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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여진 글은 없다

한 달 만에 쓰는 글

거진 한 달 만에 글을 쓴다. 11월 초에 브런치를 시작하고서 하루에도 몇 편씩 글을 발행하며 나름 파이팅이 넘쳤었는데... 매일 밤을 불사지르던 창작욕구는 어디로 가고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의도치 않게 잠수를 탔다.  


'대체 뭐 하느라 한 달이 지나갔지?'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우뚱대며 스케줄러를 펼쳐보니 수첩 가득 하루도 빠짐없이 뭔가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전직 환자, 현직 백수 주제에 뭔 놈에 일정이 이리도 많았는지... 연말이랍시고 괜히 붕 뜬 마음에 이곳저곳 쏘다닌 탓인가 보다. 아마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소싯적 '하고잡이+에너자이저'의 모습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일들을 해치우며 '덕규 is back'을 외쳤더니, 이전과 달리 병약해진 몸뚱아리가 죽는다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반은 일을 쳐내고 나머지 반은 앓아누워 보냈다.



바쁜 일상을 살아내는 동안 가슴 한켠에서 '해야 할 일들'이 서로 나를 봐달라며 아우성을 쳐대는 통에 영 마음이 불편했다. '영상편집도 해야 하고, 논문 정리도 해야 하고, 보험금도 청구해야 하는데..' 그러나 해야 할 수많은 일들 중 가장 근성 있게 밤낮으로 나를 불편하게 한 놈은 그 어느 것도 아닌 '브런치에 글쓰기'라는 놈이었다.


비록 브런치라는 작디작은 세계 안에서였지만 작가라는 이름과 나의 글 공간을 갖게 된 이후로 작가스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나도 모르게 '글 써야 되는데..'라는 혼잣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고, 밥을 먹거나 누군가를 만날 때도 (심할 때는 꿈속에서조차)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렸다.


이따금씩 글감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행여나 놓칠세라 기록하고, 시도 때도 없이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조급증을 느끼는 나를 보면서 '이놈 이거, 작가 다됐네'싶은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과유불급이기 마련인데 적당히를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어서 뭐라도 써야한다'고 들들 볶아대는 나로 인해 적잖이 괴로웠다.


할 수만 있다면 어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끌고 가서 '어서 글 쓰라는 소리 한 번만 더 해보라'고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저 글 뽕에 빠진 병아리 작가의 서툰 날갯짓이라 생각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참는 수밖에. 그렇게 괴롭힘에 시달리는 사이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글이라는 것이 똥줄이 타는 만큼 써지는 거였다면 지난 1달간 족히 100편의 글은 완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멋진 글을 척척 써내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글은 쉽사리 써지지 않았다. 쓰고 싶은 이야기들은 머릿속에 가득한데 대체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 건지... 윤동주는 시가 쉽게 씌어 저서 부끄럽다던데 나는 글이 쉽게 씌여지지 않아서 부끄러웠다.


몇 시간씩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내도 보았지만 그 어떤 글도 속시원히 적히지 않았다. 그렇게 작가의 서랍에는 성에 차지 않는 미완의 글들이 하나둘씩 쌓여갔고, 발행되지 못한 글들이 쌓여갈수록 마음속 답답함도 커져갔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글을 쓸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는데,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이 글이라는 놈 때문에 되려 마음이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그간 작가의 서랍에 쌓아둔 글들을 읽어보니 하나같이 어설프고 낯설었다. 이전에는 서툴렀지만 나름 진솔함이 담긴 나의 글을 썼었던 것 같은데 어쩐 일인지 씌여진 글들에서 그럴싸한 글을 흉내 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건 누구를 위해, 누가 쓴 글이란 말인가' 못마땅한 얼굴로 내가 쓴 글이지만 내 글 같지 않은 글들을 한참 들여다보다 작가의 서랍에서 싸그리 비워내 버렸다.


학창 시절 백일장이라는 명목으로 강요받았던 창작의 고통 이후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은 처음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자발적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거? 마음대로 써지지 않는 글에 몸부림을 치면서 몇 번이고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이 짓을, 대체 왜 하고 있는 건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냥 포기하고 집어치워버리면 속편 할 텐데.. 머리를 쥐어뜯어가면서도 계속해서 글을 붙잡고 있는 이유가 뭔지 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하루에도 몇 편씩 척척 올라오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면 그들은 글 쓰는 것이 어렵지 않은가 보다. 어쩌면 이렇게 술술 잘 읽히는 글을 담백하게 적어낼 수 있는 건지, 다들 천부적인 작가의 DNA를 타고나서 애쓰지 않아도 글이 술술 적히는 건지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나도 글 쓰는 거 좋아했는데, 예전에는 글 쓰는 게 참 재미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글 쓰는 게 어려워져 버린 건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나온다.


글 쓰는 기쁨을 잃어버리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문득 얼마 전 읽었던 하루키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그의 말처럼 나는 글쓰기를 하며 느꼈던 기쁨을 잃어버린 상태였고, 그 기쁨을 되찾기 위해서는 즐거움을 방해하는 것이 무언인지 찾아서 없애야 했다. '글쓰기가 힘들어진 게 언제부터였지?' 돌이켜보니 글쓰기가 버겁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글을 쓸 때 온전히 나에게로 향하던 에너지가 바깥으로 향한 이후부터였다.


