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면접 결과 줄줄이 예비 1번을 받은 걸 한탄했다. 나는 한 자리를 두고 사회초년생과도 나란히 앉아 면접을 봤고, 30년 공공 일하고 은퇴 후 5년이 지난 시니어와도 나란히 앉아 면접을 봤다. 두 사람도 나도 합격을 못했다.
그런데 며칠 전 아침, 서울시 매력일자리(뉴딜일자리) 면접을 본 곳에서 전화가 왔다. 합격자가 포기했으니 예비 1번인 내가 추가합격했다는 거였다. 앗싸, 모든 면접이 헛짓은 아니었다는 것, 4개월 짜리지만 일자리가 생겼다는 감격과 과연 소극적인 내가 적극적인 성향이 적합한 이 업무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오갔다.
하지만 내가 지금 호불호 따져가며 직장을 고를 수 있는 처지인가. 그저 합격한 곳에 가야 한다. 근로계약서를 쓰기 위해 한낮의 뙤약볕을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OO구청엘 갔다. 면접 때 내게 긍정의 사인을 보내곤, 나를 떨어트렸던 면접관들(아마도 부서의 팀장들)도 거기 있었다. 한 팀장님이 날 보곤 의아해하며 어떻게 왔느냐고 해서, 근로계약서를 쓰러 왔다고 하자 “합격하셨군요”했다.
아마 추가합격 소식을 몰랐던 모양인데, 30분이나 면접관으로 질문을 해 놓곤, 그러니까 내 합격의 당락을 결정해 놓곤, 좀 유체이탈 화법인가 싶기도 해서 좀 그랬다. 아무튼 좋다. 계약 내용을 조곤조곤 알려준 젊은 담당 직원(주무관)은 정말 덤덤하게 할 말만 하고 내게 안녕을 고했다. 전형적인 공무원 마인드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ㅎㅎㅎ
돈 주는 것도 아닌데 사전에 인수인계를 3시간이나 받으러 가라고 해서 좀 빡친 상태였지만 어쩌랴. 버스를 타고 약속한 시간에 맞춰 전임자가 일하는 사무실로 가려고 버스정류장엘 갔는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임자가 미안하단 말도 없이 자기가 너무 바쁘니 1시간 후에 오라는 거였다. 두서없이 이 얘기, 저 얘기하는 모양이 인수인계도 주먹구구로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불볕더위에 1시간이나 떠버린 나는 좀 더 빡친 상태로 눈앞에 보이는 스타벅스로 직행했다. 거기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자료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사무실로 향했다. 예상은 했지만 사무실 공간 상황은 더 좁고 열악했고, 책상 위에 문서가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예상처럼 전임자 선생님은 정리된 문서나 엑셀 파일 하나 없이 A4용지에 글자를 갈겨쓰면서(즉, 다시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생각이 나는 대로 두서없이 할 일들을 설명해 줬다. 과연 해야 할 일은 많아 보였다. 이렇게 계획성 1도 없이 일했던 전임자도 했던 일이라면, 우선 문서 처리 쪽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
대신 전임자 선생님은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적이라 두루두루 상인들과 친구 먹으며 일했던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친분을 쌓을 자신도, 의지도 없다. 서울시 생활임금을 받으면서 과한 열정이 날 리가. 그저 내 할 일을 적당히 할 뿐이겠지. 상인들은 다수이고 나는 혼자라는 점에서 겁이 나지만, 아 모르겠다. 일단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전임자 선생님은 자신은 아무런 인수인계 없이 맨땅에서 일을 시작한 걸 강조하면서, 인수인계를 받을 수 있는 내 경우는 얼마나 좋으냐는 식의 뉘앙스로, 파일로 빼곡한 정신 사나운 모니터 바탕화면에서 어떤 파일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찾지는 못했다.
상인회 회장님이며 총무님, 이사님 등등과 인사를 하러 다녔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웃는 얼굴로 계속 인사하기 같은, 난도가 높은 업무를 무급으로 보고 있노라니 에너지가 쫙쫙 고갈됐다. 처음부터 난 마인드만은 공무원 마인드로 일할 것이라는 이미지를 팍팍 풍겨야겠지, 아니 노력하지 않아도 티가 팍팍 나겠지 ㅎㅎㅎ 난 차분하게 생겨먹었고, 차분하게 살아왔고, 차분하게 살아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