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감히 그러냐고요, 리드 부인? 어떻게 감히?
그야 '사실'이니까요. 당신은 내가 감정도 없고, 사랑이나 친절 같은 게 전혀 없어도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난 그렇게 살 수 없어요. p.68~69
제인이 지내게 될 로우드 학원의 운영자이자 성직자 브로클허스트 씨가 게이츠헤드에 방문한다. 첫 대면하는 자리에서 리드 부인은 제인을 성격이 못된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며, 제인을 자기 처지에 걸맞은 고분고분한 아이로 훈련시켜줄 것을 당부한다. 그에 발끈한 제인은 리드 부인이야말로 거짓말쟁이요, 위선자이며, 힘닿는 데까지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말하고 다닐 거라고 쏘아붙인다. 하지만 제인은 곧 우쭐함과 자책감이라는 복잡한 감정 앞에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고작 열 살 밖에 안된 여자 아이가 맞서기에 리드 부인이라는 세계는 너무 거대했던 것이다.
어느덧 사십 중후반의 경단녀가 된 나. 남편은 아직까지 직장에서 잘 버티고 있다. 아내를 당장 어디 카운터라도 맡아 나가게 할 만큼 나락으로 떨어진 적도 없다. 딱 먹고살 만큼의 삶. 남편의 경제력에 맞춰 규모를 줄이고 가짓수를 줄이며 살고 있다. 다들 그러고 살(아야)지 않나. 보탬이 될 것도 아니면서, 감사라도 하며 살아야지. 그 정도도 모를 만큼 형편없는 여자는 아니다. 그런데도 한번 끓어오른 자의식은 쉬이 가라앉을 줄 몰랐다.
어느 날 <마담 보바리>를 읽는데, 주인공 엠마의 욕망이 딱 내 것 같았다. 엠마에게 권태로운 시골 생활의 유일한 탈출구는 소설. 남편은 시골 의사인데 그저 묵묵히 일만 하는 캐릭터다.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여자의 욕망이나 감수성 따위에 무관심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는 깊은 내적 갈망을 느낀다. 남편이라는 세계만으론 채워질 수 없는. 흔히 엠마의 파국을 상류사회를 향한 그녀의 허영심이나 바람기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그렇게 뻔한 내러티브를 가진 소설이었다면, 시대를 거슬러 공명하는 '고전'으로 자리 잡았을 리 없다. 당시 누군가 그녀에서 물어보았더라도, 엠마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을 내적 동요. 그 감정에 대해 답하려면 그로부터 100년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한다.
여성 인권과 여성의 사회진출이 막 시작되던 20세기 중반.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 그 이전 2천 년과 비교해 볼 때 -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자유와 평등의 기치 아래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인 덕분이다. 법조문과 사회적 인식과 환경과 조건들이 다각도로 업데이트되어 갔다. 이제 여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며, 능력이나 기회에 있어 차이가 없음을 배우고 자란다.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학에 들어갔고 학력 수준도 비슷해졌다. 하지만, 사회는 배운 여자들의 자아 성취를 이뤄줄 만큼 많은 자리를 제공해주진 못했다. 배울 만큼 배운 여자들 대다수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여전히 결혼하고 집구석에 들어앉았다. 예쁜 테이블 보에 저녁 식사를 차려놓고 퇴근하고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그들은 정원 달린 넓은 집에서 생계 걱정 없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어느 날 '베티 프리댄'은 자신의 가슴 한 구석 공허함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 대학 동창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들 안에도 자신과 동일한 불안과 우울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자신의 책 <여성의 신비>에서 이 감정을 이렇게 명명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이라고. 1963년, 현대 여성운동에 봉화를 올린 이 유명한 책은 그렇게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없었다.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특별히 전공하고 싶은 게 없어서 '그냥' 국문과에 지원했다. 어디 꼭 입사하겠다는 다부진 포부 없이 인연이 닿은 회사에 들어갔고, 그즈음 만난 남자와 결혼하고, 직장과 양육 사이에 분투하다 쫓기듯 사표를 냈다. 그리고 10여 년 두 아이를 위해 살았다. 이제와 돌아보면, 배울 만큼 배운 여자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어쩌면 이렇게 심사숙고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남자와 어떤 가정을 꾸미고 싶은지, 그걸 뒷받침해주는 현실은 어떤지.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의 외모부터 집안까지 따져가며 결혼하는 여자들을 계산적이라 생각했다. 순리대로 산 걸까, 대책 없이 산 걸까. 떠밀려 살았다며, 마치 내 선택이 아니었던 듯 구는 지금의 내 태도도 맘에 들지 않는다.
