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이 없었다면, 실망도 없었을 터. 그날 이후 새로 온 알바에 대한 아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아들이 생전 누구에 대해 그렇게 신랄하게 말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몸에서 냄새가 너무 많이 나는데, 엄마 미치겠어."
"흠... 며칠 안 씻는다고 그렇게 냄새가 나진 않을 텐데."
"그러니까. 너무 더러워. 어떻게, 내가 좀 씻고 다니라고 하면 기분 나빠하겠지?"
"그러게. 왜 그럴까. 너 학교 다닐 때도 반에 그런 애 있었잖아. 그때 걔는 왜 몸을 안 씻고 다녔을까?"
"부모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애를 안 씻겼겠지."
"그 친구도 혹시 그런 사연이 있는 건 아닐까?"
다음 날 하루 더 일을 하고 온 아들이 말했다.
"엄마, 정말 그런 가봐. 그 친구 부모님이랑 같이 안 산대. 혼자 산대. 내가 오늘 물어봤거든.돈 좀 모았냐고. 경력이 있다고 하니깐 그동안 모은 게 꽤 될 거 같아서 물었거든. 그랬더니 하나도 못 모았다는 거야. 내가 의아해서 쳐다봤더니 더 이상 얘길 안 하더라."
"그것 봐. 얘기를 안 할 땐 뭔가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아버지가 폭력적이라거나, 알코올 중독이어서 되려 애들 돈을 뺏어간다거나. 네가 몰라서 그렇지 의외로 그런 집 많아."
"그러니깐. 집안이 사정이 안 좋은 가봐.게다가 그 친구는 오전에 다른 식당에서 일하고 또 저녁에 여기에 오는 거래."
"그렇구나. 피곤하니까 저녁엔 일에 의욕이 없을 수도 있겠네. 다 이유가 있구먼.겪어 봐야 한다니까. 당분간은 좀 두고 지켜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상황도 사람도 변하기 마련이거든. 일주일만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지내보자."
"이런 거 알고 나니까 내가 더 미치겠는 게, 걔 때문에 내 자리 뺏긴 거 같아서 기분이 안 좋은데 내가 사고 친 게 있으니까 아무 말도 못 하겠고. 일은 더 많아져서 몸은 피곤한데, 그 친구 사정 아니까 또 뭐라 말을 못 하겠는 거야. 아, 엄마 나 그만둘까?그만두고 싶어. 사장님 믿었는데, 그래서 정말 잘하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그래서 나에 대해서 만큼은 좀 특별하게 생각하신다 싶었는데... 그게 다 내 착각이었다고 생각하니까 이제 아무것도 못하겠어."
아들이 어떤 일에 이렇게 마음을 많이 쓰고 생각이 많았던 걸 본 적이 없던지라, 아들이 일사천리 쏟아놓는 감정의 회오리 앞에 나 또한 휘청거렸다.
"사장님도 여러 가지 일을 하니까, 이것저것 다 계획하고 배려해서 하진 못하실 거야. 사람 구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변수가 많은데...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사람을 구하다 보니 마침 그 친구가 오게 됐는데, 네가 워낙 보조를 잘하니까 둘이 잘 맞춰해도 얼추 돌아가겠다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
"사장님도 그렇게 말씀하시긴 하셨어. 내 위로 제대로 된 실장이 왔으면 내가 요리를 배워 실장이 될 가능성 자체가 없어지는 거라고."
"장사하는 사람이 돈 생각을 안 할 수는 없거든. 네가 보조를 안정적으로 잘하다 보니 사장님 생각에 좀 어린 요리사를 싼값에 써도 잘 해낼 겉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나이 어린 파트너가 온 게 너한텐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지.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기다려보는 것, 참아내는 것. 모두 아들에겐 가장 취약한 단어였다. 아니나 다를까.아들은 일주일만 기다려 보자고 했던 내 말을 무시하고는다음날로 바로 사장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아들은 지난 몇 주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자신의 심경을 사장님에게 솔직히 모두 다 털어놓았다고 했다. 사장님에 대한 신뢰의 마음, 불을 낸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시작하며 가진 자신의 애정과 그것 때문에 더 불거진 불편한 마음들에 대하여.
일을 시작한 지 2달이 채 안된,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운 지는 3주가 갓 지난, 불을 내고 다시 일을 개시한 지는 3일이 안된 날이었다.
과연 사장님은 이 당돌한 알바 녀석의 말에 어떻게 화답하실지 못내 궁금했던 다음 날. 웬일인지 12시 넘어도 아들의 전화가 없었다. 아침에 밥을 차리고 있는데 오래간만에 말끔한 낯빛을 한 아들이 밝은 햇빛을 뒤로 한채 부엌으로 걸어 들어왔다.
내가 어떻게 됐어? 하는 표정으로 아들을 쳐다보자, 아들이 약간 비현실적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