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1-2
한동안 방 안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느낀 세상의 고통은 너무 차가웠다. 추위를 견디는 방법 따위를 알 턱이 없었다. 차가운 방바닥이 세상의 고통에 비하면 난로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저씨는 그런 세상에 왜 나를 홀로 내보냈을까? 아름다운 세상이 왜 추위를 품고 있을까? 왜 아무도 세상에 관해 알려주지 않았을까? 질문이 생겨나고 없어지기를 끝없이 반복된다.
해가 세 번 지고 달이 세 번째 떠올랐다. 달이 머리 위로 올라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을 때, 까치가 문을 열었다. 슬며시 다가온 그가 나의 옆에 벽에 기대앉았다. 그리곤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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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용병이기 전에 군인이었다. 그전엔 부모조차 없는 떠돌이일 뿐이었다. 배를 채우기 위해 빵과 과일을 훔쳤고, 살기 위해 싸웠다. 하루는 마을 구석구석 숨어있는 광신도 집단 중 하나가 열여덟 살의 아저씨를 재물로 바치기 위해 끌고 가려고 했다. 아저씨는 광신도와 주먹다짐을 했고 죽기 직전까지 맞아 정신이 희미했다. 주변을 지나가던 군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마 죽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구해준 군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자신도 군인이 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군인은 아저씨를 부대로 데려갔고 그 길로 마을을 돌며 광신도를 죽이는 일을 했다. 자신을 죽도록 패던 광신도 또한 아저씨 손에 촛불이 사그라졌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피범벅이 되어 약을 찾았다. 수백수천의 광신도의 촛불을 회수하도록 대부분의 광신도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공포에 절여진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웃었고, 칠흑 같이 어두운 검은 피를 흘렸다.
일이 끝나고 세면대에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다 거울을 올려다봤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피를 맛본 괴물이었다. 눈이 뜨거웠고, 심장은 더 뜨거웠다. 몸에 묻은 피에선 비린 냄새가 아닌 달콤한 냄새가 느껴졌다. 그에게 광신도는 이제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입 안에 그간 자신이 씹은 고기의 질감이 생생하게 감돌았다. 그의 뇌는 어느 순간부터 피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무섭기도 혐오스럽기도 했다. 세상의 추위 속을 살아가던 자신이 세상의 추위가 되었다. 실로 견딜 수 없는 사실이었다. 군인을 그만두었다.
길바닥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수백의 사람이 지나갔고 수만의 벌레가 기어갔다. 지나가던 행인 중 한 명이 말을 걸었다. 까치였다. 그는 약자를 위한 심부름꾼을 제안했고, 받아들였다. 약자들은 위한 삶은 점차 그의 감정을 치료했다. 드라마틱한 효과는 아니었으나 변화는 있었다. 자그마한 변화가 훗날 월견을 살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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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첫 의뢰가 들어왔다. 부대에서 나와 돌아갈 집이 없었다. 까치를 처음 만난 길바닥에서 첫 의뢰를 받았다. 싸구려 술에 절어 술병을 놓지 못하는 오른손 대신 왼손이 의뢰서를 받아 들었다.
“마지막 운하 끝 계단 밑 시체 처리”
의뢰서에서 눈을 떼지 않고 아저씨는 까치에게 물었다.
- 꼬마야. 이런 일은 왜 하는 거냐.
까치는 아저씨 옆에 앉아 자신이 고아라고 말했다. 부모가 죽어서 혼자인 자신을 어떤 아저씨들이 데려와 의뢰 전달을 시켰다고 덧붙였다. 까치의 말을 듣고 아저씨가 술병을 내밀었지만 까치는 거절했다. 자신은 아직 성인이 되려면 해가 두 번은 지나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웃어 보였다.
문득 떠오른 자신의 어린 시절에 위장에 가득 담긴 술이 역류했다. 역한 과거를 토해냈다. 까치는 다가와 그의 등을 두드렸다.
