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뜨 블린을 마지막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러 가다
체크아웃을 하고 부엌 식탁 앞에 앉아 복숭아와 빵을 입에 물었다.
멋있게 외출복을 차려입은 투숙객 러시아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거셨다.
"이 꿀 좀 먹어볼래? 이거 진짜야!"
플라스틱 작은 숟가락을 건네어주시고는 옅은 노랑 빛 꿀이 담긴 병을 내 앞에 내미셨다.
낯이 익다.
어제저녁에 찬장에서 유리컵을 찾을 때 스쳐 지나며 본 꿀이 든 병이었다.
숟가락을 꿀병 안에 넣어 꿀을 퍼올렸다.
한국에서 흔히 보던 액체 꿀이 아닌 고체에 가까운 꿀이었다.
꿀을 빵에 발라 입에 넣으니, 달기도 달지만 약간의 쓴 맛과 함께 벌꿀집을 통째로 갈아 만든 것 마냥 작은 결정들이 혀 끝에 느껴졌다.
역시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쓴 것인가!
레이니우스와 함께 왔던 우후뜨 블린!
마지막 블라이보스톡에서의 점심이 되었다.
세 번의 방문 끝에 찾은 최고의 메뉴 조합은 꿀호두 블린과 아메리카노다.
선글라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마지막 블린을 천천히 음미했다.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날이었기에 모든 짐을 배낭에 넣어 어깨에 지고 밖으로 나왔다.
해양 공원을 지나, 바닷가 주변 나무 아래 벤치에 배낭을 내리고 누웠다.
벤치 한편에는 싸구려 빨간 침낭을, 다른 한편에는 배낭을 두고 각각 머리와 다리를 올렸다.
그렇게 오후 내내 책을 읽었다.
나뭇잎 사이로 강한 해가 쏟아질 때는 선글라스를 끼기도 하고 잠이 오면 잠시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파도 소리와 소풍 나온 어린아이의 재잘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평화롭고 아늑한 한낮이었다.
매번 따뜻하게 잠잘 곳이 마련되니 싸구려 침낭은 그저 배낭 여행객스러운 외관을 위한 소품이 되었다.
가끔 베개로 쓰는 용도 정도랄까.
그래도 오랜 여행이니 만큼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배낭 머리에 침낭을 고정시키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 위해!
오프라인 구글 지도 위에 유유히 떠다니는 파란색 점이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바로 앞에 위치했을 때야 알아챌 수 있었다.
'아, 저 흰색 건물이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구나.'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가는 길을 찾기 어렵다던 블로거의 글은 사실이 맞았다.
계단을 올라가니 여행짐을 한가득 든 사람들이 역사 안 대기실에 가득했다.
열차 출발 시간이 10분 정도 남은 상황.
대기실 전광판과 한국에서 미리 인쇄한 종이 티켓을 번갈아 보길 반복했다.
놀랍게도 러시아는 대부분 영어 서비스가 지원되지 않으며, 오롯이 키릴 문자로만 안내된다.
키릴 문자라고는 여행을 떠나기 전 노어노문을 전공한 교회 친구에게 키릴 문자 읽는 방법을 10분 만에 속성으로 배운 것 이외에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친구가 알려준 키릴 알파벳 읽는 방법을 머릿속에서 뒤적이며 내가 타야 할 기차가 있는 곳을 찾으려 노력했다. 물론 막무가내로 읊기만 할 뿐 그게 무슨 뜻인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동양인은 나뿐이었고 사방에는 크고 긴 아줌마 아저씨들이 말 걸 세 없이 바쁘게 지나다녔다.
역무원에게 꼬기작 한 내 예약지를 내미니 무표정하게 큰 문을 가리켰다.
나는 몇 번의 기웃거림 끝에 금방 제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스파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