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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영잉 Jul 27. 2023

그리하여 프라하성 엽서 장수가 되었다.

피스타치오 젤라또를 하나 더 사 먹기 위한 프로젝트


민박집 식구 현우 작가는 세계 여행을 다니며 그린 그림을 엽서에 담기도 했다.

엽서는 주로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판매되곤 했는데, 고객의 대부분은 현우 작가의 그림을 좋아하는 팬분들이었다.


한편, 엽서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프라하홀릭에 머무르는 손님들을 대상으로도 1유로에 판매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작가에 대한 스토리텔링과 그림에 대한 설명 없이 올려둔 엽서들은 민박집 손님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작가와 그림의 스토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 해,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장난스럽게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프라하 엽서 장수 프로젝트가 점점 구체화 됐다.

  

'그럼 민영이랑 홍비가 팔아볼래?'


우리는 각자 판매 전략을 세워 정말 길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직접 엽서를 팔아보기로 했다.

누가 누가 많이 벌어오나!

재미난 경합이자, 피스타치오 젤라또를 하나 더 사 먹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엽서 원작자와 우리 사이의 거래는 이러했다.

내가 얼마에 팔던, 판매된 엽서 한 장 당 1유로의 원가를 현우오빠에게 지불하고, 나머지는 내 몫이었다. 쉽게 말해 내가 10유로에 팔면 9유로는 내 몫이 되는 것이다.

재고 부담이 없는 장사이니, 자본금이 부족한 우리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랄까 ;)  


나는 각기 다른 그림이 그려진 8장의 엽서를 테이프로 이어 붙이며, 동시에 원작자가 알려주는 그림마다의 스토리를 암기했다.

고객들에게 모든 엽서들을 보여주고 쉽게 설명하기 위한 모음집이었다.

엽서 모음집 하나와 종류별 5장의 엽서를 가방에 넣어 민박집을 나섰다.


'나 다녀올게!!'


엽서 모음집

내가 생각한 판매 전략은 두 가지.

‘유력 고객 밀집 장소 공략’ ‘상품 가치에 고객 안목 투영하기’였다.


기념품 골목의 엽서대 앞은 그야말로 최적의 고객 밀집 장소였다.

프라하 풍경 사진이 인화된  0.4유로짜리 엽서를 한 다발 쥐고서도, 또 다른 엽서를 고르기 위해 엽서 무더기를 뒤적이고 계시는 분 옆에 나도 나란히 섰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흠, 다 비슷한 엽서들 뿐이네요."


마음에 드는 엽서가 딱히 없어서 고민 중이라는 이분에게 엽서 모음집을 꺼내어 펼쳐 보여드렸다.


"이 엽서들은 어때요?"


"와! 예뻐요. 직접 그린 그림인가요?"


"맞아요, 제 친구가 세계를 여행하며 그림 그리는 사람인데 그림에 스토리가 담겨 있어요. 혹시 제가 이 그림들에 담긴 이야기를 설명드려도 될까요?"


현우 엽서를 보고 얼굴이 밝아지신 것을 확인하고는 본격적인 스토리텔링에 들어갔다.

그분은 훌륭한 그림이라며 곧 가격을 물어보셨고, 여기서 나의 두 번째 전략, ‘상품 가치에 고객 안목 투영하기’를 실행했다.


"엽서 가격을 정하지 않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림의 의미를 설명해 드리는 것뿐이에요. 이 엽서의 가치는 당신이 결정해 주세요. 그렇게 팔도록 할게요!"


스스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도록 가격 결정권을 드렸다.


한 장에 3유로!

첫 시도에 첫 판매를 성공하니 자신감이 생겼다.


기념품 가게 주변에서 프라하성 주변으로 시장을 확대하니, 신혼여행을 온 유럽의 한 부부는 에티오피아 커피콩을 안고 있는 소녀 엽서를  8유로에 구매하기도 했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국인 청년은 알록달록한 천을 두르고 있는 낙타 그림이 그려진 엽서 한 장을 20유로에 사가기도 했다.


오후 3시부터 해 질 녘까지 다섯 장을 팔았다.

매출은 37유로.

첫 시도 치고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세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꽤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붙였으나, 모든 사람들이 내게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표정으로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었고, 열심히 스토리텔링했지만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 등, 고객을 향한 나만의 줄다리기에 실패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상품 및 고객의 특성에 따라 독특한 판매 전략을 수립하고 직접 행동으로 옮긴 것 자체가 내게 큰 의미였다.


프라하성에 모이는 사람들은 합리적인 가격의 상품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추억을 찾는 관광객이었기에, 엽서에 담긴 스토리에 공감해 주시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해 주셨다.


수상하게 다가와 말을 거는 내게 기꺼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경험이 단순히 피로한 행위가 아닌, 너무나 값진 경험이 될 수 있었다.


 판매를 위해 말을 붙였다가, 목적을 잃고 한참을 프라하성곽에 기대어 수다를 떨며 친구가 된 사람도 있었고, 엽서를 구매하고도 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내 이야기 궁금해해 주시는 분을 만나 한동안 서로의 여행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


오늘의 프라하성 엽서 장사는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6개, 그 이상으로 평생 잊지 못할 가치 있는 추억이 될 것이다.


(길거리 판매는 다소 불법적인 것이니 따라 하시면 안 됩니다..!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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