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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만에 책 한 권을 썼다.

생초보 작가의 브런치북 출판기

브런치 개설해서 글 올리기

결혼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올해 초. 새해를 맞아 2019년의 목표를 적어보았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기록하고 싶었던 나는 처음으로 혼자 보는 글이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질 글을 써보기로 다짐하며 '브런치 개설하기'를 목표로 정했다.


그러나 비장한 각오로 세운 새해 목표들이 대게 며칠을 못가 흐지부지 되듯, 스케줄러 가득한 일정들 틈새로 욱여넣었던 '브런치 작가 신청'은 분주한 일상에 치여 뒷전으로 밀려났다. 매달 플래너에 '작가 신청'을 적고, 미루고, 또다시 적으면서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른다.

야심차게 적어넣었지만 매번 뒤로 밀렸던 브런치 작가신청

3개월 동안 글쓰기는 고사하고 결혼 준비만으로도 버거워 늘 허덕였다. 그러다 대망의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시작하고, 갑자기 사고를 당하고, 생각지 못한 해외 장기 체류생활까지 하게 되면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들 속에 우왕좌왕하던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 지 몇 달이 지난 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마주한 나는 참 낯설어져 있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이전의 파이팅과 자신감은 사라지고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있거나 이불 안에서 꼼짝도 않은 채 시간을 려보냈다. 무력감에 젖은 날들을 살아가던 어느 날.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과 기억들로 금세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던 내 마음속에 잊고 있었던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글 쓰고 싶.


이대로 우울에 갉아먹히지 않으려면 어디에 뭐라도 쏟아내야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려는 이유도, 쓰고 싶은 글의 내용도 이전과는 전혀 달랐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책상 앞으로 노트북을 켰다.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막상 몇 시간이 지나도록 단 자의 글도 적지 못했다. 머릿속 생각들은 마치 사고 후 내 삶처럼 뒤죽박죽인 상태였고,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글을 써 내려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빈 화면 속 깜빡이는 커서만 들여다보는 사이 시간은 흘러 하루, 일주,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려 들어간 브런치에서는 때마침 <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글을 쓰려는 나를 응원하기 위해 준비된 걸까?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분 좋은 두근거림도 잠시, 두근거림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게 될 거 같아?'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내 마음을 비웃는 듯 머릿속 어디에선가 '네가 뭘 하겠냐'며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풀이 죽은 채 브런치 화면을 끄려 찰나, '당장 책을 쓰지는 못하더라도 작가 신청 정도는 해볼 수는 있지 않냐'는 오기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 작가 신청을 해서 승인이 나면 글을 쓰고, 작가 승인이 거절되면 깔끔하게 접는 거야.


스스로에게 조건을 걸어 오기를 부려보기로 한 나는 오랫동안 작가의 서랍 속에 간직해두었던 결혼에 관한 글 한편을 다듬다. 리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작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이 결과가 나에게 글 쓸 기회를 열어줄 열쇠가 되어줄지, 글에 대한 내 마음을 잠가버릴 자물쇠가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해 버리기엔 못내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그날 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생긴 나는 밍숭맹숭한 맘에 잠을 설쳤다.



며칠간 브런치 알람이 울릴 때마다 혹여나 결과 발표일까 마음 졸이다 이내 실망하기를 반복하던 어느 오후, 다 브런치 알람이 울렸다. '또 누가 글을 올렸거니' 하고 무심 들여다본 화면에는 그토록 기다리던 브런치팀으로부터의 연락이 와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단번에 승인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작가 승인 소식에 '헉' 소리와 함께 입을 틀어막았다.


이게 뭐라고.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나에게 책을 쓰게 해 준다는 것도 아니고, 진짜 작가가 된 것도 아니고, 고작 이곳 브런치에서 글 쓸 권한이 주어졌을 뿐인데.. 튀어나올 듯 커진 두 눈에는 눈물 한 방울이 그렁하고 맺혔다.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혼자 주책맞을 눈물을 닦아낸 나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넘실대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내리면서 넌즈시 신랑에게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늘 글을 쓰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나의 느닷없는 작가 등단(?) 소식에 신랑은 '뭔진 몰라도 일단 축하한다'며 함께 엉덩이 춤을 춰주었다.

이곳에 글을 쓰는 이라면 누구나 받고 기뻐했을 승인 연락

다음날 오후 또다시 브런치 알람이 울렸다. '작가가 되고 나서 해야 할 게 있었던가?' 의아한 마음에 열어본 알람에는 작가 승인을 위해 적었던 샘플 글이 조회수 1000을 기록했다고 적혀있었다.


1도 아니고 10도 아니고 100도 아니고 1000? ⊙_⊙???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처음으로 쓴 글이자 나의 브런치에 존재하는 유일한 글을 전혀 모르는 다수의 타인이 보았다니. 분명 잘못한 것은 없는데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른 듯 가슴이 쿵쾅거리고 폐가 쫄깃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떠한 연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브런치에서 나를 선택해 준 것인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한 뜻밖의 우연인지) 어디에선가 나타난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 같았다.


