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연애하고 있을까?
2017년의 2월 어느 날.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사실 세월이 오래되었지만 그리 막역한 사이는 아닌, 아직도 서로 배려하고 예의를 차리는 친구다. 본 지가 오래 되면 서로 가끔씩 연락하고 시간내어 한 번씩 꼭 보고, 서로 맛있는 걸 사주려고 하는 그런 좋은 친구 사이다.
우리는 같은 학교 동기였기에, 이번에는 모교 대학가에서 만남을 가졌다. 내가 좋아하는 선술집에 가서 등심 나베와 함께 맥주 두 잔을 시켰다. 이런 저런 사는 얘기를 하다가, 친구가 조금은 주저하듯 자신의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 그 친구는 한 번의 이별을 겪고 재결합한 상대와 만나고 있는 중이었고, 헤어져있던 기간이 짧았기에 그 기간을 제하지 않는다면 어느새 만난지도 햇수로는 4년이 되어가는 장수 커플이다. 어쩌다보니 나는 그 커플의 시작부터 지켜보고 있는데 친구는 고민이 많은 듯 보였다.
" 나는 그 사람과 잘 맞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나봐."
사람에게는 기질(氣質, temperament)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감정적인 경향이나 반응에 관계되는 성격의 한 측면으로써 성격과 거의 유사한 의미로 쓰인다. 이 기질이란 것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절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 겪는 여러가지 일들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도 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기질과 속에서 드러나는 기질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겉성격과 속성격이 이와 같다. 결혼을 하기 전에 적어도 계절이 모두 한 번씩 바뀔 때까지는 만나보라던가, 결혼 하기 전에 한 번 같이 살아봐야 한다던가 하는 조언들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는 기질뿐만이 아니라 보지못했던 내적인 기질도 파악해야 진짜 그 사람이 나와 맞는지를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일맥 상통한다.
친구의 말의 요지는 이랬다. 상대방은 자신의 겉기질을 보고 자신을 판단한 상태에서 만났고, 항상 외적 기질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자신을 원하고 바란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사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고 전혀 다른 내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기에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정말 힘들다는 말이였다. 친구와 상대방은 둘 다 직장인이기에 늦은 저녁에나 시간이 난다. 그래서 항상 피곤한 상태에서 만남을 가지곤 하는데 언젠가부터는 그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유인 즉슨, 자신이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는 굉장히 내향적인 사람이라 혼자서 충전할 시간이 필요한데, 충전해야 할 시간에 그 사람을 만나려고 하다보니 정작 자신이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자신이 너무 힘들다는 얘기였다.
"사실 나는 연애보다는 내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 사람은 그걸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 내가 불안하대."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 아닌데 나를 재밌다고 생각해. 둘이 있을 때 나에게 자꾸 재밌는 얘기를 해보라고 하는거야. 나는 그런 말을 왜 해야되는지도 모르겠고, 할 수도 없는데..."
"나보러 너무 현실적이래..."
대부분의 연애의 시작은 사소한 인연에서 시작되어 빠르게 발전한다. 사람이 마음이 변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 없이도 가능한 불가항력적인 일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여 연애를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상대방의 외적 기질에서 보이지 않았었던 내적 기질들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내적 기질들은 지금까지 상대방의 외적기질에서 보았던 것들과 너무 다른 것들이라 상대방에게 갑자기 실망하고 마음이 떠나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의 내적 기질을 자신의 입맛에 맞춰 바꾸려고 하다가 다투고, 끝내 바꾸는 것을 단념하고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다는 변명과 함께 이별하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상대방의 외적 기질만 보고 상대방을 판단한 후, 새롭게 알게 되는 내적 기질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마음대로 나쁘다, 좋다를 재단함과 동시에 더 심한 경우 상대방의 내적 기질을 뜯어고치려고 한다는 것. 사람의 기질이 절대적으로 불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에 의해서 변하기는 쉽지 않다. 기질은 바로 자신의 가치관을 뿌리로 하여 형성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대체로 믿는 편이다. 나는 한 사람의 가치관, 기질과 같은 것은 정말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 아닌 이상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누군가의 가치관과 기질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꽤나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의 가치관과 기질을 알 수 있게 되기까지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방에게 직접 물어보거나 그러한 상황을 목격하지 않는 이상, 주위 사람들의 말들은 참고만 할 뿐 그것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애를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내 가치관에 맞춰 판단하고 그러한 판단으로 인하여 상대방과 다투거나 힘들어 하게 된다. 이미 이성적으로는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 사이에 감정이 녹아드는 순간 이성적인 판단이 되지 않는다.
현실적의 반대말은 이상적이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들을 시도해보고,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하게 만드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변화의 물결을 일게 하고 결국 세상을 변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 때 미친 사람이라고 불렸던 그 사람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 세상을 바꾼 후 성공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사실 이러한 인생의 가치관과 마찬가지로 연애에 있어서도 이상적인 가치관이 필요하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은 그 누구도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 평생 같이 할 지 아닐 지를 알 수 없고, 그렇기에 우리는 이 사람과의 행복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가능성이 낮더라도 끝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마치 평생을 함께 할 것처럼 연애를 해야한다. 그리고 혹여나 실패하더라도, 그 당시의 나에게 후회를 하지 않고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런데 연애를 이상적으로 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내가 나의 현실의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라도 이상적으로 사랑에 뛰어들고 싶을 만큼 그 사람을 좋아해야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조건은 나만 충족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사람과의 행복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하는 모든 것들이 상대방에게 부담스럽거나 싫을 수도 있다. 상대방도 나를 그 만큼 좋아하고 나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넘쳐야, 그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좋은 것들이 될 수 있다. 허나 서로를 그렇게 열렬하게 좋아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확률이라고 하는 것 같다.
친구의 얘기를 듣고 난 후,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너는 이상적으로 네 꿈을 향해 네 인생을 설계해나가고 있지만, 정작 상대방과의 연애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그 상태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네가 상대방을 그만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은데?"
친구는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이상적인 꿈. 그 꿈을 제쳐두고 연애라는 것을 이상적으로 쫓을 만큼의 욕구가 친구에게는 없었다. 단지 자신의 꿈을 우선으로 두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 자신을 외롭지 않게 해 줄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을 뿐이었다. 결국 나와의 긴 이야기 끝에 친구가 내린 결정은 회의적인 방향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세상에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내가 사랑받고 싶다면,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하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상대방을 사랑할 마음이 없으면서 사랑받는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에게 상처를 남겨주는 일이 될 뿐이다.
누군가와의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번쯤 생각해보자.
"나는 정말 내 꿈, 내 인생보다 이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대답에 "그래."라고 자신있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의 모든 걸 바쳐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