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가문을 걷다
피렌체의 아침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돌길 위로 비치는 햇살, 아르노강을 따라 흐르는 잔잔한 물결, 그리고 그 끝에 자리한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의 위엄 있는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선 순간, 나는 단지 예술 작품을 감상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시간 속을 걷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카라바조, 그리고 이름 없는 수많은 르네상스 작가들의 숨결이 복도와 전시실마다 조용히 살아 있었습니다.
그 작품들 사이를 지나며 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메디치(Medici)라는 가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붓을 들지 않았고 조각칼을 쥐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없었다면 이곳 우피치의 절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꼭 손으로 만든 사람만은 아니구나.' 어떤 리더는 손이 아니라 '믿음과 후원'으로 시대를 조형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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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은 원래 피렌체의 은행가 가문이었습니다.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부터 시작된 금융 사업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가문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부유한 가문’으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돈을 문화로 바꾸는 힘, 부를 사람에게 투자하는 혜안 그리고 도시를 움직이는 방식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후원을 받은 예술가들의 이름들이 지금 미술사 교과서의 거의 모든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들의 창작을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기회를 주었고 자유를 허락했으며 신뢰를 보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는 복잡한 정치 지형 속에 있었지만 메디치 가문은 칼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도시 전체를 예술과 지성으로 하나로 엮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코지모 데 메디치, 로렌초 일 마뇨피코(‘위대한 로렌초) 같은 인물들은 사람을 키우고, 책을 모으고, 예술을 후원하는 일을 정치와 다름없는 리더십의 본질로 이해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권력이란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복도 끝에 앉아 잠시 쉬었습니다. 사람들은 작품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바빴지만 나는 그 모든 예술과 그 위대한 이름들 사이에서 조용히 걸음을 멈춘 사람들, 메디치 가문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칼도, 왕관도, 권력도 아닌 ‘기회’와 ‘신뢰’와 ‘후원’으로 도시를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이름을 앞세우지 않고 다른 이들이 빛날 수 있도록 그림자를 자처했습니다.
누구를 빛나게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우피치에서 메디치 가문을 떠올리며 저는 제 자신에게도 조용히 물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빛나게 하고 있는가? 내가 가진 시간, 자원, 지식은 누구에게 열려 있는가?' 메디치 가문은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고 피렌체라는 도시 자체를 세계 문화사 속에 새겨 넣었습니다. 그들의 리더십은 권력이나 위세보다는 기회를 주고 시간을 기다려주며 조용히 뒤에 서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가문도 항상 이상적인 리더십만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대를 거치며 그들은 권력을 세습하였고 교황직마저 가문의 연장선으로 이용하였으며 정적을 탄압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문화'라는 명분 뒤에 숨은 권위주의적 수단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피치 미술관 자체도 처음에는 예술 공간이 아니라 행정과 권력을 위한 사무 공간으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은 메디치 가문의 이중성을 상징하듯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리더십은 찬란했지만 그만큼 위태롭기도 했습니다. 빛나는 시대 뒤에는 언제나 그 빛을 통제하려는 욕망과 그림자를 감추려는 권력이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메디치 가문은 후원자이면서 동시에 지배자였습니다. 그들은 르네상스를 열었지만 후기에는 바로 그 문화 위에 권력을 새겨 넣기도 했습니다.
역사는 메디치 가문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그들의 권력 유지에 활용하였거나, 피렌체의 문화를 찬란하게 만들기 위해서 예술을 더 발전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영향 아래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르네상스의 찬란함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유능한 사람들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주는 데서 완성되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