실시간으로 치솟아 오르는 조회수를 확인할 때마다 똥꾸멍이 쪼여오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근거 없는 자신감이 덩달아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묘한 희열을 가져다주던 조회수는 4000가까이에 이르렀고, 밤 12시가 지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나의 흥분은 다음날 뚝 떨어진 그래프를 따라 가까스로 진정되었지만 나의 마음은 짜릿했던 그날의 감정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마치 4000명의 사람들이 나의 궁둥이를 토닥여준 듯한 기분이랄까? 글을 쓰기 전 '네가 뭘 하겠냐'며 비웃던 마음속 못된 놈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준 기분이었다.


나중에 다른 작가들의 글을 찾아보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가끔 다음이나 카카오 채널 메인에 우연히 올라가게 되면 천 단위가 아니라 만 단위, 심할 경우 십만 단위까지의 조회수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내 글을 10만 명이 읽었다면 나는 그날 브런치를 탈퇴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고작 한번 우연히 얻어걸린 기회에 내 글을 4000명이 읽어줬다 그렇게 오두방정을 떨며 콩콩 뛰어대다니.. 아무것도 모르고 잔뜩 흥분해있던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아무렴 어때, 나는 작가가 되었는 걸!' 나는 온종일 우주대스타가 된 듯한 뿌듯함으로 그날 하루를 보냈다.



그날부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날은 브런치북 응모 마감을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생각에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주구장창 글을 적었다. 마치 인쇄소 기계가 된 듯 글을 찍어냈다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아침마다 아무리 깨워대도 일어나지 않던 내가 4시 반이면 혼자서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온 세상이 잠든 깊은 새벽마다 나는 시계를 돌려 내가 살던 세상으로 돌아갔다.


온전치 않은 몸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통증과 싸우느라 30분을 채 못가 바닥에 드러눕곤 했지만 나는 다시 몸을 일으키고, 책상에 앉아 글을 적어나갔다. 6시간에 한편씩 글이 완성되어 갈 때마다 가득 차 있던 가슴은 비워져 갔고, 비어있던 나의 브런치에는 글들이 하나둘씩 차곡히 쌓여갔다.


신랑은 가끔 방문을 열고 밤을 새워가며 자판을 두들겨대는 내 모습을 의아한 눈빛 +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보곤 했다. 아내가 하루아침에 이토록 돌변한 것이 무슨 영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가끔 뭔가에 단단히 꽂혔을 때 나타나는 미친 여자가 찾아온 모양이구나' 하고 이내 문을 닫았다.

  

하루 19시간씩. 먹고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미친 사람처럼 글을 써댄지 일주일. 17일 자정 제출 마감을 2분 앞두고 한 권의 책이 완성됐다. 만신이 욱씬댔고 눈밑이 시꺼멓게 내려앉았지만 눈에는 생기가 흐르고 마음속 모든 찌꺼기를 비워낸 듯 시원한 기분마저 들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브런치북 프로젝트 응모하기 버튼을 누르자마자 응모 창이 마감되었다. 모든 긴장의 끈이 풀리는 기분. 그날 밤 나는 온몸에 추를 달고 바닷속으로 끌려가는 듯 아주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나는 브런치북 응모 프로젝트에 문을 닫고 들어갔다.

지난 일주일이 마치 꿈을 꾼 듯 아득하다. 무엇이 그토록 나를 기, 설레고, 물짓고, 몰입하고, 미치만들었던 걸?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늘 무언가를 해내고 그것으로 나의 가치를 증명해왔던 나에게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지난 6개월 간의 시간은 스스로를 무가치한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래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내 마음을 무너뜨리다 못해 불구로 주저앉혀버렸다.


사고 이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끌려다니면서 나는 철저하게 자신감을 잃고 깊은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당장 내 몸조차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성취는커녕 끊임없이 좌절만 반복해오던 내게, 무언가가 내 노력에 의해 나의 바람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랍고 기뻤다.


거기에 조회수 폭발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의 응원까지 덤으로 얻고 나니 누군가로부터 받는 인정에 목말라있던 내 삶에 맑고 시원한 샘이 솟아난 기분이었다. 그날 브런치에서 해준 작가 승인은 나에게 글을 쓸 기회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신혼여행에 대한 글을 적으면서 참 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마주했다. 네팔 이야기를 하는 동안 희미하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올라와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행복했고, 터키 이야기를 하면서는 아직 그때의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버거워 몇 번을 멈칫거리고 눈물짓기도 했다.


미처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아쉽다. 언제쯤 그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과 내 마음에 다가갈 용기가 생겼다. 그 기억과 감정들을 온전히 마주 할 수 있게 될 그까지 차근히 나의 이야기를 잘 끄집어내 봐야겠다.


덕규언니가 일주일만에 찍어 낸 책

https://brunch.co.kr/brunchbook/duckyoustory



12월 30일이 기다려진다.

그날의 결과와 상관없이 나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누가 칭찬해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궁둥이 토닥여가며 그날까지 꾸준히 글을 적어갔으면 좋겠다.


과연 이 글을 읽어줄지 모르겠지만 나의 작가신청을 승인해준 브런치팀의 이름모를 직원분과 우연히 뜬 내 글을 읽어 준 4000명의 독자여러분께 온 마음을 다해 감사를 전한다.


고맙습니다.

여러분여러 사람 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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