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를 혹독하게 앓았다. 그간 몸과 마음을 갈아내며 무리를 한 탓이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뒤로 매일 열병에 빠진 듯 들떠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온갖 도서관을 돌며 독립출판에 관한 책들을 긁어모아 연구원 마냥 공부했다. 준비를 끝내고 나니 ‘과연 이 책을 완성한들 일반 대중에게 팔릴까’ 싶었다.
단지 책 한 권을 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 책을 시작으로 내 일을 하고 싶었기에 출판과정을 공유하며 퍼스널 브랜딩을 동시에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려니 브랜딩이며 마케팅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또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당장 도서관을 찾아 관심분야에 관한 책을 싸그리 빌려와 읽어치웠다. 퍼스널 브랜딩과 글쓰기에 관한 이론서들은 물론 마케팅을 위한 블로그, 인스타, 노션의 활용법에 관한 실용서를 병행해서 읽어나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시작했던 것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퍼스널 브랜딩을 하면서 찾아본 인스타 마케팅에 관한 정보와 인플루언서들의 이야기 또한 나를 몰아세우는데 한몫을 했다. 다들 한 달 만에 수만 명의 팔로워를 얻었고, 월 1000만 원 정도는 껌 씹듯이 벌었으며, 수십억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전 국민에 100/1이 성공한줄 알았다.
이 책들 외에도 읽어치운 책들이 수두룩하다
갑자기 쏟아지는 정보의 양이 많아지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것도 해야 할 거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거 같고, 제한된 시간 속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사이 마음만 조급해졌다. 매일 잠을 줄이고 끼니를 걸러가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열흘이 채 되기도 전에 몸져누웠다.
마음은 애진즉에 산꼭대기에 올라 있는데, 몸은 고산병에 걸려 중턱에 멈춰 선 기분. ‘어서 가야 해, 어서 해야 해. 지금 아플 때가 아니야, 너는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하니.’ 안달 난 마음과는 달리 몸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헤롱거렸다. 정말 답답해 환장할 노릇이었다. 매일 기진맥진한 채로 잠에 절어 하루를 보내고 나면, 꿈속에서 멀찌감치 가있던 나는 항상 제자리였다.
세상사람이 다 나아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답답함에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했다. 12시가 넘은 시간 이역만리에 떨어져 있는 남편을 붙잡고 ‘할 게 산더미인데 오늘 아무것도 못했다’며 징징거렸다. 남편은 ‘또 초반에 달리다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용두유미’가 나타났다며 ‘대체 휴직 중인데 무엇이 그리 바빠서 쫓기듯 사냐고 의아해했다. 그리고 제발 한 마리의 토끼만 잡으라고 타일렀다.
토끼 한마리라고만 했지 어떤 토끼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열 손가락에 나란히 꽂힌 꼬깔콘마냥 와글와글 거리는 할 일들을 움켜쥐고 어떤 것부터 해야 하나 갈피를 못 잡는 나에게 한 마리의 토끼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책을 쓰는 게 능사는 아니야 그 책을 살 사람이 있어야지. 책 한 권 내면 그걸로 끝이야? 니 일을 찾아 새로 시작해야지. 마케팅도 좋지만 일단 책이 있어야 팔지!’라는 생각을 번갈아 하며 토끼 떼를 몰고 다녔다.
늦은 밤까지 고심하던 나는 일단 원고를 완성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원고 양식에 맞춰서 목차를 구성하니 자그마치 40 꼭지가 넘는 글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하루 2개씩만 편집한다 하더라도 꼬박 20일이 걸릴 텐데. 편집에, 디자인에, 펀딩준비까지… 책 한 권을 만들기 전에 해야 할 무수한 일들을 생각하니 ‘이게 과연 애초부터 2달 만에 가능한 일이었나’ 의구심이 들었다.
그즈음 읽은 책들에서는 자극적인 제목들로 나를 잡아끌었던 이전의 책들과는 달리 ‘콘텐츠의 질’과 ‘꾸준함의 힘’을 강조했다. 하루아침에 요량으로 이뤄지는 성공은 없다며 진정으로 자신 가진 빛과 색을 찾아 꾸준하게 쌓아나갈 때에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순간 얼마나 무식해서 그토록 용감했던가 하는 생각과 함께 제발 한 마리만 잡으라는 남편의 외침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정신을 쏙 빼놓는 수십 마리의 토끼 떼가 아니라 건실한 한 마리의 토끼’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날 저녁 남편에게 깨달음을 줘서 고맙다며 욕심부리지 말고 앞으로는 한 마리에 집중하겠노라 약속했다.
지난 2주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원래의 지점으로 돌아와 출발선 앞에 서있다. 여전히 쉽게 내려놓아지지 않는 욕심에 다른 토끼를 따라가고파 엉덩이가 들썩거리지만 애써 마음을 붙잡으며 내가 잡아야 할 토끼만 바라보려 용을 쓰는 중이다.
그러나 기왕지사 잡을 거라면 제대로 된 토끼를 확실하게 잡고 싶다. 기왕지사 책을 만들 거 제대로 된 글을 기깔나게 써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어느 누구라도 한 번쯤 궁금해서 손이 가고, 제대로 읽기 위해 사고 싶은 책을 만들려면 앞으로는 글쓰기에만 집중적으로 매진해야 한다.
물론 원고작업 외에도 꾸준하게 글을 쓰면서 나의 빛과 색을 찾으려는 시도는 놓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한방에 모든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겠지만 한 마리 한 마리 차근히 잡아 모으다 보면 분명 언젠가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토끼로 가득 찬 나만의 토끼농장이 완성되지 않을까 싶다.
조급해 말고, 불안해 말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나씩 해나가보자. 건토(건장토끼)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