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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7. 2024

전화위복

2개월 만에 홀 서빙에서 주방 실장으로


애정이 없었다면, 실망도 없었을 터. 그날 이후 새로 온 알바에 대한 아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아들이 생전 누구에 대해 그렇게 랄하게 말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몸에 냄새가 너무 많이 나는데, 엄마 미치겠어."

"흠... 며칠 안 씻는다고 그렇게 냄새가 나진 않을 텐데."

"그러니까. 너무 더러워. 어떻게, 내가 좀 씻고 다니라고 하면 기분 나빠하겠지?"

"그러게. 왜 그럴까. 너 학교 다닐 때도 반에 그런 애 있었잖아. 그때 걔는 왜 몸을 안 씻고 다녔을까?"

"부모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애를 안 씻겼겠지."

"그 친구도 혹시 그런 사연이 있는 건 아닐까?"


다음 날 하루 더 일을 하고 온 아들이 말했다.

"엄마, 정말 그런 가봐. 그 친구 부모님이 같이 안 산대. 혼자 산대. 내가 오늘 물어봤거든. 돈 좀 모았냐고. 경력이 있다고 하니깐 그동안 은 게 꽤 될 거 같아서 물었거든. 그랬더니 하나도 못 모았다는 거야. 내가 의아해서 쳐다봤더니 더 이상 얘길 안 하더라."

"그것 봐. 얘기를 안 할 땐 뭔가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아버지가 폭력적이라거나, 알코올 중독이어서 되려 애들 돈을 뺏어간다거나. 네가 몰라서 그렇지 의외로 그런  많아."

"그러니깐. 집안이 사정이 안 좋은 가봐. 게다가 그 친구는 오전에 다른 식당에서 일하고 또 저녁에 여기에 오는 거래."

"그렇구나. 피곤하니까 저녁엔 일에 의욕이 없을 수도 있겠네. 다 이유가 있구먼. 겪어 봐야 한다니까. 당분간은 좀 두고 지켜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상황도 사람도 변하기 마련이거든. 일주일만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지내보자."

"이런 거 알고 나니까 내가 더 미치겠는 게, 걔 때문에 내 자리 뺏긴 거 같아서 기분이 안 좋은데 내가 사고 친 게 있으니까 아무 말도 못 하겠고. 일은 더 많아져서 몸 피곤한데, 그 친구 사정 아니까 뭐라 말을 못 하겠는 거야. 아, 엄마 나 그만둘까? 그만두고 싶어. 사장님 믿었는데, 그래서 정말 잘하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그래서 나에 대해서 만큼은 좀 특별하게 생각하신다 싶었는데... 그게 다 내 착각이었다고  생각하니까 이제 아무것도 못하겠어."


아들이 어떤 일에 이렇게 마음을 많이 쓰고 생각이 많았던 걸 본 적이 없던지라, 아들이 일사천리 쏟아놓는 감정의 회오리 앞에 나 또한 휘청거렸다.


"사장님도 여러 가지 일을 하니까, 이것저것 다 계획하고 배려해서 하진 못하실 거야. 사람 구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변수가 많은데...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사람을 구하다 보니 마침 그 친구가 오게 됐는데, 네가 워낙 보조를 잘하니까 둘이 잘 맞춰해도 얼추 돌아가겠다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

"사장님도 그렇게 말씀하시긴 하셨어. 내 위로 제대로 된 실장이 왔으면 내가 요리를 배워 실장이 될 가능성 자체가 없어지는 거라고."

"장사하는 사람이 돈 생각을 안 할 수 없거든네가 보조를 안정적으로 잘하다 보니 사장님 생각에 좀 어린 요리사를 싼값에 써도 잘 해낼 겉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나이 어린 파트너가  게 너한텐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지.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기다려보는 것, 참아내는 것. 모두 아들에겐 가장 취약한 단어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일주일만 기다려 보자고 했던 내 말을 무시하고 다음날로 바로 사장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아들은 지난 몇 주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자신의 심경을 사장님에게 솔직히 모두 다 털어놓았다고 했다. 사장님에 대한 신뢰의 마음, 불을 낸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시작하며 가진 자신의 애정과 그것 때문에 더 불거진 불편한 마음에 대하여.


일을 시작한 지 2달이 채 안된,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운 지는 3주가 갓 지난, 불을 내고 다시 일을 개시한 지는 3일이 안된 날이었다.


과연 사장님이 당돌한 알바 녀석의 말에 어떻게 화답하실지 못내 궁금했던 다음 날. 웬일인지 12시 넘어도 아들의 전화가 없었다. 아침에 밥을 차리고 있는데 오래간만에 말끔한 낯빛을 한 아들이 밝은 햇빛을 뒤로 한채 부엌으로 걸어 들어왔다.


내가 어떻게 됐어? 하는 표정으로 아들을 쳐다보자, 아들이 약간 비현실적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엄마, 사장님이 어제 나보고 실장 하래. 어린애 내보내고 내일부터 나한테 아르바이트생 하나 붙여주시겠대.


그리고 아직 탕과 국물 요리는 해보지도 못한 아들에게 오늘부터 주방부터 홀까지 다 전담하라고 하셨단다.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을 가르쳐 가면서. 이번엔 우리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이렇게 가뭄에 콩 볶아 먹듯, 후다닥?


아들은 홀 서빙 알바를 구한 지 두 달 만에 이렇게 한 가게를 전담하는 실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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