브런치를 시작할 당시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저 글을 쓰고 싶었고, 글을 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쓸모없이 느껴지는 나 자신과 생기를 잃어가는 나의 삶을 살려내기 위해 글을 썼고, 그렇게 조금씩 글을 쓰며 생기를 되찾고 살아날 수 있었다. 그때는 글을 쓴다는 것 만으로 행복했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차츰 많은 이들에게 글이 읽히고 나의 글에 대한 피드백이 생겨나면서부터 조금씩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워졌다. 매일 혼자서만 끄적이던 글을 누군가가 보는 앞에 내어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고, 보여주기 위한 글은 잘 씌어야 한다는 생각에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느끼던 기쁨이 조금씩 부담의 무게를 덧입어가며 두려움으로 바뀌어갔던 것 같다.


이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바뀌었다. 아무도 내게 글쓰기를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글을 (그것도 잘) 써내기를 강요하면서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글은 쉽게 씌여지지 않았고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질수록 나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글로부터 멀어져 갔다. 잘할 수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완벽주의적인 생각이 찾아와 '내게는 글을 쓸 자격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좋은 글에 대한 욕심과 책임감은 글을 쓰는 사람이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이었지만 나의 경우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지나친 압박감이 오히려 글을 쓸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나는 글은 잘 써서 글을 썼던 것이 아니라 글 쓰는 게 행복해서 글을 써왔던 것인데.. 나를 살리기 위해 시작했던 글쓰기가 되려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말라죽이고 있었다. 꽤나 큰 기쁨을 주던 재미난 일상을 잃어버리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글 쓰는 기쁨을 잃어버린 나는 괴로워졌다.


다시 기쁘게 글을 쓰기 위하여

글 쓰는 기쁨을 되찾고 싶었던 나는 어떻게 해야 처음에 느꼈던 그 순수한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나를 살리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에서조차 나는 나를 돌보지 못하고, 내가 글을 잘 쓰는지 못 쓰는지 평가에만 매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이곳에서 만큼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잘 적힌 글이 아닌 조금 부족하더라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게 해줬어야 하는 거였다.


나는 처음 글을 쓰던 그때로 돌아가 '무엇에 관한 글을 쓰고 싶은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쓰면서 내가 치유될 뿐만 아니라 그 글을 보는 누군가에게도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적고 싶었다. 나는 대단한 것에 관해 잘 쓰여진 멋진 글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수첩을 꺼내 들고 머릿속에 뒤엉켜있는 것들을 풀어내어 내가 쓰고 싶은 글의 목록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게 지나온 나의 생에 관해 큼지막한 사건들이 하나둘씩 떠올랐고, 뒤이어 내게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 주었던 여행지에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완성된 목록을 보고 있자니 '이 이야기를 나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과 함께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아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아직 이 글이라는 것이 너무 어렵다. 많은 것들에 관해 쓰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고, 힘을 빼고서 욕심을 내려놓고 싶지만 자꾸만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 힘이 든다. 과연 큰 어려움 없이 글이 쓰이는 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쓰다 보면 나도 언젠가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다른 여느 작가들에게도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고 싶다. 애초에 글이라는 건 쉽게 쓰일 수가 없는 것이라서 모든 글들이 지금의 내 글처럼 어렵게 쓰여진다고, 다른 글들도 다 머리를 쥐어뜯는 인고의 과정 끝에 어렵사리 쓰여졌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면 스스로가 모지랭이, 돌대가리, 똥멍청이라 느껴지는 이 속상한 마음이 조금은 다독여질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나의 글이 여전히 쉽게 씌여지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다.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듯 글쓰기 또한 하루아침에 뚝딱 잘하게 되는 마법과는 거리가 먼, 오랜 시간 갈고닦아야 쪼금 나아진 게 보일까 말까 한 야박한 놈이니까. 그렇지만 앞으로는 글이 쉬이 쓰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지레 겁먹고 멀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대신 내가 스스로가 만들어낸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며 잘하네 못하네 나를 쥐 잡듯이 잡기보단,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나의 글을 응원해주고 그저 진득하게 지켜봐 주는 너그러운 독자가 되어줘볼까 생각중이다. 그러면 힘을 얻은 내가 잔뜩 주눅든 쭈그리에서 벗어나 당당한 모습으로 좋은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니.


이 글을 몇 날 며칠째 붙들고 있으면서도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을 읽고 고치고 다시 쓴건지... 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을 더 붙들고 씨름해본들 어마어마하게 더 나은 글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 그만 힘 빼고 발행해버려야지. 더 쓰다간 진짜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글 한편을 마무리 지을 때마다 생각한다. 당분간은 심신의 안녕을 위해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그리고 또 생각한다. 다음에는 더 좋은 글을 쓰고 말겠다고. 그치만 아무래도 당분간은 쉬어줘야겠다. 그러면 글을 쓰고싶어질지 누가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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