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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형 Nov 30. 2015

감정과 마주하기

감정은 선물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울지 못한다. 눈물이 나오는 건 어리고 약함을 표시하는 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슬퍼도 안 울겠다고 다짐하는 캔디처럼, 사내대장부가 눈물을 보이면 엇다 쓰냐고 말하는 어른처럼 우리는 눈물을 참는 게 의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슬픔을 억누르고 있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고 헛기침을 한다. 그러면서 울음만 참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렇게 슬픔을 자주 누르다보면 우리는 감정이 메말라 버린다. 그렇다고 냉철한 이성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이성이 합리적이고 옳고 그름을 분변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성은 감정의 노예처럼 될 때가 왕왕 있다. 누군가를 감정적으로 좋아하면 이성은 그를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이유를 만들어낸다.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슬픔을 억누를 때도 마찬가지다.


감정은 선물이다. 우리 마음에 어떤 일이 생겨나는지 알려준다. 다시 말해 외부의 환경적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것이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지 아니면 좌절시키는지 알려주는 신호와 같다. 그 중에서 슬픔은 욕구 좌절의 1차 신호이다. 그래서 슬픔은 언제든 충분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나면 욕구 좌절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슬픔을 통해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되도록 슬픔과 자주 마주할 필요가

있다. 이걸 우울해한다며 치료받을 걸 권고한다면 슬픔을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중요한 것은 항상 기쁨만 필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오직 기뻐해야 한다고 당위성을

앞세우면 그것이야말로 정신병적인 증상일 수도 있다.


모든 감정과 마주하는 것이 곧 성숙이요 풍요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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