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포레스트에 다녀왔지만 나는 거기에 없었다

그 풍경 안에서 나는 비어 있었다

by 산다

퇴사를 결심한 뒤

나는 멀리 떠나고 싶었다.


마침

유럽 어느 나라에서 진행되는

'리틀포레스트'를 주제로 한 리트릿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인이 주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유럽 속의 시골마을.

자연에서 재료를 채집하고,

그걸로 요리를 하고,

몸을 움직이며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


내가 오래 동경해 온 장면과 닮아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모은 돈이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조금씩 상황이 달라졌다.


참가자는 나를 포함해 두 명.

다른 한 명은 외국인 남자친구와 함께였다.

운영자의 남편도 외국인이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대부분 영어로 흘러갔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그들끼리 먼저 영어로 이야기한 뒤

운영자가 한국말로 간단히 옮겨주었다.


나는 웃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용히 물러났다.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 안에 속해 있지만 않은 기분이었다.


요가 시간도 있었다.

다들 몸이 유연했고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몸이 뻣뻣한 나는

자꾸 균형을 잃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자세를 따라가려다 멈췄다.


자연에서 채집한 재료로

함께 요리를 하는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자신의 추억이 담긴 요리를 하기로 했는데

나는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다.


실수가 이어졌고,

결국 내가좋아했던 그 맛이 아니라

밍밍하고 덜 익은,

자신없는 요리를 내놓고 말았다.


그들이 만든 음식은

차림새도 훌륭했고

맛도 좋았다.


내가 동경하던 세계는

생각보다 단단했고,


나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했다.


부끄럽다기보다

조용히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 공간에서

말도, 몸도, 자신감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7박 8일이 길게 느껴졌다.


리트릿이 끝난 뒤

일주일 정도 더 여행했다.


예전 같았으면 설렜을 풍경들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골목도, 바다도, 카페도

이미 알고 있는 유럽의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동경했던 삶의 장면 속에

항상 내가 잘 어울리는 건 아니라는 걸.


한국에 돌아온 뒤

인스타그램을 멈췄다 .


서까래가 멋진 시골집,

잘 키운 채소들 ,

채소들로 만든 멋진 요리,

인심좋은 이웃들이 챙겨주는

정이 담긴 음식,

아무나 할 수 없는

고양이와의 마을 산책.


사람들이 좋아해 주던

리틀포레스트 속의 나.


처음으로

내가 올리고 있던 삶과

내가 실제로 느끼는 삶 사이에

작은 틈이 있다는 걸 보았다.


그 이미지를

더 이상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소식이 왜 없냐는 메세지가 왔다.

안부를 묻는 댓글도 달렸다.


고맙고,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무거웠다.


나는

남들이 좋아하던 나를

잠시 멈추기로 했다.



20190919_114526.jpg
20190920_105834.jpg
20190923_150127.jpg


20191003_145107.jpg
20191009_134043.jpg



20191003_153338.jpg
20191024_103540.jpg
IMG_0189.JPG
IMG_0861.JPG
IMG_2388.JPG


이전 12화무너지지 않기 위해 퇴사했다