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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Jan 22. 2024

6개월 만에 취직할 곳도 많고

인서울이 아니라면 갈 대학도 많다



우리 집은 아들이 일찌감치 대학진학을 포기하는 바람에 경험하지 못했지만, 아들과 비슷한 성적대에 대학을 지원한 옆집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세상이 많이 바뀐 것 같긴 하다. 꼭 인서울에, 경쟁률 높은 인기학과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면 수도권 이하 4년제 국립대학 및 사립대학과 수도권 일대 전문대학에 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보통 6등급 이하 친구들을 보니 이번 수시에서 지방의 4년제 대학과 수도권 일대 전문대학에 적정 및 하향 지원을 하고, 수도권 이하 4년제 대학에 상향 지원을 했다. 그리고 하향 및 적정 지원 한 곳에서 하나 둘 합격 소식을 받아 들자 슬슬 기숙사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수도권 이하 4년제 대학에 추합이 돌면서 막판에 상향 지원 했던 주변 친구들이 거의 다 합격을 했다. 입시 담당 선생님도, 학부모도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합격 소식이어서 오히려 당황했달까. 


꼭 대학을 가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중위권 이하 학생들 사이에서는 확실히. 


2022년 사교육 총액이 26조 원(서울시 한해 예산의 반을 넘는다). 2년 연속 두 자릿수를 넘기며 꾸준히 증가 추세이니 2023년도 더 늘면 늘지 줄어들 것 같진 않다. 70년대 생이 한해 100만 명 태어나는 동안 우리 아이들 세대인 00년도 생은 30년 만에 50만 명으로 줄었고, 다시 30년 후에는 10만 명 대로 줄어든다고 한다. 아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데 사교육비는 점점 더 늘어나며 교육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코로나19를 지나며 공부하는 애와 공부하지 않는 애들이 양극단으로 갈라져 중간이 없어졌다는 말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우리 같은 경기도 변두리 학교에서 5등급 이하는 8등급과 거의 동급 취급한다. 부모가 공을 들이고 투자하는 애들은 공교육과 별개로 자기들 만의 견고한 사교육의 탑을 쌓고 있다. 4등급 이상 애들끼리 다들 인서울과 인근 대학에 촘촘하게 붙어 0.1점 차이로 대학 간 격차를 벌리고 있는 셈이다. 모두 열심히 공부하지만 1점 하나 때문에 대학의 급이 갈라지고, 희비가 오간다. 


원래도 맘에 들지 않은 입시 생태계였지만, 아들이 대학을 가지 않게 되자 나의 관심사 또한 그쪽 세계와는 점점 더 멀어졌다. 대신 내 아들이 갈 그곳을 중심으로 한 성공신화들이 보이고 들려온다.


솔직히 말해 직업훈련 학원에 첫 문을 두드리고 상담을 받을 때만 해도 나는 믿지 않았다. 프로그래머 관련 학과가 전국 4년제 대학뿐 아니라 전문대까지 하면 얼마나 많은 것이며, 특성화고 졸업한 애들만 해도 전국에 넘쳐날 것인데... 남들 2-4년 배우는 동안 고작 6개월을 배우고 나서도 취업이 될 수 있다니. 이거야 말로 날로 먹는 느낌이 아닌가. 상담 실장님의 썰에 의하면 내 아들처럼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학생은 6개월 직업훈련 후 중소기업에 들어가 경력을 좀 쌓다가 병역특례나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 군복무가 가능한 업체로 이직하면 좋다고 했다. 그 중간에 일이 잘 맞아서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일을 하다 보면 대학졸업장의 필요를 자연스럽게 느껴 회사를 다니며 대학 학위를 따는 경우도 많다는 것. 


그래, 개똥밭이든 어디든 구르다 보면 늘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인물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니, 그 만의 하나인 인물의 가장 좋은 케이스를 홍보하는 것이겠거니. 만약 내 아들이 실패하더라도 사실 업체에서는 이렇게 말하면 되니깐. "프로그램은 훌륭했으나, 당신의 아들은 개인적인 노오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쉽지만 취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더라도 상관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대학에서 4년을 보내는 동안 내 아들에게도 4년의 시간이 있지 않나. 이것저것 도전해 보면 된다. 꼭 이번 과정에서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내 아들이 방구석을 나온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 어디라도 상관 없었다. 재무 구조는 열악하고, 근무 환경이 형편없더라도, 방년 스무 살 나이에 어디 가서 이런 경력 쌓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너무 다행이었다.


그랬는데 (1) 

얼마 전 만난 사촌동생 왈, 자기 아들이 꼭 우리 아들과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는 거다. 사촌동생의 아들은 특성화고에 들어가 한 학기 정도를 아들과 비슷한 직업훈련 학교로 실습을 나가 공부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구와 함께 한 중소기업에 취직을 했는데, 함께 들어간 친구는 이 일이 적성에 잘 맞아서 1년 만에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다고 한다. 정작 내 사촌동생의 아들은 이 일이 자신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다시 항공 정비나 관련 업무 쪽으로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촌동생은 상관없다고 했다. 아들이 1년 만에 자기 적성을 파악하고, 또 다른 것을 찾아 도전하려고 최근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것 만으로 충분히 기특하다는 것. 우리에겐 4년의 시간이 남아 있으니 그 어떤 도전과 실패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랬는데 (2) 

얼마 전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난 이십 대 학원 선생님이 자기 남자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원 선생님의 남친은 연하인데, 남친이 고3 때 대학 갈 필요를 못 느껴 바로 내 아들과 비슷한 직업훈련 과정을 이수했다고 한다. 남친은 취직이 곧바로 되어 어린 나이에 개발자로서의 경력을 쌓아갔다. 이어 병역특례취업으로 군대를 다녀왔고, 뒤늦게 대학 졸업증의 필요를 느껴 학위까지 취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업체에 지원을 했는데  합격 통보를 받아서 2월이면 미국 현지 기업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된다고도 했다. 그 모든 걸 다 마치는데 고작 5년밖에 걸리지 않았고, 5년의 시간은 배움의 시간이자 동시에 경력의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최종 목표가 외국 기업이라면 대학 학위를 미국 칼리지에서 따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언어 문제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으니까.


실장님의 상담은 특별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인의 성공신화에 가깝다는 사실에 기뻤다. 미래에 관해서라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어떤 일이든 끝까지 가보면 그 다음이 보일 것이다. 그것 하나만은 지금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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