아저씨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까치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은 손으로 허리춤에 달린 단검을 뽑아 들었다. 검날은 여전히 날카롭다. 까치가 그의 검을 보곤 송곳니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 송곳니를 들었으니까 아저씬 호랑인가?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하며 배를 잡고 웃는 까치를 보며 그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주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까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까치에게 자신이 웃었다는 말을 듣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저씨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웃은 순간이었다. 고통과 분노, 슬픔 이외의 다른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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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가 끝나고 아저씨는 근무하던 부대로 돌아갔다. 군인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의 전 직장 동료와 면회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부대 앞을 지키던 군인이 칼을 뽑아 아저씨의 목을 향해 들었다. 노숙자와 같은 그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몸에 뒤집어쓴 핏물 때문이었을까.
- 군복은 어디서 났지?
아저씨는 자신의 군복에 희미하게 남은 마크를 가리키며 여기서 근무했다고 말했다. 누구를 만나러 왔냐는 물음에 거북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다른 군인을 불러 거북이에게 보내 신원을 확인했다. 신원이 확인되고 나자 군인을 길을 비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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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아저씨를 보고 인상을 구겼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거북이의 물음에 아저씨는 집을 구해달라고 했다. 거북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저씨 앞으로 다가왔다. 거북이의 덩치에 아저씨는 고개를 올렸다. 그는 아저씨의 눈을 아저씨는 그의 눈을 응시했다. 그는 일그러진 표정을 피며 호탕하게 웃었다.
- 비가 오니 동굴이 필요해졌나 보군.
일이 생기니 은신처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아저씨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무엇이냐 물었다. 아저씨는 소나기라고 답했다. 그의 답을 들은 거북이가 서랍에서 서류를 찾기 시작했다. 십여 분 후에 폐기라고 적힌 서류철을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서류철을 펼쳤다. 부대가 위치한 지역의 아래에 숨겨진 작은 은신처다. 해안가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 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작은 문. 지역 끝에 위치해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 특이 사항에 적힌 한 줄이 마음에 들었다.
“특이사항 : 유령 도시(국가 미등록 인원 거주지)”
유령 도시 취급은 언제든지 위급 시에 배제할 수 있다는 말이지만,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동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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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대를 나와 동굴로 향했다. 까치에게 주소를 알리고, 의뢰를 받았다. 세상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증오가 칼바람처럼 불고 분노가 날카롭지만 아름답게 내렸다. 아저씨는 사람들을 대신해 눈보라 맞으며 숲을 떠도는 범이다. 모두가 범의 송곳니를 보느라 그의 품이 따뜻함을 알지 못했다. 눈을 보고 겁을 먹느라 눈물을 보지 못했다. 까치는 알고 있었다. 아저씨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살아야 했기 때문에 범의 탈이 뒤집어썼을 뿐이다. 그가 함부로 주변에 사람을 두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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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가 월견에게 고개를 돌렸다. 까치가 자신을 형이라고 지칭했다. 그리곤 아저씨 삶에 들어와 고맙다고 말했다. 까치가 일어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까치의 손이 따뜻하다. 월견이 일어나서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주먹이 허공에서 힘없이 춤을 췄고 까치가 웃음을 터뜨렸다.
- 싸움 배우고 싶니?
월견은 고개를 끄덕였다. 까치가 머리를 긁적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월견의 표정을 보면 거절할 수 없었지만, 월견에게 함부로 싸움을 가르쳤다간 아저씨에게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 때문에 바빠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집을 나오고도 창문 안쪽으로 월견의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오기를 기다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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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를 찾아갔다. 밤이 깊어 달이 내려다보지 않는 부분이 없었지만, 아저씨는 집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바다를 보고 있었다. 기척을 느낀 그가 고개를 살짝 돌려 까치임을 확인했다. 까치는 살포시 의자 옆 바닥에 앉았다. 아저씨가 까치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아저씨의 온기가 까치에게 전해진다. 눈 여전히 잿빛 바다를 담고 있다. 까치도 그와 같이 바다를 본다. 파도조차 없는 바다의 고요함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다. 그래서 아저씨가 바다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고 싶진 않았지만, 그에게 월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 월견이 싸움을 가르쳐 달래.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월견이 싸움을 배우는 것을 원치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싸우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 그의 눈에 비친 바다가 파도치고 있다. 그는 여전히 바다를 보고 있고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 네가 가르쳐줘라.
