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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

3년 그리고 3개월이 흐른 뒤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될 즈음 재판 차 터키를 찾았던 것이 마지막이니 자그마치 3년 만의 해외여행이다. 코로나 이후 첫 여행을 이렇게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짐을 싸면서도 얼떨떨하다. 캐리어를 벌려놓고 짐을 싼 지 2시간을 넘어섰지만 자꾸만 생각에 잠겨 손을 놓는다. 내일 떠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다.


내일은 4개월 만에 남편을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인천공항에서 부산까지 6시간에 걸쳐 이동할 바엔 차라리 가까운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움직이자 한 것이 엉겁결에 여행이 됐다. 4개월 전 생각지도 못하게 생이별을 했던 우리 부부는 생각지도 못하게 한국의 신혼집이 아닌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재회하기로 했다.


작년 말 남편을 먼 곳으로 떠나보낼 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찾아오리라고는. 그러나 시간은 야속하리만큼 빠르게 흘렀고 내일 이맘때 즈음이면 나는 남편과 함께 있을 것이다. 사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게 남편이 있다는 것도(?), 내일이면 그 남편을 만날 거란 것도. 그래서 마냥 설레거나 기대되기보다는 마치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는듯 떨리고 긴장되는 기분이다.



고작 4개월이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각오는 했지만 늘 함께 붙어있던 두 사람이 떨어지니 삶의 많은 부분에서 결핍이 찾아왔다. 항상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이 일순간에 사라졌고, 소소하게 누리던 행복들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당연한 것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서로의 소중함도 절실히 느끼게 됐다. 각자가 서로의 삶에서 해주고 있던 역할들이 얼마나 컸는지, 모든 것을 혼자의 힘으로 해나가면서 알게 됐다. 삶을 함께 살아내 주는 존재에 대한 감사함은 서로의 부재로 인해 크고 생생해졌다. 혼자서 지고 가는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같이의 가치'를 깨달았다.


이따금씩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머나먼 이국의 사막 한가운데, 작은 방 안에서 혼자 잠들고 눈뜰 그 사람이 애처로웠다. 밥은 잘 먹는지, 외롭진 않은지, 모든 것이 다 낯설은 그곳에서 혼자 어찌 지내는지. 그를 생각하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짧게 주고받는 통화 속 우린 늘 웃고 있었지만 통화가 끝난 뒤에 나즈막한 한숨이 따라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지내던 그가 '사실은 하루하루가 고비라며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나는 애써 냉정하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버티라' 했다. 그였으면 내게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고 당장 돌아오라 말해주었을 텐데... 통화를 끝낸 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에 혼자서 한참을 울었다.


하루는 이른 새벽녘에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밤 꿈속에서 나를 보았다며 자다 깨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많이 보고 싶고 걱정된다며, 혼자 둬서 미안하다 말했다. 새벽 4시 30분, 자다 일어나 꿈 이야기를 하던 우리는 떨어진 뒤 처음으로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나누며 펑펑 울었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간다. 얼마 만의 비행인지, 또 얼마 만의 남편인지. 낯설고도 반가운 것들을 마주할 생각에 마음 한켠이 몽글거린다. 저 멀리 게이트에서 걸어 나오는 남편의 모습과 그를 발견하자마자 달려가 안길 나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그러나 어떤 표정일지, 어떤 감정이 찾아올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짧은 여행 뒤 그가 간절히 그리워했을 집으로 함께 돌아올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껏 차려놓고 도란대다보면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일상을 되찾을 것이다. 2주는 찰나처럼 우리를 스쳐지나갈 것이고, 찰나의 만남 뒤 우리에겐 다시 또 기나긴 기다림이 찾아올 거란걸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서로에게 집중해야 한다.


오늘 밤 잠에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24시간에 걸친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 그 또한 쉬이 잠들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어서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지기를, 그래서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빈다. 지금 만나러 간다. 지구 반대편에서 나를 보러 날아오는 그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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