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의 리더십. 조각으로 남다
나는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 중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특히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강렬하게 미켈란젤로에게 마음이 끌리기도 합니다.(미켈란제로에 대한 연재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지성과 관찰의 사람이라면 미켈란젤로는 고통과 신념, 결단의 예술가였습니다. 그에게는 수많은 걸작이 있지만 그 모든 시작을 알리는 하나의 조각이 있다. 바로 <다비드상>입니다.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단지 아름다운 남성의 몸을 묘사한 조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젊은 미켈란젤로의 선언이었고 그가 예술가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입니다. 다비드(다윗)는 어떤 과장된 포즈도 승리를 알리는 기쁨도 없습니다. 무기도 없이 왼손에 조용히 매듭진 물매끈을 감은 채 고요하고 깊게 긴장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뭔가를 결정을 하는 순간의 눈빛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성경 속 다비드는 거대한 골리앗과 싸워 이긴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는 싸움에서 승리한 기쁨이 아니라 싸움을 하기 전 '결정의 순간'을 조각한 모습입니다. 전통적인 조각들이 승리의 포효를 담았다면 미켈란젤로는 고요한 결정을 택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골리앗에게 돌을 던지기 전 내면의 싸움을 먼저 끝낸 다비드를 선택했습니다. 싸움보다 더 어려운 것은 싸움을 해야만 하는 것을 결정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결과가 두려워 결정을 미뤄서 결국 실행에 옮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결정'이라는 것이 어렵고, 그 어려운 순간을 표현하는 게 승리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미켈란젤로는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리더는 늘 그렇듯이 수많은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실행 이전에 판단을 결과 이전에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다비드는 바로 그 자리, 리더가 가장 홀로 서는 순간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다비드>를 자세히 보면 놀라운 점은 그의 시선입니다. 무엇인가를 향해 고요하지만 날카롭게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근육은 단단하지만 과시적이지 않고, 그의 손은 긴장했지만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진짜 위협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눈입니다. 리더에게 필요한 건 크고 무거운 칼이 아니라 상황을 꿰뚫는 눈과 판단을 멈추지 않는 정신임을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의 눈으로 조용히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다비드>상은 완성되기 전, ‘버려진 돌’에 불과했습니다. 두 명의 조각가가 이미 손을 댔다 실패했으며, 재료는 너무 얇고 금이 많아 '작품으로는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돌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 실패한 재료에서 가능성을 보았고 그 안에서 위대한 다비드를 꺼내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는 대리석을 깎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었던 진실을 꺼냈다고 말했습니다. 리더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완전한 자원, 제한된 조건, 완벽하지 않은 인재, 그 안에서 ‘쓸모없음’을 보지 않고 ‘가능성’을 먼저 보는 사람이 리더가 아닐까요.
피렌체에서 다비드상을 마주하면서 나는 묵묵히 그 앞에 한동안 서 있었습니다. 나는 리더로서 얼마나 많은 결정을 미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내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얼마나 자주 ‘가능성’이 아니라 ‘한계’만 보았는지도 떠올랐습니다. 리더는 고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고독을 생각으로 부여잡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용기였습니다. 나는 종종 더 어려운 길보다 더 편한 길을 먼저 떠올렸고, 결정은 미뤄지고, 고민은 반복되었으며, 생각만으로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았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실행 이전에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끝낸 사람입니다. 그의 눈빛에서 돌을 던지기 전이지만 내면에서 이미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리더는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고독 속에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 두려움 속에서도 가능성을 보는 사람. 비단 '리더'가 아니더라도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부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런 ‘다비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다비드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그는 여전히 우리 안에서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비드가 우리 자신 앞에 언제쯤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고민하고 있다면, 지금이 그 결정을 내릴 시간입니다.
리더는 언제나 확신 속에서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불완전한 정보와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무겁고 외로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자리입니다. 때로는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누군가는 방향을 잡아야 하기에 각오를 하고 앞에 서야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완벽하게 준비된 승리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아직 돌도 던지지 않았고 싸움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행에 옮길 강한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리더는 완벽한 준비가 끝난 사람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고도 자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망설일 때, '함께 가야 할 방향'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의 무게를 조용히 끌어안는 사람입니다. 다비드를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리더십은 확신의 산물이 아니라 용기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더 좋은 선택’을 찾아 망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돌을 들고, 앞으로 나서야 합니다. 리더는 생각을 멈추지 않되 결국에는 움직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고요한 움직임, 그 두려움을 동반한 결단. 거기서 리더십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