힘겹게 떨어진 문장에 많은 의미가 묻어났다. 까치는 그의 마음을 알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그의 마음이 한결 나아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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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가 벽을 가볍게 두드리며 준비가 됐는지 물었다. 월견은 입을 감고 있던 붕대를 풀고 있었다. 반쯤 풀린 붕대를 손에 들고 고개를 돌리자 까치가 미소를 짖으며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까치가 흘러내린 붕대를 보고는 고개를 까딱이며 준비가 다 되면 나오라고 말했다. 붕대를 마저 풀고 거울을 보았다. 꿰매진 입이 이제는 덤덤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자신의 입을 오른손으로 쓰다듬고 새 붕대를 집어 들었다.
까치를 따라가며 평소보다 타이트하게 감은 붕대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입을 꼼지락거리며 조금씩 틈을 벌렸지만, 쉽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발바닥이 아파와 붕대가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을 즈음이 되자 까치가 걸음을 멈췄다. 북쪽 끝에 위치한 산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북쪽은 사람이 아닌 동물이 산다는 이야기를 까치에게 들었던 적이 있다. 까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산에선 잿빛의 비릿한 향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나무의 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처음으로 마주한 산의 모습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능선을 따라 뛰어다니는 산양과 시냇물을 홀짝이는 늑대.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술과 약에 찌든 길거리와는 다른 모습이다. 문득 아저씨가 떠올랐다. 아저씨는 산이라는 곳에 와본 적이 있을까? 가능하다면 산에서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까치가 월견을 불렀다. 산양을 가리키며 체력 훈련을 도와줄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정작 산양은 아무 생각 없이 뛰어다닐 뿐이었지만, 까치는 산양이 체력을 책임져 줄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까치가 손짓했다. 따라오라는 신호다. 까치가 다가가자 산양은 당연히 그에게서 멀어졌고, 그는 그 뒤를 따랐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좇아 달렸다.
처음이었다. 숨이 가쁘다. 심장이 아리고 다리에 힘이 없어 서있기도 버겁다. 풀밭에 쓰러져 누웠다. 조만간 까치도 월견에게 돌아와 옆에 누웠다. 까치가 기분을 물었다. 당연하게도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을 바라고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 월견은 코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뱉어 냈다. 머리가 시원하다.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에서만 있었다면 평생을 모르고 살았을 상쾌함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상쾌함 혹은 하루 종일 뛰어다닌 피로 탓인지 우린 그대로 잠에 들었다.
그 후로 까치는 시간이 생기면 월견을 북쪽으로 데려갔다. 하루는 산양과 달리기를 다음에는 원숭이와 나무 오르기를 그리고 종종 나무에 기대어 쉬는 방법과 달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자신이 삶을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던 방법을 알려주었다. 월견은 그의 표정을 보았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표정은 아저씨의 표정에 비하면 알아차리기 쉬운 편이다. 미소와 짧은 슬픔, 그리고 기억. 그의 가르침은 완벽했다.
시간이 지나 근육이 제법 붙고 까치는 이제 같이 북쪽에 있는 산을 같이 가줄 수 없다고 했다.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 많아져 바쁘다고 했다. 그래도 월견은 북쪽의 산으로 갔다. 시원한 풀밭에 누우면 마음이 편했다. 해가 지면 마을로 돌아갈 수 없어 달과 이야기했고 낮에는 동물들과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