가면 한시름 놓을 것 같다. 아직까진 그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괜찮은 시나리오다. 하지만 아들의 생각은 이번에도 다른 것 같다.


다시 후회가 밀려온다. 나는 그날 왜 학교에서 날아온 공문을 열어보았을까. 알바를 하고 돈을 벌며 태어나서 처음 자신의 쓸모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 아들을 그냥 내버려 두면 좋았을 걸. 왜 아들은 전혀 관심에도 없는 풀스택 개발자 과정을 제안했을까. 그때 급한 마음에 어디라도 아들을 밀어 넣지 않았다면, 아들은 지금쯤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알바나 하며 오늘처럼 쉬는 날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패션 명품을 사러 신사동에 갔을 테고... 그랬다면 또 누가 알겠나. 도토리 색 블루종을 신나게 골라 나오던 길에 우연찮게 매장 입구에 붙은 '직원 구함' 같은 알림을 보고 다시 가게로 걸어 들어가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을 지도? 그랬다면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옷이 가득 한 매장에서 하루종일 신나게 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매장에 새 옷이 들어올 때마다 흥분이 가득한 눈으로 탐색하며 신나게 매장에 진열했을지도 모르는데. 고객들에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옷을 추천해 주고 자기 말에 설득당해 지갑을 여는 고객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쓰임에 뿌듯해했을 텐데. 그런 아들이 미더운 사장님은 아들의 안목을 칭찬하고 다음 해외출장에 아들을 함께 데리고 다닐 수도 있었을 텐데.


미래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 아들들은 이제 '놀면서 돈 버는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우리처럼 하루 8시간을 꼬박 사무실에 앉아 95%의 의무감과 5%의 보람으로 일하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공간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신나게 하면서도 돈 벌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고. 아니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 버는 세상이라니. 나 같은 옛날 사람은 상상하지 못해 본 세계다.  


아들을 일찌감치 사회에 내보낸 선배 엄마들을 만나도 비슷한 조언들이 이어진다. 어찌어찌해서 아들을 대학까지는 보냈지만, 대학에서 전공한 공부와 회사에 취직해서 배우는 업무에 대해 우리 엄마들은 점점 더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없어진다고. 아들은 우리 시대에 없던 전공과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에서 발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그러니 아들이 아무리 이에 대해 조언을 구해도 우리는 헛짚을 수밖에 없다고.  


부모의 생각이 제아무리 앞서 간다 한들 그 역시 아들의 타이밍과 꼭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들이 방 안에서 밤낮으로 게임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게임 시장이 매해 말도 못 하는 방식으로 커져가고 있으니 아들이 꼭 공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게임업계에 들어가 밥벌이하며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의외로 방문을 열고 나와 서빙을 하며 사람과 만나는 방식을 더 재미있어했다. 물론 이게 쉽고 빨리 돈을 버는 방식이어서여서 아들의 마음을 더 쉽게 열었을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그것 역시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주에 있지 않다는 거다.


쉬는 날 아들이 명품빈티지숍을 찾아갈 거라는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대학을 나오지 않은 아들의 미래에 대해서 아무리 장밋빛 전망을 펼치려 해도 금방 암울한 기운에 빠져드는 것처럼. 그러니, 아들을 위한답시고 엄마인 내가 제안하는 것들이 아들의 생각 보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이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한국경제] "빈티지 입는 힙한 목사님... 슴슴한 아메리칸 캐주얼의 정석"

https://naver.me/xkqJBI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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