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유년시절의 별명에 관한

2가지 진실과 1가지 거짓

초등생 덕규

반에서 마니또를 했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녀석이 마니또로 걸렸다. 그러나 예의상 규칙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내키지 않았지만 애써 잘해줬다. 대망의 마니또 발표날. 작은 과자 선물과 함께 카드 한통을 적어서 건넸다. 쑥스러웠던 건지 그 녀석 또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내가 보는 앞에서 과자를 까먹고는 봉지를 구겨서 내게 "이게 내 선물이다"라며 돌려줬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빨개졌고 지켜보던 주위 남자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를 했다.


자리로 돌아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실 뒤편 쓰레기통에서 작은 요구르트병 하나를 주워 들었다. 수돗가로 가서 요구르트병에 물을 채웠다. 교실로 돌아와 그 녀석 앞에 다시 섰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정수리에 요구르트병을 기울였다. 깜짝 놀라 토끼눈을 하고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얼굴에 병을 던졌다. "이건 내 답장이다" 주변을 둘러싼 아이들은 땅을 구르며 웃었고 그날부로 내 별명은 조폭마누라가 되었다.


중등생 덕규

그 시절의 학교에선 매일 200ml짜리 우유가 배급되었다. 자주 이른 아침 시간에 등교했던 나는 자진해서 우유 당번이 되었다. 우유상자를 들고 교실로 들어설 때 아이들이 보내어주는 환호가 좋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달려들어 우유를 받아갔지만, 부모님의 성화에 우유를 시킨 아이들은 받아가지 않거나 버리곤 했다. 하교 전 우유상자를 갖다 놓으러 갈 때마다 상자 가득 남아있는 우유들이 아까웠다. '집에 가져가서 동생 줘야지' 아쉬운 마음에 몇 번 남은 우유를 집에 싸갔다.


한 달 즈음 지났을 무렵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혹시 반 친구들의 우유를 가져간 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내 가방에 담긴 여러 개의 우유를 본 아이들이 지레짐작으로 선생님께 일러바친 듯했다. '아이들이 남긴 우유를 싸간 적은 있어도 아이들의 우유를 빼앗거나 훔친 적은 없습니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답했지만 둘러둘러 나를 타이르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교무실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서 내 별명은 우유 먹는 하마가 되어있었다.

  

고등생 덕규

내가 살던 지역은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라 중학교 성적에 맞춰 고등학교에 배정되었다. 내가 고교에 진학하던 해에 처음으로 내신등급제가 시작되었는데, 중학교에서 상위권에 속하던 나는 1등급짜리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던 나에게 나름 파격적인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3등급짜리 학교로 하향지원을 하면 3년 치의 학비는 물론 학업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다 지원해 주겠다는 것. 조건은 좋은 내신성적으로 서울 4년제 대학에 진학하여 학교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었다. 


생각지 못한 뜻밖의 제안에 나는 공양미 300석에 팔려가는 심청이처럼 그 학교에 제물로 바쳐졌다. 그리고 1학년 1학기 내내 매주, 매달, 매 시험마다 윗선에 실적을 보고하며 철저하게 관리받았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던 나는 그들의 압박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을 들었다. 우리 학교에 비밀리에 입학한 학생이 있다고. 엄청난 비밀인양 쑥덕대는 아이들 틈에서 소문의 주인공이 나인 것을 알아챘지만 차마 그게 나라고 말할 수 없었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뒤 비밀요원의 정체를 알아차린 아이들은 배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나를 '전교 꼴등의 탈을 쓴 일등'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