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와 미켈란젤로의 리더십

피렌체에서 리더십을 걷다

by 디케이

피렌체는 사람을 키우고, 공간을 내어주며, 시간을 쌓으면서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습니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둥근 돔 아래에서, 시뇨리아 광장의 발끝을 닿는 차가운 석판 위에서, 우피치 미술관의 복도와 회랑 사이 등지에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도시는 목소리를 높이거나, 위세를 앞세운 적이 없습니다. 그 대신 예술가에게는 붓을, 철학자에게는 책상을, 건축가에게는 돌을 내주며 자연스럽게 르네상스라는 문명을 품어냈습니다.


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 피어났습니다. 그 시작은 거대한 전쟁도, 새로운 왕의 즉위도 아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예술과 수학, 철학과 해부학, 천문학과 문학이 서로 경계를 넘어 만들어진 지식이 인간을 중심에 둔 감각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렇게 창조가 연속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피렌체는 단지 위대한 시대의 ‘무대’가 아니라, 그 무대를 만든 사람들을 길러낸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 위대한 거장이 있습니다. 피렌체에는 그가 있습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그는 단순한 조각가가 아니었습니다. 고독하게 시대를 꿰뚫어 본 사람이었고, 말없이 자신을 밀어붙인 예술가였으며, 어쩌면 르네상스의 끝에서 진짜 리더의 초상을 가장 인간적으로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벽을 넘은 사람,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는 일찍이 여러 세계를 오갔습니다. 조각과 회화, 인간과 신, 고통과 성취 등입니다. 그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로 하늘을 그렸고,〈피에타〉로 죽음과 슬픔을 조각했으며〈다비드〉로 인간의 결단을 돌 위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그가 늘 제한된 조건 속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만을 뽑아냈습니다. 그는 금이 가고 얇아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대리석에서 위대한 〈다비드〉를 꺼냈고 비좁고 어두운 천장 위에서 기독교 신앙의 우주적 서사를 펼쳤습니다. 이렇게 리더는 언제나 최적의 조건에서만 움직이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부족함에서 가능성을 먼저 보는 리더였습니다.

천정화.png <시스티나 천장화. 출처:위키백과>

또한 미켈란젤로는 예술의 경계를 넘었고 벽 너머의 구조를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대성당이 수십 년 간 여러 건축가들 손에서 설계와 공사가 엇갈리던 시기에 70세를 넘긴 나이에 수석 건축가로 임명되어 혼란스러운 설계들을 정리하고 중앙 돔의 구조와 비례, 상징성을 재정립했습니다. 그가 남긴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은 기술적 구조물을 넘어 르네상스 정신이 하늘로 올라가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는 조각가로 시작했지만 그의 손끝은 도시의 구조와 시간의 리듬을 설계하는 데까지 확장되었습니다.

피에타.png <피에타(정면, 위에서 본 모습. 출처:위키백과>

경쟁은 때로 예술보다 치열하다 – 르네상스 세 거장

미켈란젤로가 처음부터 찬란한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시대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연재 3. 밀라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참조하세요.)는 이미 위대한 이름이 있었고 곧이어 등장한 라파엘로 산치오라는 세련되고 정치적인 젊은 천재도 등장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두 인물과 비교되며 늘 불편한 삼각 구도 안에 놓였습니다. 다 빈치는 지성과 통합적 사고에 예술과 과학을 넘나드는 르네상스형 인간의 이상을 구현한 존재였습니다. (심지어 키도 크고 금발의 중후한, 뛰어난 외모까지 가졌습니다.) 그에 비해 미켈란젤로는 감정적이고 고집 세며 교육보다 직관과 집중으로 쌓은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예술가였습니다. 라파엘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뛰어난 화가였지만 동시에 인간관계의 천재답게 바티칸의 권력층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말 그대로 '정치와 예술 모두에서 세련된 인물'이었습니다.(우아한 외모를 지닌 인싸였습니다.) 이에 반해 미켈란젤로는 고립을 택했고 혼자 일하며 혼자 살아내내면서 비교와 견제, 그리고 예술을 넘어선 자존심의 싸움 속에 자신을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치열함이야말로 미켈란젤로라는 사람을 예술가를 넘어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만든 연료였는지도 모릅니다. 리더는 언제나 경쟁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고 갈등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다듬는 사람입니다.

르네상스 3대거장.png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리더는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꺼내는 사람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에서 미리 형상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형상을 구체화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돌을 빚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형상을 발견하고 구체화한 것입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느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꺼낼 수 있느냐가 미켈란젤로가 늘 고민했던 것입니다. 리더의 본질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리더는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 안에 이미 존재하는 가능성과 의미를 꺼내주는 사람입니다. 많은 리더가 자신의 이상형을 기준 삼아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들려 합니다. 형틀을 정해두고 그에 맞게 성과를 내게 하고 말과 행동을 조정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 리더십은 사람을 틀에 맞추는 것이지 본질적인 성장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결함 많은 돌’이라고 평가받았던 대리석에서〈다비드〉를 꺼냈습니다. 그는 그 돌이 ‘쓸모없다’는 말에 흔들리지 않았고 그 안의 생명을 꺼낼 줄 아는 안목(손과 눈)을 가졌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리더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에서 누군가가 ‘부족해 보인다’고 판단될 때, ‘역할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리더는 그 사람 안의 가능성을 꿰뚫어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과 과제를 제공해야 합니다. 말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만들어 주고, 기회를 건네고, 신뢰로 옆에 서 주는 것. 그것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미켈란젤로의 리더십입니다.


훌륭한 리더란 사람을 갈아 끼우는 관리자가 아니라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켜보는 조각가와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좋은 리더는 사람을 만들어내려 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 안에 있는 잠재력, 아직 보이지 않는 강점을 먼저 알아보고, 깎아내고, 꺼내줄 줄 아는 사람입니다. 훌륭한 리더는 혼자 빛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가능성을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리더십을 만들고 있을까요

나는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를 떠올리며 훌륭한 리더란 어떤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리더는 누구인가?'

리더란 가장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가장 조용히 뒤에서 자리를 만들고 기다리는 사람일까요? '나는 누군가의 가능성을 꺼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있는가?'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처럼 다방면에 밝지 않아도, 라파엘로처럼 인싸에, 정치에 능숙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자신의 목표를 꿰뚫어 보았고 누구보다 강하게 우뚝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는 여전히 말없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 도시에서 미켈란젤로는 여전히 자신이 꺼낸 인물 다비드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리더십은 남을 앞세우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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