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의 눈으로 본 성 제롬
바티칸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시스티나 성당이나 라파엘로 방으로 몰려가는 그 반대쪽 미술관 한켠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 제롬(Saint Jerome in the Wilderness)> 작품이 있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배경에 깊은 눈매와 거칠게 남겨진 붓의 흔적. 이 그림은 그 어떤 화려한 제단화보다도 더 깊은 고요와 긴장을 품고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언제나 관심이 많은 나는 이 멋스럽지 않은 그림 앞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이 작품을 그린 것은 1480년대 중반입니다. 그의 예술 세계가 기술과 인체 해부, 빛과 심리 표현에 몰입하던 시기입니다. <성 제롬>은 여러 조각으로 흩어졌던 것을 후대가 복원해 오늘에 이르렀고 완성되지 않은 만큼 표현의 본질이 더 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정말 레오나르도는 완성에 극도로 완벽함을 기했던 거 같습니다.) 그림 속 성 제롬은 휑한 눈으로 뭔가를 포기한 듯한 모습으로 손엔 돌을 들고 자신의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그는 금욕의 상징이었습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며 고독 속에서 번역과 연구에 생을 바친 인물입니다. 그의 옆에는 늘 함께 하는 사자가 있고 그의 눈에는 세상도, 사람도 그리고 자신도 아닌 내면의 어떤 진실만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성 제롬(히에로니무스, St. Jerome, 347~420)은 4세기 로마 제국 말기의 신학자, 수도자 그리고 번역가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주로 아는 전형적인 리더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는 군중을 모으지도 않았고 정치적 권위를 가지려 하지도 않았으며 전쟁이나 개혁의 선봉에 선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만 외로움을 벗 삼아 언어와 진리의 기반을 다져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성 제롬은 오늘날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내면에서 완성되는 리더십’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 제롬은 젊은 시절 로마에서 수사학과 철학을 배우고 동방으로 건너가 금욕과 학문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유대 광야에서 홀로 수도생활을 하며 자기 내면과 신 앞에서 매일 싸워야 했습니다. 리더는 군중 속에서 키워지는 것 같지만 진짜 리더십은 혼자 있는 시간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성 제롬은 그 누구보다 고독을 자기 수련의 시간으로 바꾼 사람이었습니다.
성 제롬은 성경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접 라틴어로 번역하여 4세기말에 '불가타 성경(Vulgata)'을 완성합니다. 이는 이후 천년 가까이 서방 기독교 세계에서 표준 성경이 되었고, 교회의 교리, 예배, 신학 체계를 통일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전달하는 능력은 리더십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그는 말재주가 아닌 말의 본질을 다루는 통찰과 인내를 보여준 리더였습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성 제롬은 종종 돌로 자신의 가슴을 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이는 단순한 고행이 아니라 자기 안의 어둠과 교만, 충동과 혼란을 매일 다스리는 싸움이었습니다. 리더는 외부와 싸우기 전에 자기 안의 본능과 충동, 불안과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낮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에서 그의 리더십을 볼 수 있습니다.
성 제롬을 그린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사자가 함께 등장합니다.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그의 전기적 일화를 기반으로 한 중요한 리더십 모티프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성 제롬은 광야에서 발에 가시가 박힌 사자를 마주쳤고 그 가시를 뽑아주자 사자는 그 이후로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충직한 동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자는 고대 로마에서 위협과 힘, 야성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성 제롬은 그것을 억누르거나 없애지 않았습니다.
대신 공감하고, 돌보며, 다스렸습니다. 이는 오늘날 리더십의 아주 중요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리더는 위협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협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힘을 자기 곁으로 이끌어내는 사람" 일 수 있습니다. 사자는 성 제롬이 외부의 위협뿐 아니라 내면의 야성도 어떻게 품고 다스릴 수 있는지를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성 제롬은 가장 시끄러운 시대에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질서를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중 앞에서 연설하지 않았고, 어떤 지시도 하지 않았으며,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찰은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을 연결했습니다. 우리는 간혹 리더는 앞서 가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어떤 리더는 말을 줄이고 정확함을 택하며 사람보다 진실을 먼저 보려 하기도 합니다. 그가 바로 성 제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리더십이 지금 우리에게 더 절실한 시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회사의 리더라는 자리에서 일을 하며 많은 말을 하게 됩니다. 지시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과장을 하기도 하며 ‘리더’라는 자리의 무게를 감당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더는 말이 아니라 언어의 본질을 해석하려는 사람. 앞서 나가기보다 먼저 자신 안을 다스린 사람. 군중을 이끄는 대신 진실에 기대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성 제롬의 모습은 리더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나의 자리에서 사람을 다그치기 전에 먼저 내 안의 충동과 조급함을 들여다보았는지. 나는 조직의 언어를 얼마나 깊게 이해를 했는지. 그들이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얼마나 잘 읽어내려 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다가온 거친 사자의 발에서 가시를 뽑아줄 용기는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 제롬은 목소리 높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자신의 자리를 조용히 감당함으로써 조직과 시대를 바꿔낸 사람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 제롬'의 그림을 보고 다시 한번 나의 리더십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