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4개월짜리 단기계약직인 서울시 매력일자리(구 뉴딜일자리)에 추가합격한 얘길 썼었다. 그 후 한 달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너무 바빴다. 매주 브런치를 쓰자는 나 자신과의 굳은 약속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는 날들이 계속됐다. 매일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용을 쓰다, 이제야 짬을 내 글을 쓴다. 한 달 내내 굳은 머리와 졸아붙은 심장, 그다지 빠르지 않은 업무속도를 가지고 정말이지 고군분투했다. 나만큼은 나에게 큰 칭찬을 해주고 싶다. 정말 잘했어, 그리고 수고 많았어.
지난 한 달 직장인으로 살아내느라 정말 수고 많았다, 쩌리짱.
결과적으로 매력일자리 일은 2주밖에 하지 못했다. 전통시장 매니저로 일을 했는데, 말 그대로 재래시장의 상인회 사무실(이라 쓰고 4평짜리 창고라고 읽는다)에서 혼자 앉아 일을 하는 거였다.(하지만 상인회장이 바로 옆가게를 운영 중이라 수시로 사무실을 오가고, 내게 훈수를 뒀다. 그래도 태도가 따뜻한 편이었다.)
상인들(특히 시장상인회의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자주 밥을 먹고, 매일 함께 얘기를 나눴다. 거의 60대 이상 상인들의 얘길 듣는 거였고, 나는 관심이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나는 거의 매순간 매우 애매한 표정을 짓고 무심하게 앉아 있었으리라.
사실 전통시장 매니저에게 중요한 임무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나 중소벤처기업부에서 하는 각종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에 지원해 전통시장 지원금을 따내는 거더라. 한 마디로 나랏돈을 받아 특히 상인회 회장의 기를 살려주고, 전통시장의 외관을 더 좋게 바꾸고 각종 제반시설을 현대화하는 작업이다.
한데 경쟁률이 꽤나 세다. 서울에만도 360여 개의 전통시장과 골목형 상점가가 있고, 모든 시장에 매니저들이 일하고 있다. 그들의 상당수가 전통시장 지원금을 받아내려 기를 쓴다. 공공기관용 제출서류를 만들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무엇보다 귀찮고 골치 아픈 수치를 많이 적어야 한다. 전통시장의 경우라면, 각 점포들(내가 일했던 시장은 작은 편이라 80개인가 점포가 있었다) 각각의 어떤 정보를 알아야 하고, 모르면 가서 물어보고 사인을 받아야 하는 일도 잦았다.
너무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친절하지만 일 욕심이 많은 상인회장은 더 많은 사업을 따오길 원했고, 내가 더 많은 상인들과 교류하길 원했다.
그렇게 바쁜 가운데 ‘전통시장 가는 날’ 행사가 매달 있어서 내가 일한 2주 동안 그 일도 다 처리해야 했다. ‘전통시장 가는 날’ 행사는 영광굴비라던가, 추석 송편 같은 것들을 대행해서 파는 업무였다. 일단 문자로 고객들에게 행사를 알려야 한다. 350명의 고객들에게 문자를 보내야 하는데, 전통시장 상인회가 대량문자 사이트를 사용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다행히 꼬진 업무폰은 하나 있고, 전 매니저가 손수 그 업무폰에 고객들의 이름과 번호를 저장해 뒀다고 했다. 난 그 핸드폰의 번호를 마이크로소프트의 계정과 연결해서 PC로 겨우겨우 문자를 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한 번에 250명을 보낼 수는 없고 30~40명씩 끊어서 보내야 했다. 그 후엔 은행 계좌로 돈을 받은 것을 확인하고, 혹은 상인회 사무실에 직접 찾아오는 어르신들을 다 응대하며 현금을 받고 거스름돈을 바꿔주고, 영수증을 써줬다. 은행계좌로 돈을 받은 것은, 직접 은행에 가서 통장을 찍어서 확인해야 했다-_-
그렇다. 내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것인지, 20세기를 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사실 전통시장에서 일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건, 서울형 생활임금을 받으며 엄청난 양의 일을 쳐내야 하는 게 아니었다. 사무실 밖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해야 해서 화장실을 오갈 때마다 상인들과 인사를 해야 하는 거였다. 화장실 가는 것도 맘 편히 갈 수 없는 내 상황이 좀 슬펐다.
그리고 전통시장 매니저의 중요한 덕목은 상인들의 관계를 잘 지속하는 것이 1번인데, 그건 세상 차분하다는 얘기만 듣고 사는 내게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업무란 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통시장 매니저에 지원했던 건 지원 조건이 40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면접을 볼 때 2, 30대 경쟁자들과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 대신 특유의 친화력으로 무장한, 활발하기 짝이 없는 5, 60대 시니어들과의 또 다른 경쟁을 해야 한다는 건 미처 몰랐지만. 2곳의 전통시장 매니저 면접을 봤는데, 40대 지원자는 내가 유일했다.
그렇게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며 뺑이를 치던 중,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았더니 어디라고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내게 이런저런 자리가 하나 있는데 지원을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공고를 낸 사이트에 가보니 다른 조건은 괜찮았는데, 다만 월급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적었다. 이 정도면 내가 20대에 받던 월급인데… 하지만 난 당장 전통시장을 떠나 빌딩숲에서 일을 하고 싶었으므로, 일단 지원해 보겠다고 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