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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21. 2023

내 아들이 자립 청년들처럼

직업훈련 기숙사에 입소하던 날



엊그제 아들을 직업훈련학교 기숙사에 넣었다.


옆집 아들들이 수시 원서를 넣고 수능 시험을 보는 동안 우리는 내일배움 카드를 신청하고, 학교장 추천서를 받아, K-디지털 과정을 신청했다.


K-디지털 과정은 크게 자바를 배워 웹&앱 개발자가 되는 풀스택 과정, 파이썬을 배워서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인공지능 과정, 그리고 게임 콘텐츠를 기획 및 제작하는 과정으로 나눠져 있었다. 우리는 아들이 중고등학교 내내 게임만 했기 때문에, 당연히 게임 콘텐츠 기획 제작 과정을 배우려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들은 상담해 주시는 실장님께 "초봉이 높고 제일 취직이 잘되는 과정이 뭐예요?"라고 묻고는 실장님의 조언에 따라 지금 가장 핫한 '인공지능'과정을 배우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우리 또한 아들의 선택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K-디지털 과정은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밀어주는 과정이기 때문에 1천만 원이 넘는 수강비가 모두 무료일 뿐 아니라, 수강생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기 위해 매달 훈련지원금이 추가로 나온다. 나이, 경력, 소득 격차에 따라 개인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아들의 경우 신청하면 매달 60만 원 상당의 지원금이 현금으로 통장에 꽂힐 것이라고 했다. 아들이 통학을 하게 되면 그중 30만 원은 교통비와 식비로 충당되고, 기숙사에 입소할 경우는 기숙사비와 식비로 충당된다. 교육장이 마침 집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보니 우리는 기숙사 입주를 선택했다. 그렇게 해도 30여 만원은 용돈으로 쓸 수 있으니,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좋은 나라였나 싶었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이 정도면 고아원에서 나와 당장 갈 곳 없는 자립 청년들도 6개월 정도 기숙사에 들어와 훈련을 받고 생활하다가 취업할 수 있겠다 싶었다. 지금 직접적으로 그들을 돕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는 늘 한편에 이들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대치동 학원으로 매일 아침 아이를 실어 나르진 못하더라도, 학원 숙제 공부를 시켜주는 새끼과외까지는 못 붙여 주더라도, 기본 영수 학원 정도는 보내주는 게 당연한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나는 학원비 앞에서 갈팡질팡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내 주변 자립 청소년의 존재는 우리가 매달 결제하는 학원비 모두가 돈지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지표같은 거였다.   


그리고 지금, 어떤 자립 청소년에겐 사회생활의 첫 기반이 되어 줄 수 있는 그 교육 과정이 지금 내 아들에게도 소중한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교육 시작 하루 전. 아들은 알바를 하느라 시간을 낼 수 없어 남편과 함께 이불과 세면도구 몇 가지를 챙겨 기숙사를 방문했다. 기숙사는 허름한 선술집과 롯데시네마 건물이 난립해 있는 구도심 한복판에 있었다. 우리는 곧 기숙사 담당자의 뒤를 따라 아들이 6개월 동안 먹고 잘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문을 슬쩍 열고 들어가 보니 방 한쪽에 2층 침대 하나와 좁은 옷장, 그리고 바로 한 걸음 지척에 책상 하나가 마주 보고 있었다. 화장실은 변기 바로 옆에 샤워기 하나가 달랑 달린 구조였다. 무료 숙식에 무료 교육이니 이 보다 더 많은 걸 바란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착잡했다. 지금 아들이 쓰고 있는 방보다 더 작은 방을 다 큰 청년 둘이 나눠 써야 했다. 냄새에도 예민한 아들이 침대 위아래로 나란히 누워 낯선 이와 한 호흡을 하며 잘 수 있을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 그런데, 그때 상담할 때 저희 아들이 좀 예민해서 3인실을 2인만 사용할 수 있도록 배치해 주신다고 하셨는데요. 이게 3인실이 맞나요?"


내가 혹시나 방이 바뀐 게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담당자가 말없이 1층 침대 밑에 손을 넣더니 드르륵, 얇은 패드가 깔린 침상 하나를 꺼냈다. 훈련생이 하나 더 들어오면 그 침상을 빼서 원생 둘은 나란히 누워 자야 한다고 했다.


늘 고생 좀 해봐야 안다고 말하던 남편도, 막상 아들이 지낼 기숙사를 보자 마음이 썩 좋지는 않은 듯했다. 담당자에게 기어이 지하 휴게공간까지 둘러보고 가야겠다고 우기더니만 TV와 소파, 그리고 운동기구와 노래방 시설을 갖춘 꽤 널찍한 휴게실을 보고 나서야 말했다. "그래도 여기 내려와서 잠깐 한숨은 돌릴 수 있겠네."


아들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대학을 갔으면 우리는 다시 대출을 받던 마이너스 통장을 긁던 어떻게든 공부까지는 밀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그 모든 걸 거부했다. 부모의 어떤 지원도 거절하는 이상한 방식으로 자신의 사회초년 생활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부모들처럼 아들을 부모의 면류관처럼 이라도 생각했다면 아들이 이런 곳까지 흘러들어오기 전에 무슨 수라도 썼을 것이다. 유학을 알아보든, 입주형 재수 학원을 알아보든. 


남편에 대한 원망도 다시 올라왔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 캐나다로 유학가서 그때 배운 영어로 지금 밥벌이 하며 살고 있었다. 근데 왜 아들에겐 자신이 경험한 더 나은 세계와 미지의 기회를 제공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까. 첫째 아들은 나를 닮아 끈기는 없지만 새로운 환경에 던져 놓으면 나름 호기심을 가지고 잘 적응할 캐릭터였다. 젊은 시절 단 하나, 어학연수를 다녀오지 못한 게 못내 한이었던 나는 유경험자인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유학의 길에 대해 의논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남편은 단호 했다. 여기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애가 해외에 나가서 잘 할 리가 없다고 했다. 손주 교육에 관심이 지대한 시어머니도 의외로 같은 의견이었다. 이번에도 모두 옳은 말이어서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들의 말은 또다른 의미에서 진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들을 유학 보낼 만한 능력이 없었고, 아들을 유학 보내본 시어머니는 유학 보내봐야 별 볼일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신 것이다. 나 또한 그 뼈아픈 진실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유학이 내게 그렇게 열망할 만한 일이었다면 나 또한 무리해서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어야 한다. 


우리 집안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우리 아들들도 대학 정도는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할 줄 알았다. 굳이 고생길을 자초한 아들이 짠해 조금 코끝이 찡했다. 아들이 견하기도 하고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에미라면 아들에 대해 평생 그런 마음 사이를 오가며 살겠지. 


아들 덕분에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삶의  방식에 휘말려 우리 모두 지금 얼떨결에 모험을 떠나고 있다. 뻔하디 뻔하던 일상의 루틴이 아들과 함께 조금씩 바뀌고 있다. 늘 그렇듯 우리 앞에 선택은 많고, 그 선택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야 알게 되겠지. 먼 훗날 적어도 이 정도면 이 모든 순간이 감사였다고 고백할 만 날들이었기. 짐을 풀고 돌아오는 길. 그저 마음 속 깊이 기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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