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직 마흔은 아닙니다만

나는 패션 고자다.


옷에 크게 관심도 없고, 옷을 많이 갖고 있지도 않으며, 그래서 결론적으로 옷을 잘 못 입는. 자타공인 패션 테러리스트다. 외출할 때는 그날 손에 집히는 것을 대충 걸치고 나가며, 나의 신체적 단점은 부각시키고 장점은 사라지게 만드는 마성의 코디법을 구사한다.


나는 메이크업 고자 이기도하다.


화장에 관심이 없기도 하고, 손으로 하는 것 자체를 잘 못하는 자타공인 똥손이다. 가끔. 아주 가끔 나름 풀메이크업을 한답시고 오랜 시간 공을 들보기도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은 대게 '오늘은 화장 좀 하지 그랬'인 경우가 많다. 물론 화장이라고 해봐야 곧 죽을 것 같은 칙칙함과 초췌함을 감추는 게 전부지만 그마저도 하는 날보다 안 하는 날이 더 많다.


사람들이 좀 꾸미고 다니라기에 '못해서 안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안 해서 못하는 거'라 되받아치며 노력하고 연구하면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럼에도 내게 '뷰티'라는 영역은 너무나도 머나먼 것이어서 애초에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할 만큼 관심이 가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평생을 '똥손을 가진 패션 테러리스트'로 살아왔다.

나는 이들을 보며 맘편히 웃을 수 없다



사고 이후 '환자'의 타이틀을 단 순간부터 나는 환자라는 이름 뒤에 숨어 나의 꾸미지 않음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아픈 나에게 왜 꾸미지 않는 거냐 잔소리를 하지 않았고 그 덕에 나는 '당당한 똥손 패션 테러리스트'로 거듭났다.


화장은커녕 로션 조차 바르지 않았고, 집 밖을 나갈 일이 없으니 잘 씻지도 않았다. 집에서는 마치 아무것도 안 입은 것 같은 편안함을 선사하는 옷들만 걸쳤고(a.k.a 목 늘어난 티+무릎 툭튀 바지) 밖에 나갈 때는 그나마 멀끔한 츄리닝을 고수했다. 가만히 있어도 온 만신이 아픈데, 꾸미고 자시고 할 여력따윈 없었다.


어느 누구도 내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가끔 내가 봐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심각한 상태가 될 즈음이면 스을쩍 신랑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신랑이 아무리 한숨을 쉬어도 나는 이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버릴 마음이 없었다.


그 생활에 익숙해지니 몸이 점점 변하는 게 느껴졌다. 피부는 거칠어지다 못해 모공이 늘어났고, 몸무게는 앞자리가 바뀌어 웃을 때마다 턱이 두텁하게 접혔다. 자연스런 노화의 탓도 있었겠지만 상한 몸을 보고 있으면 속이 상했다. 이렇게 아줌마가 되어가는 구나하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원래도 잘 찍지 않던 셀카는 아예 안 찍게 됐다. 부쩍 마음에 들지 않는 내 얼굴을 굳이 크게 남기고 싶지 않았다. 볼수록 속이 상해 거울도 자제하게 됐다. 이전에도 기껏해야 머리를 말릴 때 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씻지 않게 되면서부터 그마저도 볼 일이 없게 됐다. 


렇게 나를 마주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유튜브 채널을 함께 운영하는 친구들과 함께 야외 촬영을 하러 갔다.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각국의 맛집 셰프들을 모셔놓고 벌이는 푸드 페스티벌 현장. 여행과 동남아를 사랑해 마지않았기에 가뜩이나 오랜만의 바깥나들이를 신이 난 나는 들뜬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항상 실내 촬영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야외 촬영은 새로웠다. 친구는 익숙하게 영상을 찍고있는 친구를 따라다니다 배고픔에 눈이 멀어버린 나는 거리낌 없이 말하고, 행동하고, 먹었다. (덧붙이자면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걸치던 대로 걸쳤었고,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나름의 메이크업을 한 상태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맛나게 먹고 즐기며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 영상을 편집해 올렸다. 그리고 며칠 뒤 한-아세안 푸드 스트리트의 인기와 더불어 우리 팀에서 올린 영상의 조회수가 마구마구 올라갔다. 항상 소소하게 몇 백에 머물던 것이 천명을 넘어서더니, 만 명을 바라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생각지도 못한 폭발적인 반응에 기뻐하길 잠시. 짧은 유튜버 인생에 첫 악플이 달렸다.


