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되기 1주일 전쯤.
이마트 다녀와서 부지런히 장바구니를 정리하는데
이 녀석이 조용하다.
살짝 문을 열고 들여다봤더니
이렇게 우아하게 요가를 하고 있는 거 있지?
한참을 똬리 풀 생각이 없어 보며
찰칵찰칵, 여러 장을 눌렀다.
정말 유연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곧 뒤집겠다고!
아기가 눈을 맞추고, 목을 가눈다. 백일이 지나자 뒤집기 시작한다.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앞발(?)을 쭈욱 내밀었다 뒷발을 잔뜩 뻗기도 하고, 엎드려서 할 수 있는 모든 포즈를 구사한다. 그러길 며칠. 가슴을 바싹 들어 올린 채 공중에서 바둥바둥, 돌아보면 스카이다이빙이 한창이다. 이제 곧 기어 다닐 일만 남았다.
아기는 큰다. 저절로 큰다.
엄마를 보고 따라 배우는 '동일시'. 그 전 단계에서 이미 아기는 저절로 자신의 발육을 착착 쌓아간다. 오랜 세월 몸에 새겨진 언어다. 몸을 뒤집는 엄마를 보고 엎드리지 않는다. 기어 다니는 엄마를 보고 기는 게 아니다. 일어서기 전까지 아기들이 스스로 밟아가는 발육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인간이 사족보행에서 직립보행으로 변화해가는 그 오랜 시간을 한 장면 안에 압축시킨 진화의 그림을 바라보는 것처럼 경이롭다.
이렇게 몸에 새기고 태어나는 것들이 강아지에게도 있다.
앉아, 엎드려, 기다려... 먹어!
강아지를 훈련하는 언어다. 강아지에게 '앉아'를 가르치기 위해 인간이 억지로 강아지 엉덩이를 내리눌러 앉히지 않는다. 어미나 인간의 행동을 보며 따라 배운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 몸에 새긴 몇 가지 행동을 차례로 반복한다. 인간이 앉아, 할 때 우연히 앉았더니 간식을 준다. 앉아, 할 때 엎드렸더니 주지 않는다. 아, 앉아, 는 앉으라는 얘기구나, 하고 그렇게 앉아,를 배운다.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배운다.
아기의 발달단계를 보며 1만 년 전 개를 가축화하기 시작했던 시대를 상상한다. 앉아, 엎드려, 기다려... 먹어! 그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켜켜이 개의 몸에 새겨진 그것. 몇만 년을 더 거슬러, 7만 년 전쯤 시작됐다는 인간의 인지 혁명에 대해서도 상상한다.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동물과 확연히 갈라놓았다는 그 사고방식과 의사소통의 혁명에 대해. 왜 개는 인간처럼 그 이상을 획득하지 못했을까.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정교한 의사소통의 수단을 발달시킬수 있었던 걸까. 인간만이 획득한 언어니 상징이니 상상의 세계는 이 얼마나 눈부신 것인가.
개와 인간을 가르는 그 많은 진화의 시간과 가지와 조건에 대해 상상한다.
젖을 한참 빨다가 다 먹었다 싶으면
훽, 고개를 반대방향으로 뺀 다음
(가끔은 버림받는 기분;)
망아지처럼 두 손 두 발 옆으로 나란히 놓고 자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 마구 기운이 뻗치면
책이나 엄마 베개 밑에 두 손을 넣어
들어 올리는 차력을 손보이기도 하고.
엎드린 상태에서 360도 방향으로 자유 회전하는 것은 물론
이제 앉아 있다가 옆으로 기울어져도 바로 울지 않고
엉덩이와 다리를 이용해 다시 포즈를 잡고 고개를 들기도 한다.
아기가 점점 환경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 2006년 5월 9일, 6개월 차 육아일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