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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면

정말 쉽지 않았던 2022년 헌 해가 가고(한 해 아니고 헌 해 맞다. 오타 아님.) 2023년 새 해가 밝았다. 새해에 처음으로 쓰는 글이 왜 굳이 장례식 초대글인가 싶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 해가 밝자마자 처음으로 떠올렸던 것이 '죽음'인지라 이 글을 첫 글로 쓰고 싶었다. 크게 무겁거나 어두운 글이 아니니 편히 보시길 :)


며칠 전 큰 마음먹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건강검진을 받았다. 위장과 대장 내시경을 받기 전 수면마취를 하기 위해 베드에 누워있는데 문득 '이대로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온 동료에게 '내가 혹시 깨어나지 못하면 우리 집 고양이에게 좋은 주인을 찾아달라' 부탁하자, 헛소리하지 말고 어서 끝내고 국밥이나 먹자고 했다.


다행히 무사히 깨어나 검진결과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의사가 '직장 외부에서 압박 의심 소견이 보인다'며 대학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진을 받아보라고 했다. 이제 겨우 살아 돌아왔는데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철렁하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켜 보았지만 온갖 종류의 암과 병들이 머릿속을 헤집으며 나를 다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러 가지 질문들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만약 큰 병에 걸린 거면 어떻게 하지?', '그러다 갑자기 죽는 건 아닐까?', '곧 죽는다면 난 지금 무얼 해야 하지?' 그렇게 몰려오는 불안감에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나는 언제 맞이하게 될지 모르는 나의 죽음과 장례식에 대해 생각다.




죽기 전에 장례식을 하고 싶어요

언젠가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였다. 할아버지는 지금껏 모아 온 얼마 안 되는 재산을 털어 자신이 죽기 전에 살면서 신세를 지거나 감사한 사람들에게 감사와 사죄의 마음을 전하고 떠나셨다. 그때 처음으로 시한부의 삶을 사는 것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채로 사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생전 장례식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다. 내가 죽은 뒤 치러지는 '내가 없는 장례식'이 아닌, 죽기 전에 내가 손수 준비하는 '나와 함께 하는 장례식'에 대해. 내가 사라진 뒤에 나라는 존재에 대한 상실과 이별을 슬퍼하는 장례식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보고 함께한 추억들을 나누고 기념하는 뜻깊은 장례식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내 장례식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손글씨로 적은 초대장을 만들고 준비물에 '나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나 함께 했던 사진들을 챙겨 오라'라고 부탁한다. 식장은 내 삶에 존재했던 특별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담긴 사진들로 꾸미고, 내가 좋아하는 색과 꽃, 좋아하는 노래와 향기로 풍성하게 채울 것이다. 식 당일에는 나의 장례식을 방문해주는 모든 이들과 한 명 한 명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남기고, 둘러앉아 그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먹는다.

그들의 삶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들이 기억하는 우리의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지. 손님들이 준비해온 사진이나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의 삶을 나눈다. 그리고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들에게 온 마음을 담아 감사를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 있다면 진심을 다해 사죄한다.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나의 지난 삶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뒤, 한 명 한 명 모든 사람을 가슴깊이 꼭 안아주고 돌려보낸다.

구체적인 계획들을 생각하다 보니 결혼식을 준비하던 때가 떠올랐다. 누군가 내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날을 꼽으라면 항상 결혼식을 드는데, 그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나의 행복을 빌어주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그날 모두가 함께 해주었던 것처럼 내 인생을 마무리하는 그날에도 그들이 함께 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며

지난 연말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았다. 10여 년을 함께한 우리 집 강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몇 달 사이 강아지는 바싹 말라 아기처럼 작아져 있었고,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신생아처럼 가만히 누워있었다. 평소에는 서로 대화를 잘 나누지 않는 우리 가족이었지만 그날은 강아지로 인해 모두가 한데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 아이가 처음 우리 집을 찾았을 때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얘가 얼마나 똑똑하고 순했는지 어떤 사고를 치며 말썽을 부렸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지나, 각자가 후회하고 미안하게 느끼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재미있는 순간이 생각나면 함께 웃었고, 감정이 복받쳐 오르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같이 울었다. 그렇게 그날 우리 가족은 숨을 몰아쉬다 곤히 잠들기를 반복하는 강아지를 가운데 두고서 밤이 늦도록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기 천사가 된 너의 모습

이틀 전 그 녀석이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소식 듣고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찾기 전까지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모든 절차는 실제 장례와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정성스레 염을 하고 추도를 한 뒤 입관을 하고 화장을 했다. 우리는 차갑게 굳은 아이를 끌어안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아이를 강아지별로 보내주었다. 나는 무너지듯 오열하는 가족들을 지켜보며 우리에게 남아있는 이 시간들을 조금도 허투루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문득 연말의 어느 저녁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보낸 그 시간이 생각났다. 만약 이 아이가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하게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우리 가족은 그간 못해준 것들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 죄책감에 사로잡혀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나는 우리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허락해 준 녀석 고마웠다. 그래서 마음깊이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아이의 평안을 빌었다.


이번 생에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와 주었던 녀석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가족에게 '함께 하는 시간의 소중함'이라는 큰 선물을 주고 그렇게 떠나갔다. 




새해를 맞이하는 감회가 커서인지 올해는 꼭 첫 일출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20살 이후 거진 15년 만에 처음으로 일출을 보러 갔다. 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 많은 사람들이 어둠을 뚫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탄성과 함께 올해의 소원을 빌었다.


'올해는 부디 제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아무도 죽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고 잠시 뒤 내 소원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들 부귀와 영화, 건강과 행복을 비는 와중에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해 주세요'라니... 다른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을 피하게 해 달라는 나 자신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곱씹어 생각해보니 내 삶에서 죽음이 늘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구나 싶었다. 살면서 이미 여러 명의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냈고, 작년 한 해만 해도 많은 죽음들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죽음을 경험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겪어도 죽음은 익숙해지기 어려운 존재인 것 같다.


세상 어느 누구도 죽음을 예측하거나 막을 수 없기에 '아무도 죽지 않게 해 달라'는 나의 바람이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올해는 나를 포함한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이 적어도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레 떠나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비록 내가 누군가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지만, 언제 이별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올 한 해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내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소원을 바꾸어 빌어야겠다.

올해의 첫 해를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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