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를 설계한 리더십
나는 예술을 잘 모릅니다. 그림을 그릴 줄도 모르고 조각의 깊이를 설명할 미술사의 언어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예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습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르네상스와 고대 로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방문한 도시에서 유적들과 그 예술 작품 앞에서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더 많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미켈란젤로, 다 빈치, 라파엘로, 브루넬레스키 같은 이름들— 그리고 그들이 몸담았던 밀라노, 피렌체, 로마를 방문했을 때, 저는 단지 ‘아름답다’는 감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스토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보기 좋은 예술작품이 아니었고 그들 역시 단순한 예술가는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그리며 무엇은 끝까지 지켜낼 것인가를 늘 스스로에게 물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어느새 나의 질문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회사를 경영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며, 사람을 이끌고,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리더로서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밀라노, 피렌체와는 또 다른 느낌의 도시였습니다. 도시 전체가 유적과 유물로 가득 쌓인, 과거와 현재가 미래를 바라보는 그런 곳입니다. 흔하게 보이는 광장과 거리, 기둥과 돔마저도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피렌체에서 느꼈던 예술은 ‘창조의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예술은 책임의 무게, 설계의 철학,
그리고 권위를 감당하는 이야기의 표현을 느껴졌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표현들 모두가 각자 스토리가 존재했고, 시대와 리더십에 따른 결과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콜로세움 앞에 섰을 때 나는 그 거대함과 오랜 역사에서 느끼는 경외심보다는 묘한 불편함을 먼저 느꼈습니다. 거대한 아치, 반복되는 기둥, 지금은 일부가 소실된 채 햇살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 건축물은 한때 수만 명의 시민이 운집해 사람이 사람을 찢는 장면을 지켜보던 무대였습니다. 그곳은 공공의 공간이었지만,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드는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콜로세움은 한편으로 시민들의 감정을 통제하고, 권위에 복종시키기 위해 만든 리더십의 무대였을 것입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거대한 로마의 콜로세움(Colosseum, 공식 명칭 플라비우스 원형극장(Amphitheatrum Flavium)은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재위 69–79년)의 명령으로 서기 72년경 착공되어, 아들 티투스 황제(재위 79–81년) 때인 서기 80년에 개장되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네로 황제의 폭정과 내전 이른바 ‘4 황제의 해’(서기 69년)의 정치 혼란을 막 끝낸 상태였습니다.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무너진 로마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남긴 가장 크고 가장 눈에 띄는 답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법이나 철학, 아니면 공동체의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민의 분노와 갈증을 ‘구경거리’로 전환시킬 무언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콜로세움은 '빵과 서커스'라는 말로 대표되는 통치를 위한 심리적 무장해제의 장치였습니다.
리더가 대중의 분노를 해결하지 않고 그 에너지를 전혀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는 방식. 그것이 콜로세움이 가진 리더십의 이면이었습니다.
콜로세움은 위대한 건축물이지만 그 위대함은 인간 존엄의 기반 위에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잔혹함이 허용되었고 폭력이 연출되었으며 죽음이 오락이 되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단지 제도나 관습이 아니라 그 제도를 만든 리더의 의도였습니다. 콜로세움의 ‘쇼’는 단지 경기나 경쟁이 아니었습니다. 검투사는 대부분 노예이거나 강제로 전장에 끌려온 이들이었고, 맹수와의 싸움은 단순한 용기 시험이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한 공개 처형이었습니다. 때로는 정치적 반대자, 종교적 소수자, 이방인들이 군중의 환호 속에서 제도화된 학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장면을 연출하고 허락한 것은 권력을 가진 리더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행위가 잔혹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은 대중의 분노와 욕망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그 본능을 오히려 정치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콜로세움은 대중을 단결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정을 소모하게 만들었습니다. 잔혹한 장면을 매주 반복해서 본 시민은 점점 분노에 무감각해졌고, 정치에 무관심해졌으며, 권력의 문제보다 눈앞의 오락을 우선시하는 소비자로 변해갔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리더십에도 남아 있는 유산입니다.
사람의 본능을 자극해 공감과 분노,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대신 통제 가능한 흥분과 환호를 제공하는 리더십입니다
이것은 실행력이 강한 듯 보이지만 사람을 도구로 만드는 리더십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을 잃는 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리더의 그릇된 리더십은 사회를 망치기도 하고, 모두를 망상에 빠지게도 하는 무서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형상은 무너졌고, 리더십은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인간 본성을 가리며 권위를 지키려 한 시도에 대한 침묵의 경고입니다.
콜로세움은 지금도 위엄 있는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더 이상 통치의 공간이 아니라, 성찰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콜로세움 앞에서 리더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리더는 사람을 위한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 사람 위에 군림하기 위한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 진짜 리더는 사람의 욕망을 모른 척하지 않되 그 욕망 위에 질서와 의미와 존엄을 올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콜로세움은 그런 리더가 없었을 때 무엇이 남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콜로세움은 지금도 위대하지만 그 안에서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가 가져야 할 리더십의 기준을 다시 묻고 있습니다.
“리더십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로 남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