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영ㅣ한겨레출판)
출근하는 지하철 안. 사람들이 반쯤 감은 눈으로 멍하니, 하지만 자못 바쁜 손길로 스마트폰 인터넷 창을 밀어내는 광경을 바라본다. 우린 출근을 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출근하고 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박상영ㅣ한겨레출판)의 첫 장 제목은 ‘출근보다 싫은 것은 세상에 없다’이다.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위로를 얻었다. 출근보다 싫은 게 세상에 없다는 걸 경험한, 회사 좀 다녀본 작가 겸 ‘박대리’의 출근과 퇴근 그리고 퇴사 이야기가 감칠맛 나게 펼쳐졌고, 비슷한 처지인 점도 있어서 공감이 많이 됐다.
박상영이란 이름은 2019년 한겨레 ESC 섹션에 연재됐던 에세이를 뒤늦게 보고 알게 됐다. 와, 이 작가 누구지, 젊은 작가 같은데, 발견이야 발견, 혼자 흥분하면서 어떤 책을 낸 작가인지 찾아봤었다. 그리곤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그의 첫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도 빌려봤다(난 가난뱅이 흑흑).
우리나라에도 이제 퀴어 얘기를 심각함, 에둘러 표현함 이런 거 다 걷어차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거침없이 풀어내는 작가가 나오는구나 싶었고, 독자 입장에서 그건 왠지 낯설고 새롭고 신나는 일이었다. 박상영과 같은 해(2018)에 데뷔한 <여름, 스피드>의 김봉곤도 커밍아웃한 작가로 두 사람이 세트처럼 언론에서 많이 소비되었던 거 같은데, 이 책에서 작가가 그 부분을 짧게 언급한 뉘앙스에서 그 어떤 달갑지 않음이 느껴졌다. ㅎㅎ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2020)는 한겨레 ESC 섹션에 연재됐던 에세이를 묶은 산문집이다. 내가 처음에 인터넷으로 먼저 보고 반했던 편은, 10장 ‘너무 한낮의 퇴사’다. 우선은 디테일한 상황 묘사가 정말 웃겼다. 이직 계획 없이 퇴사하던 날(물론 작가는 등단을 한 이후니까 대안이 없었던 건 아니다)의 심정과 광경이 고스란히 적혀있어서, 나 또한 겪었던 대안 없이 퇴사했던 날들(왜 그랬지 대체!)의 전후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작가의 현실은 역시 나와는 확연히 달랐으니, ‘너무 한낮의 퇴사’는 이렇게 소설적으로 시작한다.
출근 마지막 날, 나는 아침 7시쯤 회사 앞 카페에 도착했다.
당장 급한 원고 마감이 없음에도 습관적으로 일찍 눈이 떠졌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들고 온 김금희 작가의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를 꺼냈다.
멋있어, 성실해, 본인은 한사코 게으르다고 말하지만 역시 작가는 다르네. 지금의 나는 새사람이 다 됐지만, 전 직장 다닐 때는 회사 가기가 미치도록 싫은 나머지 8시께 일어나서 홍대에서 파주까지 택시를 잡아타고선 늘 지각까지 했었다. 그렇게까지 힘들었던 이유를 알게 되기까진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슬프게도.
아무튼 평일 오후 너무 한낮에 퇴사한 작가가 곧장 집으로 향해 가랑이 부분이 쓸려 구멍 나기 직전의 감탄 팬츠를 벗고,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듯이 어찌나 실감이 나던지. 매일 밤 굶고 자기를 다짐하고, 퇴근 후 헬스장에 갈까말까를 고민만 하고, 늘 둘 다 지키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잠이 든다는 작가.
하지만 가수 요조 표현대로 글을 쓰는 데 있어서는 “무섭게 성실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마감을 할 때의 작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회사 근처 카페에서 2시간쯤 글을 쓰다가 출근을 했다고 한다. 내가 늘 꿈꾸는 ‘투잡러’의 삶을 직접 겪어낸 작가가 부럽고 또 존경스럽다. 현재로선 잠이 부족하면 예민해져서 신경질이 많아지는 나로선 잠을 줄일 수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시간을 쪼개야할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