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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Jan 27. 2024

좋은 선택이었다, 아직까진

그저 아들의 뒤를 따라갔을 뿐인데



공부 안 하던 아들이 전문대나 지방의 반값 국립대 정도에 합격할 것이라 생각하고 자금을 준비하던 주변 엄마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막판에 생각지도 못한 상향 지원 대학에서 줄줄이 추합 통지를 받으면서, 이름 있는 4년제 사립대로 최종 입학결정을 내리고 나니 현타가 온 것이다. 등록금도 기숙사비도 더블이 되었고, 국가 장학금도 받기 어렵게 되었다고 하소연. 대학에 대한 신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인서울 대학도 아니고, 좋은 대학 나와도 취직이 어렵다는데, 과연 비싼 등록금 들여 보내는 것이 좋은 선택이냐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대학을 가지 않은 우리집을 되려 부러워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아들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등록금이니 재수 학원비가 굳은 데다, 아들은 알바를 하면서 자기 용돈까지 충당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 또한 학원비 벌러 원치 않는 알바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이 보다 더 좋은 좋은 선택이 어딨냐는 거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아들의 뒤를 따랐을 뿐인데. 빈말이라도 적잖은 위로가 된다. 


아들 또한 무슨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정말 남과 다른 선택에 남다른 태도와 자세로 임했겠지만, 여전히 아들은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 않다. 남편이 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방식으로. 컴퓨터 공학과를 나온 남편의 눈에는 프로그래머 공부를 시작한지 한 달쯤 지났으니 지금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매일 밤을 지새우고, 아빠에게 구원 요청을 보내야 정상인데... 아들은 여전히 집과 학원만 찍고 다니는 정도로 다닌다. 늘 그렇듯 남편 눈에는 부족한 것 투성이다. 나도 왜 그 마음을 모르겠나. 하지만 나는 아들과 함께 눈높이가 많이 낮아졌다. 현실적이 되었다고 해야겠지. 엄마인 나로서는 한 달 전만 해도 급식충이었던 아들이, 학교에 가는 둥 마는 둥 하던 아들이, 아침마다 제시간에 일어나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어딘가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대견하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던 아들이 방구석을 탈출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이 보다 더 감사한 것들도 많다. 가령 이런 것.


한 달 여 기숙사 생활을 하던 아들이 최근 기숙사를 나와 집에서 통학 중이다. 화장실에 비데가 없으면 안 되는 아들이, 룸메이트와 함께 있다 보니 아침마다 화장실에 1시간씩 앉아 있지 못해서 기숙사를 나온 게 아니다. 문제는 멀쩡하게 잘 지내던 룸메가 돌연 취직이 되어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서 시작됐다. 새 룸메가 내 아들 방으로 옮겨 왔는데 이 인간이 좀 이상했다.


룸메가 새로 들어오던 지지난 주. 아들은 졸업식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부산여행을 가는 등의 이유로 며칠 집과 기숙사를 오가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 아들이 불규칙한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다시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는 아들과 새 룸메가 함께 밤을 지낸 지 사흘이 채 안 지난 때였다. 월요일 아침, 짐을 가지고 잠깐 기숙사에 들른 아들은 화장실 변기가 막혀 있는 걸 발견하고 조금 짜증이 일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날 아침 룸메를 향해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라고 는 아들 목소리가 조금 무례했을 것이며, 아침부터 그에 화답하며 '뚫어뻥을 주문해 뒀다"라고 말하는 룸메의 목소리도 퉁명스러웠을 거라 충분히 짐작이 된다.


정작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점심 때 아침의 사건이 마음에 걸린 아들이 룸메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근데 글쎄, 그 룸메에게서 이런 답장이 온 거다.


아들 : 아침에 제 말투가 공격적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버스 타서 피곤해서요. ㅠㅜ

룸메 : 괜찮습니다.

         그럴 때는 저도 공격적이면 되니까요 ㅎㅎ


그러더니, 잠시 뒤. 다시 이런 문자가 왔다.


 아들이 가족 단톡에 문자를 캡처해 올렸다. 요즘 단톡을 대충 보는 버릇이 있던 나는 처음에 룸메의 문자를 이렇게 해석했다. "괜찮습니다. 그럴 때는 저도 공격적이 되니까요 ㅎㅎ." 근데, 다시 온 문자를 보고 나서 이전 문자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피곤하면 저도 공격적이 되니까 이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도 나중에 피곤하면 너처럼 공격적이겠다는 의미가 아닌가!


헐, 이거 싸패 아니야?


백보 양보해도 이상했다. 사회성이 좀 떨어진 자의 농담이라고 하기에도 적절치 않았고(3일 밖에 지내지 않은 사이에 할 만한 농담이 아니지 않나?), 정상이라면 더더욱 저런 워딩 조심해야 할 터였다(젊은 남자애가 대낮에 칼 들고 행인을 공격하는 것이 현실인 요즘 같은 때 쓸 말은 아니지). 혹시 내가 오버하는 건가 싶어 캡처받은 문장을 동네 엄마들 단톡에 올리며 앞뒤 정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다들 난리가 났다.


정작 아들은 지루한 일상에 즐거움이라는 둥, 이제 기숙사 들어갈 때마다 불알 떨려서 재밌을 거 같다는 둥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쫄린 게 분명했다. 내가 기숙사로 가지 말고 당장 집으로 퇴근하라고 하자 반박하지 않았다.


집에 와서 남편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과 남편은 '룸메가 이상하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이럴 때일수록 더 밀리면 안 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들고 나왔다. 물러나면 지는 거고, 저럴수록 더 우리는 쫄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내 의견은 달랐다. 힘의 논리는 상대방이 '정상'일 때나 하는 거라고. 상대가 '정상'인지 아닌지 모를 때에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물론 이 문자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위협을 느꼈고, 또 원에 이야기하면 방을 바꿔 줄 충분한 명목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엮이거나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하지 말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마침 집에서 다녀보니 출퇴근 시간의 번거로움만 빼고는 다닐 만하기도 했다. 통학을 하다가 나중에 프로젝트 수업으로 바빠지면 그땐 다시 기숙사를 신청해서 다른 방으로 배정받으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아들의 선택에 따라 일련의 사건들을 만나며 나는 다시 내가 참 불안이 높은 엄마였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사춘기를 지나며 나는 내 아들이 어디 나가 싸패처럼 굴까 봐 늘 걱정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아들은 나가서는 전혀 예민하지도, 경우가 없지도, 누군가 함께 생활하지 못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환경 안에서는 불편함도 참을 줄 알았고, 오히려 더 사교적이기까지 했다. 늘 전전긍긍하던 나나 내 불안 하나 극복하지 못하는 엄마였다. 그러니 이제야 아들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해, 아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사사건건 불안한 남편의 잔소리에도 나는 한발 뒤로 물러서, 지금, 조금 더 의연한 엄마가 되어 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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