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토크가 없는 집은 늘 불안하다. 함께 밥 먹는 시간도 많지 않은데, 그러다 보니 어쩌다 한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꺼내는 안부는 늘 무거운 주제. 아내가 어느 날 남편에게 "당신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라고 물으면 긴장부터 한다는 그 우스개 소리가 딱 우리 집 식탁이다.
아들이 학원을 집에서 다시 다니게 되자, 일주일에 2-3회 정도 아빠와 아들이 한 식탁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 나는 오늘은 또 무슨 얘기로 아들을 낙심시킬까 저 밑바닥에서부터 불안이 올라온다. 풀스택 인공지능 과정이 시작되고 첫 주가 지났을 때. 식탁에서 아들과 만난 남편이 물었다.
"해보니까 어때? 이걸로 평생 밥벌이 해도 될 만하다 싶어?"
바쁘게 움직이던 아들의 젓가락질이 느려지면서, 아빠의 질문 앞에 적절한 단어를 고르기 위해 숨을 돌린다.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대답해도 아빠를 만족시킬 수 없었을 테지만, 최악의 반응은 피할 수 있는 단어. 나도 자주 쓰는 말이다. 첫 1주일은 아직 정식으로 수업이 시작도 되기 전, 수강생들이 수업의 대략을 설명받고 계속 수강할지 말지, 아니면 다른 수업으로 전환할지를 결정하는 워밍업 시간이다. 그러니 난생처음 코딩의 세계에 들어선 아들이 이걸 평생의 업으로 삼아도 될지 모르는 건 너무 당연했다.
수업을 들은 지 두 달 여. 아들은 지각과 조퇴를 간간이 하면서도 꾸준히 학원에 출석 중이다. 첫 한 달. 수업 시간 도중 생각보다 재밌다며 자신의 성과물을 공유하면서 피드백 주던 아들이 어느 순간부터 다시 지각과 결석을 시연하며 늘어지기 시작했다. 기숙사에 그대로 두면 어떻게든 결석은 안 했을 텐데, 괜히 통학으로 전환하면서 리듬을 깬 건 아닌지, 또 잠시 후회했다. 그렇다고 싸패일지도 모를 룸메이트에게 아들을 내동댕이쳤어야 했을까. 아들 말대로 루틴 한 일상에 하나의 스릴이 되고 오히려 아들을 더 바싹 긴장하게 했을까. 모를 일이다. 아들은 그 와중에서도 국비지원 훈련의 결석률을 초과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리듬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적어도 아침마다 가까운 전철까지 실어다 주면서 나누는 이야기, 하원하며 저녁을 집에서 먹을지 친구와 만날 지를 주거니 받는 그 모든 시간이 좋았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또한 하루 9시간을 내리 앉아 있는 아들이 대견했다가도, 그렇게 피곤하다면서 밤새 게임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고 들어오는 아들이 못마땅했다가, 이러다 이 마저 그만 두면 어쩔까 해서 그저 입을 닫기도 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어제 오후. 오랜만에 아들의 목소리에 흥이 실렸다
"엄마, 나 오늘 뭐 잘 적용이 안 되는 게 있어서... 뒤에 앉은 아저씨가 물어보는데 나도 잘 모르겠더라고. 그랬는데 하다 보니까 갑자기 예전에 배웠던 게 떠오르면서 적용해 봤는데! 되는 거야... 그래서 해결했다. 오늘 뭔가 잘 안 풀리던 걸 내가 해냈어..."
전화기 너머 아들의 목소리는 자신의 이 작은 성취를 분명 기뻐하고 있었고, 나는 아들이 이 순간의 기쁨을 망설임 없이 엄마에게 전해주고 싶어 했다는 사실에 기뻤다. 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싶었지만 마침 친정 엄마와 만나 장을 보고 막 내 차에서 바구니를 옮겨드리던 중이었던 나는 저녁에 다시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저녁. 닭갈비 집에서 만난 아들은 막국수 하나에 닭갈비를 척척 올려 왕성하게 흡입 중이었고, 뒤늦게 합류한 남편이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 OO가 학원에서 좋은 일이 있었대."
