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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2019년은 끝까지 똥을 주고 갔다

Feat. 애증의 2019년을 보내며

2019년이 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 가버렸다는 게 더 정확겠다. 달력을 보니 2020년이 되고도 며칠이나 흘렀는데 애석하게도 지난 며칠 간의 기억이 없다. 나의 연말과 새해 첫날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건 다 망할 2019년이 떠나기 전에 던지고 간 똥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2019년의 마지막 날은 신랑과 함께 조용한 카페에서 보낼 예정이었다. 올해는 우리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해이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해였기에,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함께 뜻깊게 마무리를 하고 다가올 새해에 대한 기대와 여러 가지 다짐들을 나누기로 했었다. 그러나 2019년은 그런 우리의 소박한 바람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30일 밤부터 목이 따끔거려 연신 기침을 해댔다. 날이 밝자마자 약이나 받아둘 심산으로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증상들을 듣고선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지나가는 감기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앉아있는데 의사가 다시 나를 불러 독감이라며 자체 격리를 시키라고 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의사와 나의 얼굴에 마스크가 씌워졌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살면서 독감이라고는 한 번도 걸려본 적이 없는데 생뚱맞게 웬 독감이람. 약 먹고 한숨 자고 나면 좀 괜찮아지겠거니 하며 침대에 누울 때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먹은 점심이 나의 마지막 끼니가 될 줄은.


병도 누울 자리 봐가며 온다더니 독감 판정을 받자마자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온몸이 덜덜 떨리면서 오한이 들었고 몸은 불덩이처럼 끓어올랐다. 이불을 덮었다 벗겼다 하면서 체온을 조절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미련하게 버티던 나는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세상이 빙빙 돌 즈음에야 허겁지겁 응급실을 찾았다. 39.7도까지 올랐던 체온은 한 시간 남짓 수액을 맞고 나서야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앓아누워있으면서도 연신 속이 상했다. 한해의 마지막 날이고 이제 곧 있으면 새해인데 나는 꼼짝도 못 하고 침대에 묶여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지. 2019년은 1년 내내 제멋대로 나의 계획들을 망치고 아프게 한 걸로도 모자라 마지막까지 나를 못살게 구는구나 싶었다. 


좋게 좋게 잘 마무리하고 기분 좋게 앙금 없이 보내주려 했는데 그런 나의 마음을 비웃듯 '옛다 이거나 먹어라'며 독감이라는 똥을 던지고 도망가버리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던 그날, 나는 이불속에 누워 떠나는 2019년의 뒤통수에 대고 '망해라 꺼져라' 실컷 욕을 해댔다.


그 후로도 꼬박 4일을 밤낮으로 뒤척이며 괴로워했다. 기침을 할 때마다 가슴을 쇠톱으로 긁어대는 듯한 통증에 시달렸고, 숨을 쉬거나 침을 삼킬 때마다 유리가루를 들이붓는 듯 따가워 가슴을 움켜쥐고 굴렀다. 시도 때도 없이 목과 코에서 올라오는 피 섞인 가래를 뱉어내느라 목과 코는 퉁퉁 부어올랐고 눈코입 할 것 없이 머리통 전체가 욱신욱신 쑤셨다.


관절 마디마디 근육 줄기줄기마다 잘근잘근 즈려 밟힌 듯 욱신대는 통에 입에서 '아이고아이고'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살면서 이렇게 호되게 아파본 적이 있었나? 사고 후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첫 이틀은 누가 와서 기절시켜줬음 싶을 만큼 만신이 아팠었는데 돌이켜보니 지난 며칠 간의 상태가 딱 그랬다. 그렇게 장장 4일을 화장실을 가거나 잠깐씩 앉아 약을 먹는 시간 빼고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 괴롭고 지루한 시간은 더디게 더디게 흘러갔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2019년은 오간데없고 갑자기 2020년이 되어있었다. 힘차게 새해를 맞이하려던 계획과는 달리 내가 몸져누워있는 사이 새해가 슬쩍 찾아와 자리잡아버린 것이다. '새해 일출은커녕 보신각 종소리도 제대로 못 들었는데, 사람들한테 새해 복 많이 받으라 덕담도 못주고 받았는데...' 놓쳐버린 많은 것들에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후였다. 


설레는 연말연시 분위기는 사라지고 다들 새로운 삶을 찾아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뭔가 허무하고 억울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만 홀랑 빼고 새해라는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기분이라 해야 하나? 야속한 마음에 한참을 속상해했지만 계속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다간 새해를 놓칠 것 같아 부랴부랴 쫓아갔다. 


새해가 되고도 며칠이 더 지났던 그날. 나는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신랑과 둘이 떡국을 끓여먹으면서 뒤늦은 새해 다짐을 나눴다. 새해에는 무조건 건강하고 행복하게, 2019년 보란 듯이 무조건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고 말겠다고. 부디 완전 잘 지내는 내 모습을 2019년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으면 좋겠다. 


보고 있나 2019? 두고 봐. 난 잘 지내고 말 테니까.



올해 연말은 여느 때와 조금 달랐다. 연말 분위기를 내며 사람들을 만나 왁자지껄한 모임을 하느라 정신없이 지나 보내었던 여느 해들과는 달리 있는 모임들마저 취소하며 거의 집에 박혀 지냈다. 이렇게 조용한 연말은 연구실에서 혼자 논문을 쓰던 대학원 때 이후 처음이었다.


매년 연말이면 늘 한 해 동안 이뤄왔던 것들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칭찬해주며 뿌듯한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주었었는데, 올해는 유난히도 많은 것들이 성에 차지 않는 미완의 상태로 남아서인지 쉽사리 보내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것도 못했고 저것도 못했고... 온통 성에 차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누군가는 자기를 힘들게 한 올해가 얼른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2019년은 나에게도 참 아프고 힘들었던 해인데 나는 왜 이렇게 미련이 남고 아쉬운지 모르겠다. 생각 같아선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으면 좋겠건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2019년에 머물며 떠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2019년의 마지막 날로 D-day 카운트를 설정해놓고서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애달파하며 그렇게 한 달 넘게 마음의 준비를 해왔었는데. 그런 내가 미련해 보였던 건지 2019년은 자신에게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말라는 듯 만정을 떼어놓고 가버렸다.

 

그래 가라 가. 징글징글했던 2019 년아. 이제 더안 붙잡을 테니 멀리멀리 가버려라.


이제 부디 더는 돌이킬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2019년을 마음에서 떠나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2019년을 돌아보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쿨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네가 혹독하게 날 키운 덕에 내가 오늘 이렇게 튼튼하게 성장했다고. 이제 더는 너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부디 멀지 않은 날에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내가 해야 할 것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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