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덕질은 계속된다
상상 속의 나는 스카(스터디카페)에 앉아서 아주 골몰한 채로 공부만 파고 있었다. 현실의 나는 어떻냐고?
모르긴 해도 내가 이 스카에서 공부 말고 딴짓을 하는 유일한 사람인 것 같다. 화장실 갈 때나 스카에 구비된 주전부리를 먹으러 갈 때 습관처럼 쓰윽 둘러보는 데, 핸드폰으로 잠깐 딴짓을 하는 사람은 있어도 나같은 사람은 안 보인다.
나같은 사람이란, 취소표 줍줍하겠다며 인터파크 티켓이며 예스24 티켓 창을 켜놓고 공연 취켓팅 중이거나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사람 ㅋㅋㅋㅋㅋ 내가 다니는 스카에는 키보드를 칠 수 있는 밝은 분위기의 존(나름 카페 분위기)과 키보드 소리를 낼 수 없는 살짝 어둡고 조용한 존(진짜 독서실 분위기)이 있는데, 나는 주로 키보드 가능 존에서 딴짓을 하는 걸 좋아한다 -_-
덕질은 하루라도 흐름을 끊어갈 수 없는 취미 활동이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덕질의 역사에는 나름의 서사가 있다. 언제나 어제의 최애보다 오늘의 최애가 더 예쁜 법. 요즘처럼 최애가 연극을 하는 축제 기간에는 더더군다나 sns, 팬카페, 더쿠, 디시인사이드 등에 정보가 엄청 쏟아진다.
물론 그 많은 정보를 발빠르게 다 흡수하는 건 어렵기도 하고, 그러다간 삶이 주객전도가 될 수 있다. 덕질에 치여서 현생에 지장을 주어선 안 되니까 그 경계와 능선을 잘 타야 한다. 최애가 주는 행복과 현실을 잘 살아내서 얻는 행복을 조율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나처럼 하나에 꽂히면 정신을 못차리고 빠져버리는 사람은 더더욱.
최근에 아이돌 덕후이자 나의 덕질 선생님 ㅋㅋㅋ인 친구 C가 탈덕을 선언했다. 작년부터 올 1월 5일에 탈덕하겠다고 날짜까지 정해뒀던 C다. 물론 난 그 말을 귓등으로 듣고 웃어넘겼는데, 왜냐하면 툭하면 탈덕한다고 노래를 부르곤 주말이면 최애를 보러 페스티벌을 갔다며 내게 사진을 보내주곤 했기 때문이다.
C의 이번 탈덕 선언은 진심인 것 같다. 최애 팬들이 모인 단톡방에서도 나왔으며(물론 이것도 처음은 아니다) SNS도 딱 끊었더니 애들 돌보고 집을 치웠는데도 시간이 남아서 뭘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태생이 부지런한 C.
몇 년을 그렇게 최선에 최선을 다해 덕질을 하더니 이젠 할만큼 한 거 같다면서 정신을 차리고 싶단다. 나한테도 비밀로 하고 제주도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을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도 하고, 하이터치 이벤트가 있다며 서울에서 열리는 일본인 팬미팅에 거금을 쓰기도 해 나조차도 혀를 내두르게 했던 C가 아닌가.
덕후의 세계를 떠나보겠다는 결심을 한 C에게 왠지 모를 배신감마저 느끼며 나도 모르게 살살 꼬득였다. 최애가 주는 행복을 정녕 떠날 수 있냐고, 극과 극은 통하는 법, 이렇게 황급히 떠나면 금방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멀어지는 것은 어떻겠냐고.
“더 이상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봤어. 이젠 덕질에 미련이 없어.”
C의 헤어질 결심은 생각보다 더 단단했고, 장고의 결과였으며, C의 얼굴은 정말 아쉬움 한 톨도 없어 보였다. 최선을 다했다는 그 말이 내 가슴 어딘가를 찔렀다. C와는 달리 나는 최애에게 미련이 한가득이기 때문이다. 최애를 생각하면 여전히 갈증나고 뭔가 부족한 느낌이고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최애와 행복할 욕심을 더 내보기로 하는 중인데, 뭔가 덕질 졸업을 하는 것 같은 C를 보니까 정신이 번쩍 들기는 했다. 문득 “나 잘 살고 있는 건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고. 정답은 없고 오직 나의 선택만이 있는 인생, 참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