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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ckuism Feb 13. 2017

어머니, 당신은 천사입니까?

크나큰 부모의 사랑 앞에 우리는 모두 불효자다.

이 글의 커버 사진으로 걸어둔 그림은 오스트리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여성의 세 시기 중 일부분이다. 이 부분은 엄마와 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림 속 여성이 아이를 안고 있는 부분만 따로 일컬어 부르는 말이다. 모성애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듯한 여성의 따뜻함과 그 속에서 잠든 편안한 아이를 극적인 장식성과 함께 그려낸 클림트의 실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늘 얘기할 주제는 바로 이 크나큰 '어머니의 사랑'이다.




평소와 같던 어느날, 직장을 마치고 들어오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나 내일 병원을 좀 가야할 것 같아."


아버지는 알았다며 같이 가자고 하신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내 마음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저녁을 먹지 않은 부모님과 나는 필요한 식료품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릴 겸 나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한적한 샤브샤브집. 나는 어머니의 병원행이 계속 신경쓰여 식사를 하며 넌지시 이유를 물었다. 되돌아오는 대답은 나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다.


"내시경을 해야할 것 같아. 암인지 아니면 원래 있던 병이 심해진건지 확인해보려고. 이 병이 전이되면 암이 된다고 했거든. 요즘 상태가 좋지 않네."


60대가 다 되어가시는 동안 이렇다 할 병원 신세 한 번 지지 않으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마치 부러지지 않는 큰 소나무처럼 우리 집에 기둥이자 뿌리가 되어 우리에게 양분을 주셨다. 그런데 그 커다랗던 소나무가 이제는 부러지려고 한다. 나무의 두꺼웠던 허리는 힘겹게 견뎌왔던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곪고 병들어서 이제는 더이상 버틸 수 없나보다. 내가 그 무거운 삶의 무게를 어머니 대신 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마자 어머니는 나의 곁에서 한 발자국씩 멀어져간다.


어릴적에 나는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어머니가 하라는 건 했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회초리는 철부지 어린아이인 내게 마치 울타리와 같았다. 나이가 점점 먹어 가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찾고 싶게 되었고, 어머니가 만들어 놓으셨던 그 울타리를 벗어나기위해 어머니와 대립했다. 그 당시의 나는 어머니가 나에게 해준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며 어머니에게 고함을 내지르고, 나는 지금 불행하다며 어머니 앞에서 울면서 분을 토했다. 그런 갈등의 수 많은 반복 끝에, 어머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 네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내가 힘 닿는 데까지 지원할게."


어머니는 나에게 기대감을 내려놓으셨지만, 나를 포기하지는 않으셨다. 끝까지 나를 믿겠다며 나에게 모든 결정들을 맡기셨다. 그렇게 어머니가 진정으로 나에 대한 믿음을 주시자, 나는 스스로 위기감이 들었다.  내 인생이 망가질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진짜 내 삶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했고, 대략적인 갈피가 잡히자 그 꿈을 쫓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정말로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씀하셨다. 세월이 지나 당시의 얘기가 나오면 어머니는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이 빛을 잃는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났었다고. 그래서 당신의 인생도 어둠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고.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자꾸만 내 가슴이 아려온다. 그 당시에 어머니에게 했던 모진 말들과 행동들이 그대로 내 가슴에 날아와 비수가 되어 꽂힌다. 일가친척 아무도 없는 타지에서 외로운 시집살이를 하며 교편을 잡으시고 동생과 나를 키우셨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힘듦 앞에서 나는 꼭 그렇게 철없이 투정을 부려야했을까.


20대가 되어 군 입대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선임들의 눈 밖에 나서 힘든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기들과도 가깝지 않았고 선임들은 모두 나를 미워했기 때문에 군대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나는 절대적으로 혼자였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 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더 견디기 힘든 것이라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너무 힘들어 이러다가는 삶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선임들의 눈치를 보며 몇 일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들이니?"

"네, 어머니... 별 일 없으시죠. 식사는 하셨어요?"

"..."

"..."

"무슨 일.. 있니?"

"... 에..에이~ 일은요. 그냥 걱정하실까봐 전화드렸어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마세요."


어머니는 내 물음에는 대답하시지 않고 나의 안부부터 먼저 물으셨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어머니라는 것을 그 때야 알았다. 나는 혹시나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두려워 대충 둘러대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 10분을 숨죽이고 흐느꼈다. 누군가 내가 우는 걸 보면 혼을 낼까 싶어 소리내지 않게 벽을 보고 울었다. 지금까지 나의 철없던 행동들에도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나를 제일 먼저 걱정해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에, 내 마음속에서는 감사함과 죄송함이 뒤섞여 휘몰아쳤다. 


그 후로 나는 악착같이 노력했다. 부대의 모든 일이 내 일인 것처럼 선임들의 일을 도맡아 했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나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든 힘든 것들을 견딜 수 있었다. 그 큰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당당하고 밝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얼마되지 않아 나는 선임들에게 인정받는 이등병이 되었고 그 이후로는 모두가 나를 인정해주었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로 내 가치관은 많이 바뀌었다. 모든 일에 있어서 가족은 0순위다. 그것이 내 인생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상사이든 상관없었다. 가족을 위한 나의 행동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곳에서는 내가 몸 담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위해 모든 걸 버리고 달려와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 이 세상 어디에도 가족만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없다. 그 때 바뀐 나의 가치관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나는 이제 몇 살을 더 먹어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그 당시에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고통이 보인다. 그리고 그 큰 고통 속에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견뎌오셨던 어머니의 희생이 보인다.

지금 뒤돌아보면 마치 나의 군대 시절처럼 어머니는 절대적으로 혼자였다. 시집오면서 시댁으로 온 어머니에게는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없었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가족도 없었고,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그 어느 누구도 주위에 없었다. 어머니는 겨우 내 나이보다 몇 살 많은 때부터 그렇게 외롭게 혼자인 채로 나를 키워내셨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는 단 몇 주, 몇 개월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어머니는 도대체 그 지독한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만약 어머니가 혼자셨더라면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셨을거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에게는 지켜야 할 가정과 자식들이 있었기에 그 크나큰 고통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견뎌오실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랑이라는 그 위대한 이름 하나만으로 그 모든 것들을 견디고 또 견디며 살아오신 것은 아닐까.


이제 나는 그 때의 어머니와 같은 나이가 되어간다. 비록 가정을 가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 때의 어머니의 힘듦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간다. 그래서 이제는 좀 더 나은 불효자가 되려고 노력하려고 하는데, 어머니는 평생 불효자였던 나를 기다리실 생각이 없으신 듯 자꾸만 멀어지시려고 하신다. 마치 지금까지의 무거운 삶을 놓아버리시려는 듯,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답으로 이제는 진정한 자유를 얻으시려는 듯, 점점 내 곁에서 멀어져가신다. 어머니가 한 발자국이라도 더 멀어지기 전에, 나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어머니가 잃으셨던 행복을 찾아드리기 위해 노력하련다. 어머니의 치마폭에 숨어 힘든 시절을 보냈던 내가, 어머니의 사랑 덕에 이제는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련다.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나는 진정한 사랑을 배웠다고 어머니께 외치련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영원한 사랑으로 어머니를 기억하련다.


더 큰 어둠 속에 계신 채로 절망 속에 빠진 나에게 항상 빛이 되어주셨던 어머니.


나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평생에 걸쳐 보여주셨던 나의 어머니.


어머니, 보고 계시죠?


어머니, 당신은 제 인생의 유일한, 그리고 진정한 천사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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