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엊그제 버섯돌이 파스타를 배웠다며, 오늘 만들어주겠단다. 아들은 이곳에서 알바를 시작한 지 2주 째부터 혼자 오픈을 하기 시작하더니, 3주 째엔 혼자 마감까지 다 하고 있다. 보통 5시에 아들이 먼저 와 오늘 쓸 재료들을 손질해 놓으면 사장님은 6시에 출근해서 함께 합을 맞추며 손님을 받는다. 사장님이 12시까지 마지막 안주 주문을 받은 뒤 퇴근 하면 아들이 그 뒤를 받아 1시까지 손님 시중을 들다 마무리를 하는 패턴. 오늘은 손님이 많지 않은 수요일이니, 마감 맞춰 와서 자기가 만든 파스타를 맛보란다.
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 아들이 일하는 식당 앞에 주차를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홀에는 아무도 없었고, 주방에서 뭔가 분주히 움직이던 아들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꺾어 나를 맞았다. 1평 남짓한 주방. 아들은 가스불 위에서 버섯과 양파가 담긴 웍을 연신 앞뒤로 흔들며 볶고 있었다. 엄마, 이거 손목 꺾는 게 중요하거든. 어때? 나 잘 꺾지? 그래, 울 아들. 잘하네. 그럴듯하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핸드폰을 꺼내 들고 아들의 현란한 웍질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사이, 아들의 핸드폰이 울렸다. 뒤늦게 포장 주문이 하나 들어왔다는데 마침 엊그제 배운 파스타랑 꼬치 주문이니 혼자 준비해 볼 수 있겠냐는 사장님의 전화.
전화를 끊은 아들이 나보고 나가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황급히 냉장고로 가서 꼬치 몇 개를 꺼내 와 불 위에 올렸다. 꼬치가 익는 사이 아들은 웍에 파스타 소스 국물 베이스를 두 국자 털어 넣고, 양념통에서 미리 만들어놓은 크림소스도 두 숟가락을 떴다. 나는 아들을 도와 포장용기 몇 개를 꺼내놓고 음식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아들이 맛있게 익은 꼬치 위에 소스를 덧발라 앞뒤로 한번 더 뒤집어 놓았을 때, 마침 포장 주문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앞뒤로 꼬치의 굽기 정도를 확인한 아들이 쿠킹호일을 넓게 펴고 꼬치를 담는다. 어느새 포장용기로 옮겨진 파스타에는 후추와 몇 가지 향신료가 예쁘게 플레이팅 되어 있었다.
손님을 보내고 다시 파스타를 만들고 있는 아들의 옆모습을 지켜본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를 뻘겋고 무른 상처가 손등에 가득했다. 불에 데이고 물에 젖은. 아들 말로는 주부 습진 생진지 좀 됐다는데, 그걸 이제야 보다니.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들이 새로 만든 파스타를 접시에 담아 내왔다. 평소에 워낙 짜게 먹어서 처음엔 간을 잘 못 맞추겠더니, 이제는 자기 입맛에 조금 싱겁다 싶게 만들면 되더라며, 내게 빨리 먹어보란다. 포크에 누들을 감아 입안에 넣는 순간, 트러플 오일과 잘 어우러진 고소한 크림향이 입안 가득 밀려들었다. 너무 맛있다! 간도 딱 맞네. 앞에서 기대에 찬 모습으로 내 반응을 기다리던 아들이 환하게 웃더니, 그제야 자신의 몫으로 한 줌 크게 집어 앞접시에 옮겨 담았다. 하, 집에선 라면이나 겨우 끓여 먹던 녀석이 파스타라니. 다시 코끝으로 뭔가가 울컥 올라왔다.
파스타를 알뜰하게 챙겨 먹자 아들이 이제 주방 마무리를 해야 한다며 몸을 일으켰다. 아들은 그냥 앉아 기다리라는데, 그럴 수 없었다. 빗자루를 들고 바닥이라도 쓸겠다니까 그제야 아들이 그럴 거면 식탁 위와 메뉴판도 행주로 한 번씩 닦아 달란다. 아들은 다시 주방에 들어가 남은 재료를 착착 래핑 하여 냉장고로 옮겨 놓았다. 커다란 프라이팬과 조리도구들을 설거지해서 제자리에 걸어놓고, 물을 부어 바닥 청소도 야무지게 마무리했다. 분리수거 쓰레기를 정리하고 올라오니 아들은 마지막으로 주방 개수대 사이사이를 닦고 있었다. 근데 음식도 아닌데 가끔 토치를 쓰네?
