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예전 블로그에 리뷰를 올렸던 책입니다.
책을 읽고 혼자서 많이 생각을 했습니다.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마스 산체스 님의 그림을 보면서 한때 숲 속 스님이셨던 '비욘 나티고 린데 블라드'님의 얘기를 공감하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아주 따뜻한 책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미래를 보고 지금을 소비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마치 불나방처럼 말이죠.
항상 되뇌지만 잘 안 되는 부분입니다.
과거에 갇혀있어서도 미래를 맹목적으로 바라만 보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이 우리의 가장 소중한 순간이죠.
제가 추구하는 건
지금을 온전히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요즈음 회사일로 걱정이 많고, 그 걱정들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실, 그 걱정이라는 게 대부분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정확한 원인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걱정을 합니다.
두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소한 걱정들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말라
걸을 때 생각하는 것 말고, 아직 한 번도 전문적인 호흡에 맞춰서 명상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명상을 통한 자신과의 대화는 훈련을 통해서 단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퓨와 피글렛이 함께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푸가 말했습니다.
“토끼는 참 영리해.”
“맞아, 토끼는 참 영리해.” 피글렛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게다가 토끼는 머리가 똑똑해.” 푸가 칭찬을 계속했습니다.
“맞아, 토끼는 머리가 좋아.” 피글렛이 다시 맞장구를 쳤습니다.
둘 사이에 한참 침묵이 이어지더니 푸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토끼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나 봐.”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문구였습니다.
토끼가 너무 완벽히 많이 알고 똑똑해서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내려지네요.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내가 비울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한번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목을 옥죄며 살 것입니까?
아니면 넓은 마음으로 인생을 포용하며 살 것입니까?
그럼 나 자신이라도 마구 괴롭힐 거야
다른 사람들이 나의 말에 무조건 공감하고 따를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 말을 들을 이유는 더욱 없겠죠?
간혹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내 얘기를 듣지 않을 때 우리 자신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괴로워서 알코올에 의지하거나, 정신적으로 학대를 하거나 등.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남들은 우리한테 관심이 그다지 없습니다.
타인과의 여러 불편한 관계에 대한 불편함과,
내가 정말 대단하다는 자만심이 오히려 나를 괴롭힐 수 있습니다.
마법의 주문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여러 많은 일들로 까다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논하기도 어려운 일들이죠.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메모를 합니다.
'어느 정도 강도로 지나갈까?'
'얼마나 긴 시간 동안 힘들어질까?'
'마지막 출구는 있기는 할까?'
'대처와 대안을 동시에 잘 만들 수 있을까?'
'그사이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생각보다 심각한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마음가짐이 원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