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찾아뵙다 보면 이런저런 사연도 듣고 자연스럽게 사는 형편도 알게 되잖아. 70대 부부야. 집도 있고 재산도 꽤 있어. 남편이 아프니까 우리 요양원 도움을 받고 있는데, 아내 되시는 분은 가보면 집에 잘 없어. 낮에 일을 다니시더라고. 어르신 나이가 칠십이 넘으셨으니까 아내분 나이가 67-68세쯤 되셨을 거야. 그 연세에 건물 청소도 하시고, 공공근로도 하시고, 부지런히 뭘 계속하신대. 근데, 집에 아들이 같이 살고 있는 거야. 늘 건넛방에 있어. 한번 갔다 왔는지, 미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이가 사십은 족히 넘었을 거잖아. 늙은 노모는 나가서 경제활동을 하는데. 아들은 집에서 맨날 놀고 있는 거야. 놀랍지? 이런 집이 생각보다 많더라고.
들어보니 아들이 아예 일을 안 한 건 아니더라고.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나왔대. 대기업에 여러 차례 응시도 했었는데 계속 떨어진 거야. 어쩔 수 없이 중소기업에 들어갔지. 근데 좀 일하다 보면 나오고, 또 다른 데 들어가도 적응을 못하고... 일이 안 맞는다, 페이가 너무 적다 하면서 말이야. 서른 중반쯤 되니까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취업활동을 안 하고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질 않더래. 무슨 대화 좀 하자고 정색을 하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다는 식으로 버럭 화를 내고. 그러니 저러다 나쁜 생각이나 먹을까 싶어 말도 못 꺼내고... 아들이니 어쩌겠어. 하루종일 집에서 서로 얼굴이나 쳐다볼 수는 없잖아. 자기라도 나가서 돈을 벌어야겠더래. 몸 성할 때 열심히 벌어서 아들한테 적금이라도 하나 더 남겨줘야겠다고. 그래서 아침마다 파스 붙이고 한의원에 침 맞으며 일하러 나간다는 거지.
우리 세대만 해도 일하지 않는 걸 죄악시하잖아. 어머니 세대는 말도 못 하지. 손바닥 만한 땅이라도 놀고 있으면 어느새 밭 갈아 깻잎에 고추에 오이씨 심어 텃밭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세대잖아. 본인은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일하시면서도 자식들 모두 대학에 보냈지.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하면서. 그러니 자식들은 다 고학력이야. 근데 대기업이나 공기업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워. 내가 그래도 서울 무슨 대학 나왔는데, 이름도 없는 중소기업은 못 들어가겠고.... 배울 만큼 배웠는데 이제와 알바나 막노동도 못하겠고. 다들 눈이 너무 높아진 거야.
그러게 말이다. 내가 결혼하고 시댁을 경험하면서 요상하다 싶었던 게 딱 이런 거였다. 시어머니가 아들한테 무슨 말을 못 한다. 자식을 남편처럼 아니, 남편보다 더 어려워하며 살고 있었다. 아들은 큰일 할 사람이라 늘 더 바깥일로 바쁘고, 바깥일은 늘 중요한 일순위였다. 여기에 집안일은 여자들끼리 의논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생각에 갇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아들과 의논해야 할 일은 늘 며느리들과 의논한다. 근데 웬걸. 사춘기 지나며 나 또한 내 안에 그런 구도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던지. 어렸을 때부터 권위보다 지나치게 많은 자율을 부여하고 스몰톡이 없던 우리 집안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여기에 핸드폰과 게임과 전두엽의 문제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아들이 사춘기에 들어서자, 무슨 말을 못하겠다. 좋은 대학만 가면 다 허용되는 프리 패스. 금수저도 돼지 엄마도 아닌 내가 미안해서. 대학 입시를 앞둔 시기가 되면 에미란 에미들은 죄다 자식 눈치 보느라 모두 신경증 환자가 된다.
어렸을 때부터 시험을 기준으로 한 경쟁 구도 속에 내몰려 온갖 스트레스와 압박에 시달린 아이들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지, 그러다 보니 가장 만만한 게 엄마가 아닌가.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쏟아내는 아들의 감정 횡포를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혹시 시험 망칠까 봐 말 한마디 못하며 가슴 앓이를 한다. 그때그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모두 수능 날짜 뒤로 맞혀 놓은 채. 대학에 들어가면 끝일까? 대학 등록금 때문에 다시 원치 않은 일을 하러 나간다. 사회에 나가기 두려워하는 아들이 대학원과 유학으로 기간을 늘려갈 때까지 그렇게 우리 여자들의 시간도 유보된다.
졸업하고 나온 세상은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다들 너무 풍요롭게 자라다 보니 아이들에게 만족할 만한 페이란 없다. 그들은 일단 우리와 돈을 버는 목적부터 다르다. 돈은 인생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일 년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도 가야 하고, 가끔 오마카세를 먹으며 SNS에도 올려야 한다. 독립하고 싶어도 부동산이 너무 비싸니 자기 월급으로는 텍도 없다. 그냥 부모님 집에 눌러 산다. 그러니, 되려 자식이 불편한 엄마들이 돈을 벌러 나간다. 형태만 다를 뿐. 아들 모시고 사는 노모들의 나라가 반복된다.
정말 기이하기도 하지. 한참 이웃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즈음. TV와 유튜브에서도 이런 세태를 분석하는 영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시대 아들들은 어쩌다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된 걸까.
아이들 어렸을 때. 나는 '결핍이 없는' 세상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고는 생각했다. 너무 풍요로워서 애들이 거칠 게 없구나. 없어본 적이 없어서, 기다릴 필요가 없어서, 실패 앞에서 이렇게 쉽게 좌절하는구나. 그렇다고 내 소중한 자식에게 '없는 결핍'을 만들어 줄 만큼 절도 있는 부모도 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지금,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결핍한 부모가 되었다. 교육에 대해서만큼은 부글부글한 일이 많아서, 내 자식에게 남들만큼 좋은 경험을 주지 못하는 우리 능력 때문에 오래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든다는 건, 다행히 세상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만약 작년 이맘때 즈음. 고등학교 내내 공부를 놓았던 아들이 굳이 지방 대학이라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면 나는 그 역시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들 등록금 때문에 지금 이 나이에 원치 않는 일을 하러 알바를 뛰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게 나에게 어느 정도 경제적 독립과 여유를 가져다 주었을 수도 있지만. 하지만, 그게 미래의 아들에게 어른 말만 잘 들으면 놀고먹어도 괜찮다는 어떤 빌미가 되었을지 누가 또 알겠는가.
늘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나이지만, 지금 내가 어렴풋이라도 아는 두 가지가 있다. 나의 수완 없음이 어떤 의미로 아들의 경제적 독립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고, 나는 아들을 위해 늙어서 까지 원치 않는 일을 하러 나가는 노모는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나도 열심히 살지 않았나. 그러니 늙은 나보다는 젊은 아들이 더 열심히 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