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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영잉 Aug 24. 2021

잠시, 제주 곽지 살이

작가님의 제주 구옥에서 시작된 제주 객 생활 이야기


'제주에 살아야겠다. 정확하게는 애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홈오피스 교육 기간이 정해지자마자 제주로 가는 표를 예매했다. 대학생 때 교양 수업에서 만난, 나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어느 선배가 올린 애월 바다 사진 한 장이 나를 몹시 애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인적 드문 바다에서 파도 소리를 듣는 상상을 하고는 마음속 깊이 끓어오르는 설렘을 느꼈다.


문득 신j작가님이 애월 근처에 자리를 잡으셨다는 소식이 떠올라, 오랜만에 메신저를 보냈다.


'작가님~~ 다음 달부터 애월 살이 예정입니다. 만나요~~~!'

'애월에 집 구해서 오는 거야? 우리 집도 놀러 와:)'

'어제 항공권 예약했고, 이제 구하려고요! 꼭 놀러 갈게요. 요즘 요가는 안 하세요?'

'매일 하지! 우리 집은 곽지리야, 우리 집에서도 며칠 머물며 돈 아껴! 요가 매트도 가져오고.'


그 후 전화 한 통으로 '며칠'은 '내내'가 되어, 나는 제주에 있는 내내 작가님의 제주 구옥에서 생활하게 됐다.




 **작가님과의 인연**

러시아부터 시작해 포르투갈을 항해 긴 배낭여행을 하던 중 몸이 아파, 쉬어가고자 프라하 한인 민박 스텝으로 일했던 적이 있다. 신j작가님은 아프고 외로웠던 시간에, 내가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해 준 식구이다. 식구들은 함께, 때로는 각자, 각자인 듯 또 함께 생활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손님들과 함께 섞여 식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장을 보고,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밤마다 요가를 하고, 프라하성 아래에서 버스킹을 하고, 특별히 작가님과는 우박이 쏟아지던 날 교회를 함께 가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다른 식구들과는 종종 만났지만, 자유로운 영혼이신 작가님과의 만남은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그렇게 간헐적 연락을 주고받은 지 3년이 흘렀다.

그 시절 작가님이 찍어주신 흑백 사진




**아무튼 다시 제주 이야기**

제주에 도착하니 해가 지고 있었다. 친히 버스 터미널로 마중 나와 주신 작가님과 빠르고도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다이소에서 머무는 동안 쓸 요가 매트를 사고 제주의 명물 교촌 허니콤보를 포장해 집으로 향했다.


제주 가옥은 본채와 별채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는 형태인데, 작가님은 별채에서 생활하시고 사업을 위해 꾸며놓은 본채를 내게 내어주셨다. 신j작가님은 사진작가이셨기에, 제주 구옥은 최소한의 보수 빼고는 원형 그대로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남아있었고 예술적 센스가 뚝뚝 묻어나는 소품들과 조화를 이뤘다.


작가님이 이 사진을 보시더니 사진 진짜 못 찍는다고 타박하셨다. 인정한다..^^ 실물이 훨씬 예쁘다.



짐을 풀고는 별채로 넘어갔다. 테이블에는 제주임을 실감하게 하는 싱싱한 귤 가지가 올려져 있었다.


'작가님, 여기가 진짜 제주는 제주인가 보네요.. 이 귤 가지.....!'

'육지 사람들은 가지에서 떨어진 귤만 먹는다지?^^'


한참을 밀린 근황 이야기로 바쁘게 수다를 떨다가 각자 잘 준비를 마친 후 본채에서 함께 요가를 했다. 오랜만에 프라하에서의 밤이 떠올랐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전 아침 바다를 보기 위해 옷을 입었다. 작가님은 아침거리를 사러 간다며 큰길을 따라 걸어가셨고 나는 바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아침바다는 청량했고 파도소리는 거칠기보단 싱그러웠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이런 아름다운 곽지해변이 있다니, 작가님이 부러워지면서도 잠시라도 이런 생활을 영위하는 지금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날이 밝으니 집에 놓인 소품, 돌멩이 하나하나가 더욱 빛이 났다. 어쩜 이렇게 과하지 않으면서도 마음 편안한 공간을 만들 수가 있을까, 마당의 꽃들은 어쩜 이렇게 자유로우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점심시간이 되어 산책 겸 다시 바다 주변으로 향했다. 많지 않은 식당 중에 눈에 들어온 쌀국수 집으로 들어갔고, 사장님께서 이내 뚝딱 맛난 쌀국수 한 그릇을 만들어주셨다. 알고 보니 이 가게 사장님도 작가님과 아는 사이였다. 역시 내 발길이 닿는 곳은 모두 곽지주민 네트워크 범위 안인 듯했다.

시~원한 쌀국수 in 곽지BAR다




**곽지의 재택근무 환경**

거실에 앉아 일을 하고 있으면 스르륵 방충망이 열리고 ‘('-')’ 표정을 한 작가님이 긴 팔을 쓰윽 내미시곤 했다. "와아! 감사해요!" 하고 내미신 것을 받아 들면 다시 말없이 스르륵 방충망이 닫혔다.

작가님이 찍어주신 대충 일하는 모습
작가님이 말없이 스윽 밀어넣고 가신 간식들




**곽지의 저녁**

퇴근을 하자마자 작가님께는 노을을 보고 저녁도 먹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골목길을 달려 나왔다. 해가 지는 곽지해변은 아침과는 또 다른 색이었고 마치 다른 해변을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시간마다 달라지는 하늘색, 잇따라 요동치는 바다색, 해변에 들이치는 'ㄱ'모양 파도까지 모두, 한참을 서서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이날 밤, 회사에서 주최 적재 콘서트가 있었다. 선착순 안에 들어 적재의 무대 뒤에서 소통하며 라이브를 들을 수 있게 됐는데, 이렇게 헤벌쭉 웃고 있는 화면이 대문짝만 하게 유튜브로 송출될 줄은 몰랐다. 본사에 계시는 친한 팀장님부터 연구소 동기들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 인증샷과 함께 '저거 너 맞아?' 하며 다들 'ㅋ'을 14개쯤 붙여 보냈다. 나도 이 상황이 너무 웃겨 화면으로 지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마구 웃었다.  






#제주살이 #곽지해변 #애월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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