딱 봐도 마흔은 넘어 보이는데..
이쁜 척, 귀여운 척 쪽팔리지도 않나? 극혐


육두문자나 쌍욕이 적혀있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가만히 길을 가는데 어깨를 툭치고 지나간 듯 얼떨떨하니 기분이 나빴다. 짧은 2줄의 글이 나의 마음을 툭하고 때린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안 예쁜 건 알고 있고, 귀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극혐이라고 할 정도인가?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함께 촬영한 친구들은 괜히 마음 상하거나 반응하지 말자며 쿨하게 넘겼다. 그러나 소심쟁이였던 나는 쉬이 쿨해지지 못했고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들을 털어내느라 몇 번이고 머리를 흔들어야 했다.


아 물~론 나 스스로도 화면에 나오는 나를 보고 살짝 놀라긴 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표정과 제스처가 당장 형님을 외치며 어깨 인사라도 할 것 같았으니까. 적나라한 내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고 영상을 꺼버리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쩌나, 저게 내 모습인 걸' 하고 애써 받아들인 참이었다.


그러나 다른 그 어떤 말들은 두루뭉술히 넘긴다손 치더라도 그 '마흔'이라는 말은 차마 쉬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마흔이라니. 마흔이 넘어 보인다니. 아직 마흔 아닌데. 마흔 되려면 멀었는데ㅠ_ㅠ 그냥 받아들이자니 억울했고 아니라고 거부하자니 딱히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수십번 곱씹어 생각하는 사이 마흔 이라는 두 글자가 마음에 가시처럼 콕하고 박혔다.


누가 나보고 마흔 넘어 보인데..

속상한 마음에 종일 그 말을 꽁하게 담아두었던 나는 신랑을 비롯 몇몇 친구들에게도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냐고 물었다. 잔뜩 풀이 죽은 채 울상인 나를 지켜보던 이들은 '그 정도는(?) 아니라며, 악플은 악플일 뿐이니 그냥 넘기라'고 위로했다.


그래 털자. 가볍게 넘겨버리자. 과연 내가 훌훌 털어 넘길 수 있을까 스스로 의문이 갔지만 사실 그렇게 넘기는 것 말고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 거실에 앉아 잘 먹지도 못하는 맥주를 홀짝 대며 땅콩과 함께 마흔이라는 단어를 꾸역꾸역 씹어 넘겼다.

속상할 땐 혼술이고, 맥주에는 땅콩이지

그러나 늦은 밤에 씹어 삼킨 땅콩이 덜 넘어간 모양인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흔이 떠올랐다. 이대로 마흔이 되어버릴 수는 없다는 마음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전문가의 손길을 빌려보는 거야!' 결심이 선 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부랴부랴 옷을 주워 입고 집 근처 미용실을 찾아갔다. 


내 얼굴을 본 원장님은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고 반색을 했다. 그러고 보니 1년 전 웨딩촬영을 하기 전 머리를 정리한 이후 첫 방문이었다. 원장님과 함께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던 나는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오랜만에 마주한 나

처음 보는 사람인 듯 낯설게 느껴지는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뭔가 뜨끔하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내 눈을 본 게 얼마 만이던가'라는 질문과 함께 내 얼굴을 보는 것도, 내 눈을 마주친 것도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 달간 그렇게 많은 이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그렇게 오래도록 그들의 눈을 들여다봤으면서 정작 내 얼굴과 눈은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봐주지 않았구나.. 찰나의 순간 동안 참 많은 생각과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대답없이 멍하니 거울을 보고 있는 나에게 원장님이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었다. '거울을 너무 오랜만에 본다'고 했더니 무슨 그런 슬픈 소리를 하냐며 스스로 자기 얼굴을 자주 봐주라고, 그렇게 자주 들여다 봐주고 이뻐해 줘야 자꾸 얼굴이 밝아진다고 했다. 그것도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원장님의 말에 내가 참 오랫동안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내 눈이 '너 때문에 마흔이 돼버린 거'라고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았다. 내가 나를 돌보아주지 않고, 사랑해주지 않아서 마흔처럼 팍삭 나이 들어 보이는 건가? 문득 나의 몸뚱이와 함께 해온 시간 동안 제대로 가꾸고 돌봐주지 못했던 수많은 날 들이 떠올랐다.


 나를 좀 사랑해달라는 무수한 외침에도 귀찮고 아프다는 이유로 외면해온 것이 몇 번 인지. 나는 '마흔'이라는 말에 속상해할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때문에 시간이 갈 수록 나의 모습은 이상해져가는 것인가

머리를 하는 내내 요상한 모습을 한 나를 아련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아무리 이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지만 주구장창 거울만 들여다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미용실 밖을 나서자마자 곧장 백화점으로 가서 근사한 옷들을 사입히면 될까? 당장 맛난 음식들을 입에 물리고 전신 마사지라도 받아야 하려나? 


