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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제인 Jan 10. 2023

죽을 준비를 할 수 있다면

외향적인 - 미지의 창


마음의 준비는 다 마쳤는데
죽음은 쉽게 오지 않는다.
- 이영하,  작별인사 中 -



시한부로 죽고 싶어요


죽음의 유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시한부를 택할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노환이나, 급작스런 사고사는 싫다. 하나는 죽음은 준비할 시간이 아예 없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준비할 시간이 특정되지 않는다. 준비할 시간이 특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살아가겠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죽을 거란 걸 알면서도 준비를 하지 못한. 그래서 난 "죽음을 가정한 삶"을 통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만큼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특정할 수 있는 건 특권이라고 믿는다.


"나는 내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만 하면 앞으로의 할 일은 명백해진다.

만약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

우리는 한 번에 하루씩 살 수 있을 뿐이라는 진리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하루를 가지고 난 대체 뭘 해야 할까?

-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중 -



상상 속 죽음

진짜 죽음


죽음의 순간을 상상해보는 것으로 치자면 나는 백번도 넘게 이미 죽어봤다. 어렸을 때는 거의 매일같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날아다니는 꿈을 꿨다. 땅에 진짜로 닿게 되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했었다. 뉴스에서 사건 사고 소식이 나올 때마다 그 상황에서 의식을 잃어갔을 분들의 마지막을 상상하며 애도했다. 운전하다 도로에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를 보면 의식이 떠난 자리에 잔인하게 놓여진 몸뚱아리의 의미를 곱씹었다. 반대로 몸이 떠난 누군가의 자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들리고 보이는 듯 생생한 기억에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기도 했다. 4년 전,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가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삶과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사바아사나 - 출처: Naver


요가를 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몸과 의식의 경계에서 죽음을 바라보게 되었다. 육신은 유한하고 의식은 무한하다. 송장자세(사바아사나)가 그러한 깨달음의 정점이다. 몸을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는데 의식은 그 흐름에 따라 온몸의 감각을 느낀다. 언젠가 나의 의식이 늙고 병든 내 육신을 떠나게 되는 순간이 되면 그 감각은 온전히 멈출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의식은 어디론가 흩어져 라질 것이다. 그 순간은 아마도 내 상상 속의 그 무엇과도 같지 않을 것이다. 운이 좋아서 만약 의식이 허락하는 마지막 일주일을 알 수 있다면 나는 무얼 할 것인가. 그 고민의 답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장례식 영업을 할 거야.


그들을 결혼식에 초대했던 것처럼 내 장례식에 와달라는 암묵적인 영업을 할 거야. 하지만 결혼식 초대와는 다르게 그들에게 나의 죽음을 미리 알리지는 않을 거야. 그들에게 마지막 나와의 기억을 선물하고 싶어. 나의 장례식에서 나를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기억해달라는 마지막 염원이야. 그리고 남은 내 가족에게는 나의 부고를 기리는 조문객의 발길과 두둑한 부의금을 선물할 거야.



외향적인(Extrovert)


막연하게나마 내 생의 마지막 일주일은 혼자 보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하리의 미지의 창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내 모습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의외로 사람들과 같이 있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연결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 느낌을 즐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음을 주면 나와 타인의 경계가 흐릿해져서 나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의 굳은살을 키워왔다. 그러는 사이 관계 맺고자 하는 욕망마음 한편에 갈 곳을 잃고 헤매다가 삐죽빼죽 삐져나왔다. 글을 쓰면서 왜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스스로 이해해주고 도닥여주고 있다. 나의 마지막 일주일은 그런 나를 위해서 가급적 많은 이들을 만난 후에 떠나고 싶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책의 주인공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서른여섯의 신경외과 의사다. 자기 죽음을 예측하게 된 순간 그는 의사로서 냉정하게 생사의 Trade-off를 생각했다. 치료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약물을 선택하고 동료의 도움을 받으면서 죽어가는 몸의 기능을 보살폈다. 오직 그가 의사기 때문에 가능한 특권으로.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의학기술에 기반해서 살 확률을 계산하지 않았다. 단지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스스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을지를 탐구했다. 투병 중에 환자를 치료했고 산소호흡기 바이팝(BiPAP)을 뗀 채로 가족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을 선택했다. 그가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은 그 옆을 지킨 가족의 시선으로 책에 쓰여 있다. 책장을 덮으면서 나의 마지막도 그의 마지막과 같기를 바라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죽음을 미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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