코딩은 내가 잘 모르는 분야. 전공을 했던 남편이 기대를 담은 눈으로 아들의 설명을 청취하고 있었다. 아들이 파일을 한 화면에서 다른 화면으로 옮기는 뭔가를 해냈다고 설명하자, 남편은 코딩할 때 어떤 명령어를 사용했는지 물었다. 아들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8'이라는 숫자를 옮기는 일이었다며, 코딩에 사용된 단어 몇가지를 더듬더듬 입에 올렸다.
남편 : "그래서, 그걸 네가 직접 짰다는 말이지?"
아들 : "아니지~ 선생님이 만들어준 걸 그대로 따라서 해봤지. 내가 아직 코딩을 짜진 못하지.
나 : 우리가 듣는 과정은 환경 구축하는 과정이 아니라 데이터 베이스 분석하고 마케팅에 적용하는 과정이라 그렇게 전문적인 것까진 아직 안 하는 게 아닐까?
제각기 다른 지식과 경험과 기대치를 가진 세 사람이 나누는 식탁의 대화. 그리고 늘 그렇듯 가장 잘 알고 늘 확신에 찬 남편이 대화를 주도한다.
"그걸 그냥 따라 하는 데서 그치면 안 되지. 선생님이 '8'을 하셨으면 너는 '9'를 응용해서 다시 짜보고, 너 스스로 관심과 의욕을 가지고 자꾸 적용해 봐야 한다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돼. 아빠가 늘 말하잖아. 주말에 친구들 만나러 놀러 다니는 시간에 집에서 그걸 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결국 못 따라가."
이렇게 해선 안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따라가. 결국 너는 실패할 거야.
그렇게 해선 못 따라간다는 말. 부모의 기대와 염려 사이, 늘 자식을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존재로 만드는 말. 그래서 너는 얼마나 대단한 어른이 되었길래? 돌아보면 별 것도 아닌 부모들이 더 이렇게 자식을 주눅 들게 한다. 나는 이제 갓 방구석을 탈출한 아들이 아침마다 어딘가로 출석해서 하루 9시간을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대견한데. 6개월을 과정을 무사히 수료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할 것 같은데. 그래, 내가 이렇게 쫄보라 아들을 이렇게 밖에 못만든 걸 테지.
하릴없이 누워 쇼츠를 보고 있는데, <안나>라는 드라마 속에서 명대사 하나를 발견했다.
"독립은 부모의 실망에 죄책감 갖지 않는 것부터가 시작이에요."
30초 쇼츠 몇 장면을 통해 유추해 보자면, 여주인공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세상에 삐딱선을 탄 것 같았다. 그녀는 진짜 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화려한 세상은 다른 사람의 이름과 백그라운드를 빌려서야 그녀의 진면목을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거짓은 폭로되고 주인공은 파국을 맞았다. 그녀도 한때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유망주였었나 보다. 하지만 진심이 훼손되는 세상을 만나며 어느 순간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행히 아들은 이제 식탁에서 아빠와 마주앉아 있어도, 빨리 먹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버리지 않는다. 남편의 옳은 소리가 시전되는 동안에도 아들은 막국수에 닭갈비를 흡입한 후에 돈까스까지 꿋꿋하게 먹으며 적절히 질문에 대구했다. 아버지의 불안을 나름의 방식으로 응대하고 있었다. 그런 아들에게 나도 이렇게 말하고싶었다.
어느 시대나 부모는 늘 자식에게 실망해 왔거든. 하지만, 부모들은 자식보다 아는 게 많을 진 몰라도 너희들 보다 똑똑하진 못해. 그러니 네가 우리 기대에 못미친다고 해도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어. 그게 독립의 시작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