이리저리 궁리해 봤지만 이거다! 하고 무릎을 탁 칠만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가는 잔뜩 뿔이 나있는 내가 몇 날 몇 일이고 저 눈으로 나를 노려볼 것 같은데, 거울 속 내가 뭘 원하는지 거울 밖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진짜 내가 바라는 게 뭐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소중하게 돌봄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무심에서 관심으로 바뀌었으면 했고, 원래부터 이렇게 생겨먹은 나를 뜯어고치려 애쓰지 않되 존중을 빙자한 방치 속에 놓아두지는 않았으면 싶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받아들여지고 싶었을 뿐 이렇게 대충 살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굳이 거창하게 애쓰지 않아도 언제든지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소소한 변화들이 필요하다 생각한 나는 내가 바라는 변화들을 하나씩 적어나갔다. 하나같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질, 어느 것 하나 대단할 것 없는 것들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노력과 다짐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1. 매일 풀메이크업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꼬박꼬박 씻어는 주기

2. 적어도 하루 1번은 거울 들여다보기 (씻을 때 건, 여드름을 짤 때 건, 무조건 1번 이상)

3. 씻고 나면 얼굴과 몸에 로션 발라주기 (대충 손바닥으로 쳐덕쳐덕 말고 천천히 정. 성. 스. 레)

4. 집에서는 편한 옷을 입더라도 나갈 때는 챙겨 입기 (적어도 스스로 초라하게 느끼지는 않도록)


내 얼굴을 들여다 봐주고, 내가 돌봄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정성스레 나를 대하는 것. 화려하거나 이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버리지 않는 선에서 나를 건강하고 밝게 가꾸는 것. 참 쉬워 보이지만 내게 결코 쉽지 않았던 그것들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자 내가 지켜나갈 수 있는 나름의 마지노선이었다.


문득 흡사한 고민에 빠졌던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나를 꾸미는 것이 나를 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아껴 보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던 나는 세련된 아가씨가 되어보겠노라 호기롭게 쇼핑을 나서기도 하고, 화장을 해보겠다며 용도도 모를 화장품들을 잔뜩 사모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손에는 어김없이 후드티가 들려있었고, 사다 모은 화장품들은 1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어느 구석에 처박혀있는지 기억나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마음속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며 새롭게 변신해보겠다고 작정해 본들 '환골탈태'와 같은 거창한 약속들이 쉽게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게 번번이 지켜지기 힘든 약속들을 하고 또 어기며 스스로에게 다짐과 실망을 반복하는 동안 나의 마음속에는 '그냥 생긴 대로 살자'는 자조적인 생각이 자리 잡았다. 지금껏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말로 대충 넘겨왔지만 그 말은 결코 나의 무심함에 대한 변명이 되어줄 수는 없었다. 


거울 밖의 나는 그동안의 무심함에 대해 사과하고, 앞으로는 바지런히 나를 돌보겠노라 약속하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내가 나를 달래기 위해 내 건 이 약소한 공략들이 얼마큼 성실히 이행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부디 이 약속들이 잘 지켜져서 나를 좀 더 어른스럽고 서른스럽게 가꾸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부디 내 얼굴에 드리운 마흔의 그림자가 걷혀서 나의 귀한 서른이 마흔으로 매도당하는 일이 더이상 없기를 바란다.




생각지도 못한 악플 덕에 참 오랜만에 나를 보았다. 비록 내게 그 댓글을 남기고 사라진 이는 내가 몇 살 인지도, 내가 이만큼 속상해했다는 것도 모르겠지만 그가 올린 그 댓글이 나를 돌볼 수 있게 만들어줬기에 그 악플러에게 쪼끔은, 아주 쪼끔은 고마운 마음이 든다.


원장님이 열과 성을 다해 매만져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내 모습은 한걸음 더 마흔에 가까워져 버렸다. 그러나 그녀가 가르쳐 준 거울 속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이 마음속에 박힌 '마흔의 가시'를 뽑아주었기에 원장님께도 조금, 아까보다는 조금 더 감사한다.


살쾡이 눈을 하고 나를 노려보느라 미처 머리 상태를 파악하지 못한 내가 살짝 원망스럽다. '그냥 생긴 대로 살걸 괜히 미용실은 가 가지고....'라는 푸념이 나오기 시작했으니 얼른 목욕탕에 가야겠다. 뜨거운 물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푸욱 담궈 뜨뜻하게 지지고 나면 꽁하니 굳어져있던 몸과 마음도 풀어지고, 내 꼬불꼬불한 펌도 풀어지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주일 만에 책 한 권을 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