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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기억하는 어린이날

사고 4주년을 맞이하며

빗소리에 눈을 떴다.

깨질듯한 통증에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제도 3시간 밖에 자지 못했고

어제도 늦은 새벽까지 깨어있었다.


다시 잠들어보려 이불을 끌어안았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몸을 일으켰다.

한쪽 눈만 겨우 뜬 채로 더듬더듬 약을 찾았다.

벌써 며칠째 먹는 진통제인지 모르겠다.


어두컴컴한 거실 탁자에 앉아 노트북을 꺼냈다.

뭐라도 적어야 할 거 같아서, 그래야 살 거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두서없이 마음을 토해낸다.



무어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애써 밝게 웃으며 힘을 내자고 할지

솔직히 힘들고 아프고 서럽다고 할지.


누군가 보기에 거북스러우면 어쩌나 싶다가도

나를 위해 있는 대로의 감정을 받아야겠다 싶다.


돌이켜보니 항상 그랬다. 너무 힘든 날에,

죽을 거 같은 날에, 그래도 살고 싶은 날에,

항상 이렇게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썼다.

이렇게라도 해야 숨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항상 그렇게 글이 나를 살렸듯

오늘도 살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어린이날.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온 아이들이

쏟아지는 비를 보며 얼마나 속상해할까 싶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이날.

4년 전 오늘처럼 비가 내렸던 그날,

내 몸과 마음이 산산이 깨어졌던 그날을

내 몸이 기억하고 여전히 아파한다.


울고 싶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는다.

그다지 슬프거나 두렵지도 않다.

그냥 좀 무기력하고 우울할 뿐

그때처럼 힘들거나 절망적이진 않다.



4년 전에 비하면 많은 것이 나아졌다.

이제 혼자서 운전도 할 수 있고

비 오는 날에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몸도 마음도 많이 회복되고 살만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든 이유가 뭘까.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일까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일까.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상처를 붙들고

마음을 갉아먹는 짓은 그만하고 싶다.


사고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찾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노래하다가도,

가끔 이렇게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며

다 놓아버리고 싶은 삐딱한 맘이 든다.



그동안 열심히 편집해 오던 원고가

사고 난 장면에서 턱 하고 막혀 버렸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날의 기억을

여전히 떠올리기 쉽지 않았나 보다.


괜찮지 않은, 여전히 힘든 나에게

어서 괜찮아지라 이젠 괜찮지 않냐

다 괜찮아질 거다 따위의 억지 위로를

강요했던 건 아닌가 돌이켜본다.


늦었지만 나에게 사과하고 싶다.

그곳에 데려가 그 일을 겪게 한 것도

아픈 상처를 충분히 안아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고맙다는 말도 이제서나마 해야겠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 줘서

언제나 그렇듯 살기 위해 힘써줘서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은 어린이날.

비록 내 몸엔 그날의 흔적들이 선명하지만

부디 내 맘은 그날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다시 잃어버린 어린이날을 되찾길 바란다.


이제 그만 다시 침대에 누어

따뜻한 이불 속에서 한숨 더 자겠다.

자고일어나면 조금 나아져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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