이 즈음에서 다시 어떤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운다. <마담 보바리> 속 엠마의 시어머니다. 엠마가 자꾸 집안일에 넋을 놓으니까 걱정이 된 엠마의 남편이 어느 날 자기 엄마를 찾아간다. 둘이 마주 앉아 나누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네 아내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아니?”
하면서 보바리 노부인은 말을 이었다.
“억지로라도 일을 시켜야 하는 거다. 손을 놀려서 하는 일을 말이다! 만일 저 애도 숱한 다른 사람들처럼 먹을 것을 벌어야 할 처지라면 그런 우울증은 생기지 않았을 게다. 그런 것은 머릿속에 들끓는 온갖 잡념들과 하는 일 없는 한가한 생활 때문에 생기는 거야.” (p.185)
여자가 일 안 하고 시간이 남아도니 쓸데없는 생각이나 한다는 클리셰. 보바리 노부인이 엠마를 향해 “소설책 따위나 읽으니까 그러는 거”라고 막 비아냥거리는데, 순간 이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싶었다. 수완도 없으면서 책이나 읽는 여자들. 어쩌면 나는 리드 부인의 말처럼 '자기 처지를 아는 고분고분한' 여자로 머물러야 하는 건지 모른다. 내 주변만 해도 나보다 더 잘난 여자들인데 이상한 남자랑 사는 여자가 얼마나 많나. 나보다 더 성격 좋고, 살림도 잘하는 옆집 여자의 남편이 어느 날 그러더란다. 더 이상 못 버티겠다고, 이제 네가 좀 나가 벌어오라고. 그 여자 잘 나갈 땐 아이 양육이 더 중요하니 집안에 들어와 앉으라 하더니, 이제 와서 등 떠밀더라 했다. 경력 단절된 지 10년이 넘은, 이제 좀 있으면 오십을 바라보는 초로의 여자를 써줄 데가 어디 있다고. 여자 벌이에 기대서 여태 놀고먹는 남자, 회사가 잘되자 바람 난 남자, 아내보다 시어머니가 더 우선인 남자, 평상시엔 멀쩡한데 술만 마시면 여자를 때리는 남자. 여전히 내 주변에 있는 이웃 남자들이다. 그러니 고만고만해도 안정적으로 벌어다 주고 밖으로 돌지 않는 남자와 사는 나는 얼마나 행운인가.
그렇게 늘 최악의 상황과 비교하며 살았다. 이 정도면 감사해야 한다고. 근데 어쩌랴. 나는 이제 그것만으론 안 되겠는 걸. 사십 줄을 훌쩍 넘기고 이제야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걸. 이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은 걸. 그래서 엠마가 자의식에 눈뜨고, 자기 욕망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계속 응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엠마는 당시 대부분 사람들처럼, 혹은 그녀의 남편처럼, 주어진 환경과 운명에 그대로 순응하며 살진 않았으니까.
감사는 내게 주어진대로 사는 삶이라서.
한동안 '감사'는 서랍 깊숙히 감추어 두려 한다. 그 이상으로 한번 살아보려 한다. 얼어붙은 내 목소리가 낙낙해질 때까지만.
1.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저, 김화영 역. 민음사.
2. 영화 <마담 보바리> 스틸 컷. 소피 바르트 감독, 미아 와시코브스카 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