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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Nov 21. 2023

아니, 애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고3, 남편의 무관심이 깨어나는 시기



남편들은 아들이 고3이 되면 비로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아니, 애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하고. 


대한민국에서 자녀교육에 성공하기 위해선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바로 엄마의 정보력, 조부모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이다. 성공하기 위해선 이 세가지 요소가 모두 필요하다. 엄마가 제아무리 아이에게 꼭 맞는 최신 입시 정보로 무장한들 그걸 뒷받침해줄 재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엄마의 정보력도 조부모의 재력도 없는데 아빠의 무관심만 달랑 있어봐야 아무 소용없는 것과 똑같다.  이상한 것은 앞의 두 가지 요소는 다 이해가 가는데, 트라이앵글 한쪽 끝에 자리 잡은 '아빠의 무관심'은 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그저 구색 맞추기일까?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냐고, 독서모임에서 내가 묻자 한 멤버가 대답했다.

"아빠들이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초나 치는 존재라는 거죠." 


예를 들면 바로 이런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과 생물에 관심이 많은 아들 A는 경기도 변두리 대학 생명공학과 몇 군데에 수시 원서를 넣었다. 지금 A의 성적과 취향을 고려한 최상의 선택이다. 그리고 수시에 납치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중이다. 이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왜 너는 전자공학과에 지원하지 않느냐고. 수능 열심히 준비해서 전자공학과에 도전해 보자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누차 설명했다. 자신은 인서울은커녕 경기도 변두리의 전자공학과에 넣을 만큼의 성적이 안된다고. 게다가 나는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아들이 더 전망이 좋은 전자공학과에 넣지 않고, 왜 수능에 희망을 걸지 않는지. 아버지는 합격이 불가능한 과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싶은 아들의 취향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수시 납치'란 말을 설명해 줘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들 둘에게 겨우 영수 학원을 보낼 때. 남편도 늘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학원에서 배우는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라고. 책상에 앉아 스스로 하는 공부야 말로 진짜 공부라고. 학원에 갖다 바치는 돈은 다 쓸데 없는 돈이고, 여자들이 아침마다 모여 아이들에 대해 세세하게 공유하고 업데이트 하는 그 모든 정보도 다 치맛바람에 다름 아니라 했다. SKY 대학 입학생 중 고소득층의 비중이 50%를 넘으며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사교육 공화국이 된 게 언젠데, 여전히 40년 전 개천에서 용 나던 우리 시대 이야기나 하고 있다. 아들들은 10억을 주면 10년 동안 감옥에도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고 하는 이 자본 만능주의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꿈은 재벌 2세인데 아버지가 노력하지 않는다고 자조하는 세상에서. 남편들은 자신의 아들이 인서울도 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이상하고, 여전히, 흙수저도 자기처럼 노력하면 금수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들과 남편 사이에 몇 차례 이런 실랑이를 등 너머로 목격한 우리들이 남편들을 가리켜 '똥멍청이'라고 부를 밖에. 남편의 무관심이 오히려 낫다는 말이 나올 밖에.


수능 당일. 시험이 끝난 아들을 데리러 갔던 남편이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을 보아 하니, 뭔가 단단히 틀어져 있었다. 전말은 이러 했다. 시험이 끝나는 시간을 잘못 알았던 남편은 아들이 시험을 마치고 전화한 뒤에야 집에서 뒤늦게 출발했다. 교문 밖에는 이미 1시간 전부터 아들을 맞이하려는 부모들로 북적였지만 아빠를 만나지 못한 아들은 뒤늦게 출발한 아빠를 기다리다 너무 추워 근처 떡볶이집엘 들어갔다. 학교에 몰린 학부모 인파 때문이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30분이 넘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주문한 떡볶이가 막 나오던 때였고,  그걸 물릴 수 없었던 아들은 아빠에게 전화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아들을 맞이하러 나갔다가 혼자 돌아온 남편은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마치 이 한 장면이 지난 6년간 우리 집의 상황을 압축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극렬한 아들 사춘기. 내가 만든 음식을 거절하고, 해야 할 공부를 하지 않는 아들 때문에 나는 매일매일 질문과 우울 사이를 오가다 마지못해 남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자신이 아들 문제에 개입하려고 할 때마다 내가 늘 자신을 막았다는 것이다. 아들이 저렇게 제멋대로에 나약한 남자가 된 것은 다 엄마인 나와 시어머니가 과보호한 탓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아들을 품에 안고 동화책 한번 읽어준 적 없던 남자가, 식탁에서 아들이 무슨 말만 하면 핀잔을 주던 남자가, 20년 동안 대입 제도가 수도 없이 바뀌는 동안 아무런 관심 없던 남자가 이제 와서 내게, 아들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이번에도 속으로 되뇔 수밖에. 


나는 한번도 네가 아버지 노릇 하는 걸 막은 적이 없다. 네가 한 번도 제대로 아들 문제에 개입해 본 적이 없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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