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정차역, 하바롭스크
열차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잠이 깼다.
내 옆 그리고 위 쪽 침대에 러시아 아저씨들이 아직 누워있었다.
이 생경한 풍경에 다시금 내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있음을 실감했다.
덩치 큰 아저씨들이 코를 한 번 안 곤다. 코가 높아서 그런가.
어젯밤 테이블에 올려놓은 책을 집어 들고 아저씨들의 새근새근 숨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독서에 빠져들었다.
하나 둘 잠에서 깬 러시아 아저씨들이 아침 인사를 건넸다.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해도 분명한 아침 인사였다.)
책을 접고 어제저녁과 같이, 덜컹거리는 열차의 좁은 복도를 외줄 타기 하듯 걸어 맨 앞 조종칸으로 향했다.
"Hot water please!"
어제 받은 유리컵을 승무원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찰랑 거리는 뜨거운 물을 다시 받아 들고 조심히 4인실 칸으로 돌아와 바이엘 아지씨와 함께 홍차를 우려 마셨다.
바리스 할아버지가 내게 좋아하는 그림을 소개해주셨다.
휴대폰 앨범에 있는 꽃 그림을 두 손가락으로 확대해 가며 꽃잎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여주셨다.
이 또한 정확한 그의 감상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그저 내게 무언갈 소개해주시고자 하는 천진난만한 마음에 웃음이 났다.
몇 분만 더 가면 하바롭스크역에 도착이다.
이 넓디넓은 러시아 땅 위에, 수많은 4인실 열차칸 중에,
숱한 우연을 지나 여기 4인실 작은 칸에 모인 우리를 먼 시선에서부터 자각해 본다.
바리스 할아버지, 바이엘, 안드레아 아저씨와 보낸 짧지만 반가운 시간은 앞으로의 러시아 횡단길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바롭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까운 도시이다.
그렇다고 서울과 강원도 정도는 아니지만.
서울-부산 거리의 두 배 정도 떨어져 있고 횡단열차로는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처음 이 여행을 계획할 때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로 유명 지역인 이르쿠츠크로 넘어갈 생각이었지만,
4일이 조금 안 되는 기차 이동 시간에 혀를 내두르며 중간 경유지로 이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중간이라기에는 이동 시간 밸런스는 다소 맞지 않으나)
하지만 단지 경유지라고만 일컫기에는 이곳에서의 추억이 참 따뜻했다.
하바롭스크에서의 카우치서핑 장소는 화목한 가정집이었다.
가족 구성원은 호스트인 두 아이의 엄마 나탈리, 귀여운 미소를 가진 러시아 군인 남편, 에너지 넘치는 첫 째 엘리사, 귀여운 막내 루슬란, 그리고 이들을 꼭 닮은 비글까지 총 4명 그리고 강아지 한마리였다.
이들과 지내는 동안, 러시아 가족과 이웃 간의 따뜻한 소통의 형태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고 예상치 못하게 깊고 진한 추억을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