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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의 마지막 달에 쓰는

셀프 칭찬 일기

벌써 연말이다. 여기저기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보이고 올해가 가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는 말들이 들리니 꽤나 연말 분위기가 난다. 그래서인지 괜스레 마음이 싱숭생숭한 것이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잦아졌다. '아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싶어서.


스케줄러를 들여다보며 올 한 해를 어떻게 살았나 돌이켜봤다. 참으로 많은 일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다가도 끝엔 나즈막히 한숨이 새어 나온다. 약간의 아쉬움과 안도감이 한데 섞인 복잡 미묘한 한숨이다.


어째서 인지 '잘했구나' 하는 안도감보다는 '이럴 걸 혹은 이러지 말 걸' 하는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분명 나는 올해도 애를 쓰며 최선을 다했는데 왜 고생한 나에게 시원하게 '고생했다. 잘했다' 말해주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혼자 가만히 앉아 끄적여 보았다. 올 한 해 고생한 나에게 칭찬해줄 것들을 찾기위해.



새로운 운동에 재미를 붙인 것

올해 초만 해도 몸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다. 컨디션을 핑계로 운동을 쉰지도 어언 1년이 넘은 데다 기존에 하던 헬스와 수영에 실증을 느낀 탓이다. 그때 우연히 접하며 빠져들게 된 운동이 배드민턴이었다. 지금껏 배드민턴은 약수터에서 하는 노잼 반복 운동인 줄로만 알았는데, 새롭게 알게 된 혼성복식 게임은 민턴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 뒤로 일주일에 2번씩 퇴근 후 사람들과 경기를 하고,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신발부터 라켓, 의상과 가방까지 운동장비를 구비하느라 생각지도 못한 큰 지출이 생겼지만, 그 덕에 꾸준히 재미있게 즐길 새로운 운동이 생겼다. 5년 만에 다시 서핑을 시작한 것 또한 칭찬할 일이다. 덕분에 올여름부터 가을까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바다와 보드를 맘껏 즐겼다. 평생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삶에서 노래를 되찾은 것

노래는 내가 스스로 잘한다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위이자 지금껏 나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해온 활동이다. 사고 후 지난 몇 년 간 노래를 잊고 살았었는데, 올해는 삶의 여러 장면에서 노래를 되찾았다. 교회에서 매주 찬양팀 싱어로 섬기는 것은 내가 소리길을 잃지않게 해주었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가장 기특하게 여기는 것은 소중한 이들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 것이다. 노래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의미 있고 특별한 선물이기에 그들을 위해 노래한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요즘은 대학시절 밴드 동아리에서 함께 음악을 즐기던 사람들과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대단한 전문성이나 실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것 자체로 설레고 즐겁다. 지금껏 여러번의 공연을 하는 동안 한번도 지인들을 부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가까운 이들을 초대해보려 한다. 그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음악들을 들려주며 내가 느끼는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내년 1월 공연까지 힘내서 잘 준비해보자구!

가장 소중한 이들의 결혼식에서
여러 생명을 살린 것

직장에서의 한 해를 돌아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인생에서 한번 겪기도 쉽지 않은 빅 사건사고들이 매일 연이어 여러 명에게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으니 말이다. 올해 중반까지 흡연과 음주, 절도와 무면허, 가출과 검거(?) 같은 류의 비행은 물론, 우울증과 조현병, 자해와 자살시도, 학교폭력과 성폭행 등의 굵직한 아픔들을 아이들과 함께 겪었다.


그 당시만 해도 진흙탕에서 함께 뒤구르며 삶이 휘청이는 듯힐 괴로움에 몸부림쳤는데, 지나고 보니 그 일을 함께 겪은 아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한명도 빠짐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얼마 전 몇몇의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덕분에 우리 아이가 살았다고, 그 시간을 함께 견뎌주어 고맙다고.' 생각지 못한 연락들에 그간의 고생들이 씻기는 듯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 글을 빌어 올 한 해 버거운 삶의 무게를 견뎌내며 무너지지 않고 버터 준 나와 아이들에게 정말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잘했어 정말, 그럼에도 살아남아줘서 고마워.

그래서 잘못했어 안 했어?
글쓰기를 놓지 않은 것

올해 초 새해 목표 중에 제일 먼저 적은 것이 '꾸준히 글쓰기'였다. 원래는 '주 1회 글쓰기, 매일 조금씩 글쓰기'가 목표였는데 몇 년째 그래 왔듯 이번에도 역시나 지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들은 멈추지 않은 것이다. 3월에 한 글쓰기 모임에 참여해 10일 간 매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실행했고, 그 결과 개인적으로 연재하는 브런치북을 3년 만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때 완성한 브런치북 2권을 엮어 출판문화사업진흥원에서 하는 중소 출판사 출판 공모전에 지원했고, 그 책으로 1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도 응모했으니 나름 선방했다고 할 수 있다. 요즘도 새롭게 참여한 글쓰기 모임 덕에 못해도 2주에 한 번씩은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쓰는 이 글 또한 12월 글쓰기 과제의 일환이기에 그럼에도 계기 위해 노력하는 나와, 나를 쓰게 만드는 글썽글성 멤버들에게 큰절을 올리고싶다.


아주 잘하고 있어 덕규.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글써엉.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칭찬일기를 쓰다 보니 새삼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별 다르게 이뤄낸 것이 없다는 생각에 한 해가 가는 것이 아쉬웠는데, 하나하나 짚어보니 참 많은 것을 해내느라 애썼구나 싶다. 앞서 언급한 것 외에도 칭찬해줄 거리들이 많다. 뭉치를 임시보호 한 것, 그것을 토대로 책을 쓴 것, 직장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든 것, 부모님께 사랑을 표현한 것... 역시 감사든 칭찬이든 하면 할 수록 느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나는 나의 삶의 어느 한순간도 허투루 대충 산 적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스스로 '잘했다, 고생했다' 토닥이며 응원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지금껏 늘 잘하지 못하고 더하지 못한 것을 질책하기만 했던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나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기는 사랑과 인정인 것을 왜 일찍 알지 못했을까 싶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나에게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장대한 계획을 세워놓고 '더 빨리, 더 많이, 잘 해내'라고 닦달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되지'라며 느긋히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다. 대신 내년 한 해는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많이 웃고, 생생히 깨어서 삶의 구석구석을 충만하게 느끼는 해로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결국은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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