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

기다림 #1-1

by 덕구


[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 ‘밤의 요정’ ‘소원’ ‘무언의 사랑’입니다 ]



평소와 달리 유독 운수가 좋지 않던 날 아저씨가 나를 살려줬다는 말을 들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저씨의 동료가 일거리를 가져다주었다.


- 아저씨, 안에 있나?


물음과 동시에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까치를 보며 아저씨는 대답 대신 글라스에 담긴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켰다.


- 너무 과묵한 거 아니야? 재미없네... 받아.


웃음기 가득하던 까치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아저씨 앞에 있던 탁자 위로 던졌다.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봉투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봉투 속에는 적어도 네다섯쯤의 의뢰를 마쳐야 받을 수 있을 양의 돈과 쪽지가 하나 들어있었다.


“ -CANDLE- 옆 골목 ”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뒤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 시체 처리?


까치는 고개를 두어 번 젓고는 살인의뢰라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아저씨는 책상 서랍을 열고 돈다발을 집어넣었다.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시가를 깊게 한 모금 빠는 동안 까치는 일이 생기면 다시 찾아오겠다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시가를 입에 문채로 왼손에 든 쪽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아저씨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쪽지를 내려놓고 탁자에 놓인 칼을 집어 들었다. 그의 눈에 비친 강청색의 심해와도 같아 보이는 칼날은 그것이 잡아먹은 사람들의 혼이 갇혀 공포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까치는 그 칼에게 호아라는 이름을 새겨주었다. 호아는 아저씨의 강인한 눈을 보며 배고프다며 번뜩였다.



-



해가 떨어지고 아저씨는 양초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내리는 빗방울에 시가가 젖은 탓에 심기 불편했지만, 먹구름 사이로 보이는 샛노란 달이 아저씨를 측은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유독 밝은 달빛을 따라 계단을 오르고 건물을 지났다. 파도가 거센 항구도시인 터라 비만 오면 거리가 텅텅 비어 쓸쓸했다. 양초가게는 쪽지에 적힌 이름의 간판이 삐거덕대며 존재를 알렸다. 아저씨는 간판을 확인한 뒤 골목으로 들어갔다.


갓난아이가 누워있었다. 포대기에 싸여 눈물 자국이 범벅이 된 갓난아기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피에 젖어 검붉은 포대기를 보며 이미 죽었다고 생각이 들었단다. 울음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입을 마구잡이로 꿰매놓았고 혀가 잘려 피가 멈출 줄을 몰랐다. 아저씨는 그런 갓난아이를 망설임 없이 품에 안고 집으로 달려갔다. 아이를 보는 순간 뭔지 모를 두려움이 자신을 재촉했다더라. 품에 안긴 아이는 따뜻했고 고통에 몸부림쳤는지 아니면 자신을 품에 안은 아저씨가 고마워서인지 꼬물꼬물 움직였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탁자 위에 아이를 눕혔다. 급한 대로 칼의 끄트머리에 입을 꿰맨 실을 끊어내고 고개를 돌려 피를 빼냈다. 끈적하게 눌어붙은 핏덩이를 물을 부어가며 닦아내고 옷가지를 찢어 피가 새어 나오는 자리를 막았다. 약쟁이 놈에게 받아낸 주사를 주입했다. 약물이 들어가자 아이는 고통이 덜해졌는지 눈망울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한시름 놓은 아저씨는 초를 밝혔다. 이때까지 방이 어두운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찬물로 얼굴을 닦아냈다. 식은땀과 물이 섞여 세면대로 떨어진다. 고개를 드니 겁에 질린 노인네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탁자로 돌아오니 아이가 아저씨를 보고 웃었다. 다 찢어진 입으로 옹알거리며 눈을 똘망였다. 아이의 모습에 의뢰의 내용 따위는 이제 아무 소용없었다. 아이가 자라도 아이의 부모는 자신들의 자식을 알아볼 척이 없었다.


- 네 이름이 뭐냐?


나긋하게 묻는 그의 눈에 ‘월견’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피에 반쯤 젖은 포대기 끄트머리에 새겨진 단어였다.


- 이게 네 이름이구나.


그렇게 나는 월견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물었고 그냥 두기엔 보기 흉할 뿐만 아니라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어 보였다. 아저씨는 그런 나의 입을 정성스럽게 꿰매주셨다. 꿰맨 실은 시간이 지나니 녹아 사라졌다. 실이 사라질 때마다 그 일을 반복했다. 혹시나 체온이 떨어질까 거주 이래로 한 번도 하지 않은 난로 청소를 했고 시가에는 손도 대지 않으셨다. 표현이 서투른 나머지 살갑게 대해주시지는 않았으나 그런 아저씨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저씨가 일을 하러 가실 때면 나는 까치의 손에 맡겨졌다. 그럼 까치는 나에게 항상 어떻게 저 인간이 아이를 데리고 사는 거냐며 물었다. 물론 말을 하지 못하는 탓에 얼른 고개를 저어버리며 잊으라고 하지만 속으론 아저씨가 좋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까치도 좋은 사람이었다. 늘 바삐 움직이는 그는 세상에 일어난 일에 관해 모르는 법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세상에 관해 가르쳐 준 사람도 그였다. 그럴 때면 아저씨는 까치에게 사상을 더럽히지 말라며 욕을 하곤 하셨다.


