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나는 강아지와 고양이중 개과에 속하는 인간이다. 엉덩이를 쉼 없이 흔들며 사람을 반기고 쓰담 쓰담해주는 손길을 좋아하는 강아지 말이다. 도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부르면 쪼르륵 달려 나가는 순종 개과인 사람이 나다. 독립적인 고양이와 달리 개는 사람의 손길을 탄다.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 안에 혼자 두어도 잘 지내지만 개는 혼자 두면 시름시름 앓는다. 밥도 먹지 않고 놀지도 않고 하염없이 문 앞에서 주인이 오기를 기다린다.
나이가 늘어날수록 혼자만의 시간은 늘어가고 함께할 수 있는 이의 숫자도 줄어든다.
까칠하고 도도한 고양이중에 애교 많고 살가운 고양이를 개냥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강아지 중에도 자신의 성향은 유지한 채 독립적이고 도도한 강아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는데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 맘대로 단어를 하나 만들었다. 냥아지.
독립적인 냥아지 인간이 되기로 다짐했다.
배고픔을 없애기 위해 밥을 먹는 행위와 먹는 자체가 즐거움이 되어 밥을 먹는 행위는 겉으로 보일 때는 같아 보이지만 내면의 상태는 굉장히 다르다. 전자는 우울을 닮은 잿빛이라면 후자는 행복을 닮은 무지갯빛이다. 혼자 있을 때의 나는 잿빛형 인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나는 무지갯빛형 인간이 된다. 혼자 시간을 보낼 때의 나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럴 때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본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란 인간은 왜 혼자서 재미나게 놀지 못하는 가에 대해 탐문하기 시작했다. 수없이 질문을 던져보고 생각도 해보고 MBTI, 애니어그램도 해봤다. 그 결과 지금껏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가 아닌 사랑에 대한 욕구가 많은 기질을 타고난 것뿐이었다. 나의 기질을 받아들이고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을 추려냈다. 사랑을 주면 받으려는 마음, 관계에서 오는 서운한 마음, 미운 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나를 향한 큰 화살을 버리는 연습을 시작했다.
미래엔 행복해질 거야. 다짐하며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을 행복하게 살아내지 못하는 내게 주어질 미래의 행복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느리지만 천천히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 지금처럼만 하면 이 마음 그대로 쭈욱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작은 상처에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나는 꾸준히 하는 걸 잘하는 사람이다. 버스에 앉아 눈이 뜨거워지게 울다가도 내릴 때가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눈가를 쓱 닦아내고 일상을 살아냈다. 그렇게 반복하며 1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겉으로 보일 때 여전히 나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이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마음 상태가 달라졌다. 예전엔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혼자 했었다면 요즘은 행위 안에 즐거움이 있다.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나를 칭찬한다.
따로 같이의 행복을 알아가는 중이다. 고무줄 바지처럼 늘여야 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늘려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늘였던 손을 놓으면 원래의 나로 되돌아오는 혼자여도 즐거운 냥아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1. 외롭다는 생각을 전보다 많은 하는가. -no
2.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는가. -yes
3. 관계에 대한 서운함이 전보다 많은가.-no
4. 여전히 사람이 좋은가.-yes
자체적인 판단으로 당신은 냥아지가 된 것 같은가?- of course(오글 거리긴 하지만 주제가 칭찬 샤워니까 오버해서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