"어머, 너 지금 토치로 기름때 녹이면서 닦고 있는 거야? 사장님이 그렇게까지 하래?"
"아니. 그냥 그렇게 닦으면 깨끗하게 잘 닦이길래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와... 이제 시키지도 않은 것까지 하고 있네. 어린 시절 깔끔 강박이 있던 아들이었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며 아들의 방은 늘 쓰나미가 지나간 형국이었다. 샤워하고 들고 들어간 수건은 대여섯 개가 될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바닥엔 늘 입었던 옷과 앞으로 입을 옷과 책과 과자 부스러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 녀석이 밖에 나와선 다시 이렇게 깔끔쟁이로 변해 있다니. 이것 역시 자본주의의 힘인가!
"엄마, 나 요즘 진짜 열심히 해. 사장님도 너무 좋으시고, 요리 배우는 것도 재밌어. 사장님이 '이렇게 열심히 하는 알바 녀석은 네가 처음이야'라고 생각하실 만큼 잘하고 싶어."
하긴. 아들이 사장님에게 폭 빠진 건 확실하다. 원래 하루에도 몇 번씩 라면을 먹던 아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나서부터 라면을 먹지 않았다. 내가 어찌 된 일이냐 물어보았더니, 사장님이 피부가 엄청 좋으셔서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았더니, 기름에 튀긴 걸 먹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단다. 아~ 그 초딩도 다 아는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단 말이지? 아들이 사춘기에 들어서며 라면을 먹기 시작하면 에미들이 골백번도 더 하는 그 잔소리를? 우리 아들들 귀에는 다른 남자어른이 말해야만 비소로 들리는 보청기라도 박혀 있나.
그 남자어른이 얼마 전에는 아들에게 또 이렇게 좋은 말씀도 해주셨다.
"내가 평상시 요리 같은 안 해 봤잖아. 그래서 배워도 잘 못할까 봐 걱정이 돼서 사장님한테 물어봤거든. 재능이 없어도 괜찮을까요? 그랬더니 사장님이 그러시는 거야. 요리를 잘하는 재능보다, 성실한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머리가 좋은 것보다 엉덩이가 더 중요하다. 이 또한 우리가 사춘기 아들에게 골백번도 더 했던 얘기건만. 그래. 아무리 좋은 얘기면 뭐 하냐. 발화자에 대한 신뢰가 없는데. 그럼 말짱 도루묵인 거지. 아들 이야기를 듣는데, 단 한번 만에 꽉 막힌 아들 귀를 뻥 뚫어 전두엽 앞머리에 그 귀한 말씀을 꽂아주신 사장님께 다시 한번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사춘기를 지독하게 치른 아들이, 뒤늦게 공부에 뛰어드는 반전도 없자, 진심으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이럴 거면 아들에게 집안일이라도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둘러보면 주변 여자애들의 비상이 눈이 부셨다. 전두엽이 마비된 아들들이 별 것 아닌 실패 앞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동안 여자애들은 뭐든 악착같았다. 통계와 숫자도 여지없이 그 변화를 보여 주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남학생 일색이었던 의대, 법대 모두 여학생들이 잠식해 가고 있었고, 아들들은 점점 더 많은 여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교실에 앉아 몸을 비틀고 있었다. 미래학자도 뭣도 아닌 나는 그저 아들 둔 에미의 촉으로 아들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는 걸 직감했다. 이런 식이라면 예전에 바깥일=남자일, 집안일=여자일이라는 구도는 순식간에 뒤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밖에 나가 일하는 동안 남자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시대도 곧 도래하지 않을까. 그럼 집안일에라도 특화된 아들을 만들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니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런 생각도 쓰잘대기 없기는 마찬가지. 공부도 먹히지 않던 아들에게 집안일이 먹혔을 리 없고, 집안일이란 게 솔직히 그렇게 꼭 배워야 익혀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여자들이 결혼하고 따로 집안일을 배워서 하게 된 게 아니듯. 때가 되면 다 배우고, 필요하면 하게 되는 법. 맘만 먹으면 몇 달 만에도 다 배운다. 단순한 서빙 알바로 시작해, 한 달도 안돼 주방 보조를 마스터하고, 지금 파스타를 만들고 있는 내 아들을 보니 더욱 그렇다.
아들들의 세계는 순식간에 뒤바뀐다. 그러고 보니 아들에게 반전이 없는 게 아니었네. 그저 반전이 와도 그게 반전인 걸 몰라보는 우리 부모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