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이형 Sep 10. 2015

공부와 재미

억지로 하는 공부에 묶여버린 아이들

요즘 톰소여에 나오는 페인트 칠하기가 나오는 단락을 같이 읽고 활동하고 있다. 이모는 톰에게 울타리에 페인트칠하도록 명령한다. 날씨는 좋은데 애들과 놀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처지를 슬퍼하다가 친구가 오자 열심히 하는 척한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이 일이 즐겁다고 말하면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자 친구는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하면서 자신의 사과를 준다. 애들이 모이고 페인트칠을 해보겠다며 자신의 물건을 주면서 칠을 해서 결국 톰은 하나도 안하면서 선물은 잔뜩 받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깨달은 바가 마지막 단락에 나오는데 오늘은 그 부분을 해석했다. 이 단락 마지막에 돈을 줘가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일 돈을 받는다면 그 일을 절대로 하지 않을 거란 문장에 아이들은 이상하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첫번째는 왜 일을 하는데 돈을 주면서까지 하느냐였고 두번째는 재미있는 일에도 돈을 받으면 더 좋은 게 아니었냐는 것이었다.

공부가 재미있냐고 며칠 째 물어보고 있다. 아이들은 왜 공부가 재밌냐며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오늘은 드디어 나에게 공부가 재밌냐고 묻는다. 그래서 재밌다고 했더니 더 이상한 눈이 됐다.

오늘 한 고등학교에서 혁신학교 교사 모임이 있어 왔다. 선생님들이 보충수업을 하는데 앞에서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다. 애들은 반응이 없다. 그 학교 혁신부장님이 부장회의 시간에 공부해보자며 제안했는데 대다수가 싫다고 했단다. 공부 안하는 학생과 학교 그리고 교사의 모습이 그려졌다. 모두 마지못해 억지로 하고 있다. 다들 쉬는 시간을 기다리며, 방학을 기다리며 견디고 있다. 성적 하나로 근근히 버티고 있다.

성적을 도구로 출세와 권력을 향해 모여드는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애벌레들처럼 의미없이 위로 위로 꾸역꾸역 남을 밟아가며,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작 그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자기의 의미를 만들 능력을 상실한 채 길들여져가는 아이들. 자신의 미래를 저당잡힌 채 성적이 좋으면 그 미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처럼 환상을 쫓는, 파랑새를 찾는 아이들과 같다.

교사는 그런 길들임의 사슬을 끊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씩 사슬을 목에 걸어주고 있다. 그리고 절대로 그 사슬을 벗어나지 못하게 신념화시키고 있다. 자기가 무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게 교사된 자의 책임으로 굳건히 믿고 있다.

나도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어느 사슬에 묶여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사슬을 아이의 목에 걸어주고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의 질문으로 수업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