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길과 소비의 공간 사이
하루하루 신나게
시골생활을 즐기다보니
돈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텃밭은 잘 자라고
생활기술은 늘어가는데
통장은 그렇지 않았다.
내 마음에서는
풍요의 싹이 트고 있었지만
잔고는 점점 얇아졌다.
아무리 자급자족을 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돈은 필요했다.
일을 구해야 했다.
서울에서 하던 일을 알아보았지만
시골에는 마땅한 자리가 많지 않았다.
읍내까지는 멀었고
버스는 두세 시간에 한 대씩 다녔다.
결국 집 근처에 있는
대형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출근을 위해
언덕을 넘기 쉬운
전기자전거를 샀다.
아침이면 헷맷을 쓰고
논과 밭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을 달렸다.
고개를 넘어가면
쇼핑몰이 나타났다.
여름의 더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햇빛이 눈을 찔렀다.
이마에 금세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시골 한복판에
대형 쇼핑몰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일할 곳이 있다는 안도와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미묘한 어긋남이
함께 있었다.
처음에는
카페에서 일을 했다.
커피와 음료를 만들며
손님이 몰리는 시간을
혼자 감당했다.
서울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다가
늦은 나이에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나는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
사장님은 직원의 실수에 예민했고
스트레스는
조금씩 쌓여갔다.
세 달을 버틴 뒤
장난감 매장으로 옮겼다.
계산대에 서서
가격표를 확인하고
물건을 진열하고
창고에서 재고를 정리했다.
큰 장난감부터
아주 작은 장난감까지 다루다보니
마감 시간이 되면
정산이 잘 맞지 않는 날이 잦았다.
쇼핑몰의 불이 꺼지고도
한참을 매장에 남아
숫자를 맞추고 있었다.
몸은 분명히 일하고 있었는데
마음은 자꾸
다른 곳으로 기울어졌다.
시골까지 내려와서
왜 다시
소비의 공간 한가운데 서 있는 걸까.
전기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길,
저녁 공기는
아침보다 한결 시원했다.
아침에 달리던 길과
같은 길이었지만
마음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 사이를
매일 오가고 있다는 느낌.
그 길 위에서
나는 아직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지 못한 채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