입이 막혀 음식을 넘기지 못하는 나에게 까치는 달에 한 번 주사를 받아다 주었다. 아저씨의 부탁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그에게 항상 고마웠다. 한 번은 실이 다 녹아 사라졌을 때 주사와 함께 붕대를 잔뜩 받아왔다. 주사와 붕대를 받은 아저씨는 나에게 붕대를 던져 주며 징그러우니 가리고 다니라고 말씀하셨다. 손에 들린 새하얀 붕대에서는 달콤하면서 씁쓸한 나무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붕대를 감기 전 거울 앞에 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수많은 흉터가 입가에 산수화를 수놓았다. 나름 마음에 들었던 그림이었으나 타인의 시선으로는 아니었나 보다. 얼굴에 혼자 붕대를 감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자국만 남은 흉터가 붕대에 닿을 때마다 쓰라린 느낌이 들었다. 대충 두른 붕대가 마치 목도리라도 한 모양새였지만 나름 마음에 들었다. 제가 봐도 선한 눈이 도드라져 보인 탓일 터다.


징그럽다는 말이 조금은 거슬렸던 탓인지 까치에게 그가 알려준 몇 개의 단어를 적어가며 물었다.


- 여기 사는 인간 중에 흉터 없는 인간 찾는 게 더 어려울 거다. 그 양반이 어울리지도 않는 걱정 한다고 지껄인 말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



월견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가녀린 꽃의 성장을 보고 있는다는 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아저씨가 까치에게 말했다고 한다.


- 어쩌면 저 아이를 위해서 버텨왔는지도 모르겠다.


까치의 눈에 그날 아저씨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담배연기는 순백이었다고 한다. 평소 농담을 좋아하던 까치도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같이 보낸 세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그의 눈빛은 내리는 빗물보다 차갑고, 칠흑 같은 하늘보다 어두웠지만, 새하얀 달보다 보드라웠다. 둘은 한참을 비에 젖어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한참을 고민한 끝에 아저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에 들어간 의문을 전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겁지만, 가볍게 던진 한 마디에 아저씨는 답을 주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전구 주위를 날아다니는 몇 마리의 나방과 벌레. 서늘하고 축축한 방 두 개. 월견이 작은 방에서 나와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맑게 빛나는 눈은 평생을 모르고 살던 집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 아가. 앞으론 필요한 건 혼자 구해와. 내가 평생을 돌봐줄 순 없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에 서투른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말을 하고 나니 아이의 눈을 볼 수 없어 밖에 있던 까치에게 몸을 돌려 큰 소리로 불렀다. 월견에게 붕대와 주사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알려주라고 일러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



아저씨의 집으로 온 이후 처음으로 바깥세상에 나왔다. 발끝으로 서늘함이 느껴진다. 아저씨의 집만큼 공기가 따뜻하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가 폐에 들어온다. 환하게 방 안을 비추던 촛불이 얼마나 따뜻한 지 깨달았다. 계단을 밟고 걸음을 내딛는다. 건물의 모퉁이를 도니 건물이 여러 개 보인다. 아무도 없는 거리는 하늘보다 짙은 회색빛이 돌았다.


누군가 창문에서 월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의 뺨은 불그스름했다. 월견은 창백한 자신의 두 손을 한 번 내려다보고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운하를 따라 걷는다. 종종 벽이 유리로 된 방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아이의 뺨보다도 붉은빛이 유리를 통해 거리로 쏟아졌다. 이따금 파란빛과 초록빛도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는 다른 길로 빠지지 말고 알려준 길로 빠르게 다녀오라고 하셨지만, 처음 보는 세상을 보지 못했다는 듯 지나치기엔 호기심을 자극했다.



-



먼지가 조금 쌓인 목조건물. 건물 내부에서 둔탁한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린다. 조만간 문이 열리고 남자가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남자는 월견을 발견하고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뭐야 이 재수 없는 애새끼는.


뭉개진 발음 사이로 썩은 냄새가 흘러나왔다. 남자의 눈은 어딘가 괴로워 보였다. 풀려버린 동공은 고통을 인정하지 않지 위한 발버둥일지 모른다. 남자는 발을 들어 올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월견의 복부를 가격했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세상이 조용해지고,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면 걷어 차인 부분이 욱신거린다. 순간 월견이 아픈 곳은 복부가 아니었다. 세상은 마치 장미와도 같다. 사람의 눈 따위로 밖에 볼 수 없는 신세가 불쌍할 만큼이나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 사이엔 가시가 존재를 숨기며 기다리고 있었다. 월견의 마음속에 한 송이의 장미가 피어났다. 훗날 양초 대신 활활 타오를 생명을 잉태했다.


누군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월견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헐떡거리며 머리를 들어 올렸다. 까치가 월견의 상태를 살폈다. 이내 비틀거리는 남자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남자는 수차례 넘어진 뒤에야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이제까지 내내 까치는 싸움에는 일가견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른 몸에 부드럽고 자상한 말투 항상 웃는 얼굴까지. 아무리 약에 취한 상대였지만, 그가 제정신이었다고 해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날렵했다.



-



그 길로 크게 혼이 났다.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지 않던 아저씨가 호통을 치셨다. 아직은 시기가 오지 않았다며 밖으로 나가는 일조차 금지당했다. 가슴에 시린 느낌이 든다. 점차 차가워지더니 눈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처음 흘린 눈물은 뺨이 얼어붙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차가웠다. 문을 의뢰서를 쥐고 집에서 나가버린 아저씨를 뒤로하고 까치는 월견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 바깥세상은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해. 아름다운 만큼 추운 곳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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