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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 아파트 입주예정자입니다

신혼'희망'타운이 신혼'절망'타운으로

1년 전 봄날, 아파트 한 곳에 청약을 넣었다.

모델하우스를 살펴보고 몇 날 며칠 상의하여

고심 끝에 결정한 우리의 첫 집이었다.


당첨소식을 받던 날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많은 아픔들 뒤로하고 들려준 첫 좋은 소식에

모두가  '이제 잘 되려 나보다' 하며 축하해 줬다.


머리 맞대고 책자를 들여다보며 옵션 하나하나를

손수 선택했다. 한층 한층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보기 위해 공사 현장에 몇 번을 갔는지 모른다.



회사에서는 계약금으로 내 연봉의 2배를

준비하라고 했다. 쥐꼬리만 한 공무원 봉급에

외벌이였던 우리에겐 한 푼도 안 쓰고 싸그리

모아도 절대 지불할 수 없는 돈이었다.


남편은 그 돈을 모으기 위해 머나먼 아랍땅

사막 위로 우리 집값을 벌러 떠났다.


4달에 한번 남편이 휴가차 한국에 올 때마다

우리는 신혼집이 지어지는 곳으로 가 건너편

언덕 위에 캠핑 의자를 놓고 앉았다.


그리고 그곳에 한참을 앉아 그 집을 바라보며

자신이 고생하는 이유인, 우리가 살게 될 집에서

일 할 동기와 버틸 힘을 얻어서 돌아갔다.



얼마 전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 집을 포함해 전국의 여러 아파트에서

철근이 누락되었다고 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우리 집을 검색해 보던

남편은 사막 위, 작은 방에서 뉴스를 접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나쁜 소식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남편은 '우리 집이 순살이래'라고 웃으며  

일단 기다려 보자고 했다. 우린 애써 아닐 거라

부정하며 한동안 집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비 내리는 토요일, 설명회를 한다고 했다.

문제와 대처에 대해 한참 해명하던 그들은

우리에게 '안전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 했다.


전 국민에게 안 좋아져 버린 인식은?

입주하기도 전에 떨어진 집 값은?

팔고 싶을 때 안 팔리게 되면 그때는?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질문을 쏟아냈고

희망을 갖고 입주를 기다리던 주민들은

그곳을 선택했다 후회하게 될까 불안해했다.


그렇게 차가운 분위기에서 시작된 설명회는

곧 뜨겁게 달아올랐고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온갖 질문들이 쏟아질 때마다 회사에선

'추후에 윗선과 함께 논의해 보겠다'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라며

복사 붙여 넣기 식의 답변만 반복했다.


응답이었지만 해답은 될 수 없는 답변 속,

질-답이 오갈수록 감정은 더 격앙되었다.

한참 고성이 오가는 설명회를 지켜보던

나는 참다못해 손을 들고 목소리를 냈다.


"1시간 넘게 같은 말만 반복해서 들으니 모두가 함께 지쳐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화가 도돌이표를 도는 이유는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쪽의 자세입니다. 계속 회사 입장에서 변명하려 하지만 마시고 한 번만 입주민의 입장이 되어줄 수는 없으시겠습니까?


진짜 필요한 것 같은 현실적인 질문과 대처방안들은 전부 입주민들 측에서 쏟아내고, 사측에서는 저희의 공격적인 질문에 대해 수동적인 방어 자세만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사정이 있겠지만 우리야 정 안되면 계약 안 하고 빠진다 쳐도, 회사에서는 저 집들 다 지어놓고 아무도 안 들어가면 어쩌실 겁니까?


이 설명회는 공격에 대한 방어의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해주겠다. 그러니 제발 우리를 믿고 들어와 달라'라고 적극적으로 우리를 설득하고 홍보할 수 있는 기회 아닌가요? 입주자도 건설사도. 아무도 이득 보는 사람 없이 모두가 피해자인 지금 상황에서 우리라도 같은 편이 되어서 함께 손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자꾸 추후에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셨는데, 당장 당신들을 믿고 그 집을 선택한 우리들의 인식조차 좋게 못 바꾸는데 우리 아닌 타인의 인식을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설명회에는 실제적이고 우리가 혹할 만한 해결책들을 가져왔으면 좋겠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나는 한숨이 절로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아파트의 하자일 뿐이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고의로 일어난 것이든 아니든

책임질 사람이 있든 없든 답답함과 분노가 다.


하물며 누군가의 악의로 인해 사기를 당하거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면...그로

인해 분쟁을 겪는 이들의 심정은 상상조차 안된다.

이렇다 할 대안도, 해결책도, 보상도  수 없는

끝도 답도 없는 싸움 생각만해도 숨 막다.



우리는 10년 넘게 부은 청약통장을 해지했다.

그로 인해 다른 곳에 청약할 기회도 놓쳤다.

이 집을 포기하고 다른 집을 선택한다 해도

목전으로 다가왔던 것들이 기약없이 유예다.


무수한 기대와 좌절을 거듭 경험했던 지난

몇 년 간 우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좋은 소식에

작은 기대와 희망을 품어보았다.


지금껏 충분히 고통받고 힘들었으니 이제

앞으로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세상은 나에게 작은 희망조차 쉬이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올해 초 조심스레 가진 3가지 소원이 있었다.

남편의 취직, 아이의 임신, 새 집으로의 이사.


가장 쉽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마지막 소원이

어그러지자 나머지 소원을 기대해도 될

퍼뜩 불안한 마음이 찾아온다.


한 번도 결코 쉽게 가는 일이 없었던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꿈이 빛을 잃었다.

그래서 자꾸 어둠 속으로 빨려드나 보다.


그렇게 신혼에 '희망'이 될 뻔 했던 우리집은

또 한번 신혼에 '절망'을 주고 날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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