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롭스크 나탈리 가족과의 첫 만남
하바롭스크역에서 내려 나탈리집까지는 버스를 타야 했다.
낡은 버스에 올라 승무원 아주머니에게 몇 코루나를 지불하니 길게 이어진 종이티켓 한 칸을 쭉 찢어 건네셨다.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70년대 오라이 언니의 모습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하나 남은 버스 좌석을 향해 휘청휘청 걸어가 앉았다.
오래된 내연 버스는 썩 고르지 않은 노면 위를 들썩거리며 달려 나갔다.
그때마다 의자 끄트머리에 살짝 걸터앉아 있었는 나는 공중으로 붕 떴다가 의자 끝으로 밀려나곤 했다.
묵직한 배낭을 벗어 무릎 위에 앉히는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택한 자세였지만, 자꾸만 의자에서 흘러내리는 엉덩이를 정비하다 지쳐 결국 배낭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저 멀리서부터 밝게 웃으며 유모차를 끌고 오는 저 여성은 분명 나탈리였다.
유모차에 앉아 생글생글 웃는 루슬란은 나탈리와 똑 닮아있었고 조그만 손을 만지며 첫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상점에 들렀다.
주인아주머니는 나탈리가 지목하는 식료품과 빵을 뒤쪽에 있는 서랍에서 하나씩 꺼내 매대에 올리셨다.
계산을 마치고 나탈리가 건네는 인사말을 따라 말하며 상점을 빠져나왔다.
" До свидания (다 스비다니야)"
집에 도착해 나탈리가 부엌에서 짐을 푸는 동안 가족들과 거실에서 인사를 나눴다.
첫째 어린이 엘리사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인사를 하더니 쪼르르 달려와 하트모양 젤리 하나를 건넸다.
영어로 대화를 할 순 없었지만 낯가림 없이 내 무릎에 앉아 오늘 학교에서 만든 화장솜꽃 편지지를 자랑하는 엘리사와 아주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나탈리의 집에는 흥미로운 물건이 많았다.
집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나탈리! 이런 건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거야?"
타자기처럼 생긴 이것은 계산기였으며,
빈티지 라디오는 장식용이 아닌 실사용 라디오였으며,
아주 오래전 쓰인 미니 러시아어 사전과
경성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접시까지.
오래된 것을 사랑하는 나탈리의 집에서의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